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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이야기] 용선(龍船)을 타고 극락으로

잔뜩 눈에 힘이 들어간 용 한 마리가 작은 배 전체를 휘감고 있다. 배 위에는 여러 사람이 보이는데 돛 양쪽으로 석장을 쥔 보살 둘이 크게 그려져 있다. 한쪽 보살은 승려 머리로 보아 당연히 지장보살이다. 다른 보살은 잠깐 놓아두고 아래를 보면 여기도 부처와 보살이 있다. 그 아래로는 더 작게 그려진 남녀 13명이 있고 이들 중에는 상투 머리가 있는가 하면 탈모의 백두(白頭) 노인도 있다. 세 사람의 여인은 모두 나이 들어 보인다. 
어디로 가는 무슨 배인가. 


<용선접인도> 1896년


용이 끄는 이 배는 반야용선(般若龍船). 즉 이승을 떠나는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배다. 이런 배가 그려진 그림을 용선접선도(龍船接引圖)이라 한다. 죽은 사람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薦度) 의식에 쓰이는 그림이다. 

그러고 보면 앞쪽에 서 있는 보살은 저승사자와 정반대 역할을 하는, 즉 죽은 사람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인로왕(引路王)보살이다. 사람들과 이들 사이에 있는 부처와 보살은 서방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삼존과 두 협시인 관음, 세지보살이다.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과 서방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 그리고 극락 인도의 길잡이인 인로왕보살과 함께 그려진 사람들이 다름 아닌 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향하는 이들이다. 


<인물용봉백화도> 기원전4세기 

죽은 사람과 극락세계 그리고 용선이 합쳐진 이 그림은 통도사에 있는 것으로 이외에도 국내에 몇 점이 전한다. 그런데 이런 조합으로 이같은 테마를 그린 그림은 중국, 일본에도 있다. 중국미술사 첫 장에 나오는 <인물용봉백화도(人物龍鳳帛畵圖)>도 이와 같은 제재로, 비단에 그려진 이 그림은 기원전 4세기 무렵 중국 장사(長沙) 교외에 있는 초(楚)나라 무덤에 나왔다. 이에 대해 죽은 여인이 봉황의 인도를 받으면서 용선을 타고 곤륜산으로 가는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곤륜산은 중국 고대부터 신선이 사는 불로장생의 땅이다. 

좀 기이한 감이 드는 것이지만 배를 타고 극락세계로 향하는 그림이 일본에도 있다. 일본 기이(紀伊)반도 남단의 구마노(熊野) 지방에는 130여 미터에 이르는 낙폭을 보이는 나치(那智) 폭포가 있어 고대부터 영험한 곳으로 이름났다. 그래서 신사가 세워졌고 많은 사람이 순례 대상이 됐다. 

이곳에서는 구마노 비구니라는 사람들이 각 지방을 다니며 순례를 권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그냥 말로 권하는 것이 아니라 큰 그림을 가지고 다니면서 손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순례 대상이라든지 순서와 같은 것들을 소상하게 설명해 사람들이 큰맘(?)을 먹도록 했다. 이런 그림을 <나치참예만다라도(那智参詣曼荼羅圖)>라고 하는데 현재 36점 정도가 전한다. 


<구마노 나치참예만다라> 15,16세기 


그림에는 폭포는 물론 그 주변에 세워진 여러 신사와 이곳저곳을 부산하게 순례하는 사람들이 파노라마의 한 장면처럼 그려져 있다. 그리고 특이하게 아래쪽에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바다가 조금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구마노나치 대사(熊野那智大社) 소장의 이 그림도 그중 하나이다. 여기에는 바다를 향해 세워진 큰 도리(鳥居) 앞에 배가 세 척 그려져 있다. 두 척에는 사공 외에 승려도 있고 신자로 여겨지는 사람이 있다. 앞쪽의 배에는 사람 대신 집만 있다. 이 배의 이름은 보타락 도해선(補陀落渡海船). 보타락은 고려 불화의 수월관음도에 나타나는 보타락가산과 같은 것으로 서방정토처럼 불로불사의 이상향(理想鄕)을 말한다. 


<구마노 나치참예만다라> 부분


구마노를 참배하는 도중에 종교적 황홀경에 깊이 빠져 이승을 떠나 보타락에 가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을 태워 보내는 것이 이 배다. 누군가 보타락으로 떠나겠다고 서원(誓願)을 하면 도해상인(渡海上人)이란 스님이 정식으로 의식을 수행해주는데, 그는 그 희망자를 배 위의 집으로 들여보내고 밖에서 못을 박아 못 나오게 하고 삼십 일치의 식량만 넣어준다. 이 그림은 바로 그 내용을 그린 것이다. 떠나간 사람에 대해서는 달리 전하는 이야기가 없고, 구마노 신사에는 이 그림을 보고 복원한 배가 전시돼 있다. 용선과 죽은 사람, 그리고 극락세계를 엮은 그림은 이렇게 한국과 중국, 일본에 존재했다.

업데이트 2023.04.26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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