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마토분카칸(大和文華館)에는 『예원합진(藝苑合珍)』이라는 조선시대의 그림 학습서가 있다. 고전의 명구를 그림으로 해설한 이 책은 영조 왕실에서 제작된 것으로 논어, 맹자, 서경, 장자, 사기, 고사전, 삼강행실도 등 여러 서적 속에 등장하는 중요한 글, 동진의 도연명, 당나라 두보, 송나라 구양수, 사마광 등이 남긴 문학작품 들 중 선택된 대목을 요약된 글과 그림으로 보여주는 형식이다.
책을 펼쳤을 때 오른쪽에는 그림, 왼쪽에는 글이 나란히 보이도록 구성했는데, 글씨는 모두 당대의 대가 백하 윤순이 썼다. 그림은 영조대 화원화가 양기성(18점), 진재해(3점), 한후량(2점), 장득만(1점)이 그렸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양기성이 그린 그림 중 한 폭. 중앙에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는 노인 옆에 낚싯대를 내려놓은 것이 보인다. 오른쪽에는 뭔가 귀한 사람이 금관을 쓰고 하인을 데리고 나타났고, 그에게 인사를 올리는 것이다. 멀리 가마를 세워둔 것도 보인다. 그림 왼쪽 상단에 ‘태공조위(太公釣渭)’, 즉 ‘강태공이 위수에서 낚시하다’라고 쓰여 있다. 즉 낚싯대를 내려놓은 사람이 강태공이다. 이 사람의 본명은 강상(姜尙)인데 강태공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강태공망’ 즉 태공(太公)이 바라던(望) 사람이라는 뜻의 말을 줄여부른 것. ‘태공’은 보통 귀한 사람의 아버지라는 의미로 많이 쓰였는데, 여기서는 주나라 무왕의 아버지 문왕을 가리킨다. 그림에서 금관을 쓰고 나타난 사람이 후에 문왕이 되는 서백(bc 1152~1056)으로 태공이 바라던 그 사람(태공망)을 만났던 역사적 장면이다.
양기성, <태공조위도>, 《예원합진》, 18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33.5×29.4cm, 일본 야마토분카칸
서백이 하루는 사냥을 나가기에 앞서 그 날의 운세를 보니 큰 수확이 있을 것이라 했다. 위수 물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인물과 몇 마디 이야기를 해 보다가 그가 큰 인재임을 알아보고 스승으로 모시기를 청했다. 위수에서 낚시를 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잘 것 없어 보이던 사람이 인내의 세월을 끝내고 이제 서백을 따라 큰물로 나아가려는 대목이다. 강태공은 이후 문왕의 스승이 되고 문왕 사후 그의 아들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정벌했으며, 결국에는 제나라의 왕이 됐다. 레퍼런스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양기성(?~1755)은 숙종과 영조 시대의 도화서 화원으로 대략 1720년부터 1737년까지 활동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왕실 혼례에 쓰는 모란병풍을 여러 차례 그렸다는 것, 공신화상을 그려 상을 받기도 하고 어진도사, 모사에 참여한 기록도 많다. 《예원합진》과 후에 얘기할 《만고기관첩》 같은 채색 공필화가 그의 대표작이지만 영조의 명으로 세자를 위해 제작했던 《선가법첩》은 수묵화로 그린 것이다.
양기성(?~1755)은 숙종과 영조 시대의 도화서 화원으로 대략 1720년부터 1737년까지 활동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왕실 혼례에 쓰는 모란병풍을 여러 차례 그렸다는 것, 공신화상을 그려 상을 받기도 하고 어진도사, 모사에 참여한 기록도 많다. 《예원합진》과 후에 얘기할 《만고기관첩》 같은 채색 공필화가 그의 대표작이지만 영조의 명으로 세자를 위해 제작했던 《선가법첩》은 수묵화로 그린 것이다.
윤순이 쓴 글씨 부분은 『사기』의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의 일부이다. 다 쓰지 않고 중간중간을 썼다.
呂尚者東海上人窮困年老矣以漁釣周伯將出獵卜之所獲霸王之輔果遇於渭之陽與語大說載與俱歸立為師
여상은 동쪽 바닷가 사람. 가난하고 늙음. 낚시하던 중. 주의 서백이 사냥 나가다 점을 쳐 패왕을 보좌할 신하를 얻을 것이라는 괘가 나옴. 위수 북쪽에서 여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몹시 기뻐 수레로 함께 돌아와 곧 스승으로 삼음.
(제태공세가 원문)
太公望呂尚者,東海上人。其先祖嘗為四嶽,佐禹平水土甚有功。虞夏之際封於呂,或封於申,姓姜氏。夏商之時,申、呂或封枝庶子孫,或為庶人,尚其後苗裔也。本姓姜氏,從其封姓,故曰呂尚。
呂尚蓋嘗窮困,年老矣,以漁釣奸周西伯。西伯將出獵,卜之,曰「所獲非龍非彨非虎非羆;所獲霸王之輔」。於是周西伯獵,果遇太公於渭之陽,與語大說,曰:「自吾先君太公曰『當有聖人適周,周以興』。子真是邪?吾太公望子久矣。」故號之曰「太公望」,載與俱歸,立為師。
현재 전하고 있는 『예원합진』은 세 권으로 각각 형(亨), 리(利), 정(貞)으로 이름 붙여져 있어서 아마도 원(元), 형, 리, 정 네 권으로 펴냈으나 1권이 사라진 안타까운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형, 리, 정 권의 제일 첫 페이지. 야마토분카칸 소장품도록 중.
조선 초기의 삼강행실도만 해도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넣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데, 이는 100% 중국의 철학, 역사, 문학을 다룬 것이어서 그것도 아쉽다. 표제는 ‘예원합진’이지만 삼성에 소장된 『만고기관첩(萬古奇觀帖)』과 그린 사람, 형식이 유사하다. 『만고기관첩』은 다양한 화첩 중의 내용을 선별해 제작한 서화합벽첩으로 이것도 세 권이 전해진다. 『예원합진』을 '야마토분카칸 소장의 만고기관첩'으로 부르기도 한다.
당시에 산수화나 인물화의 화풍을 대표한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화원들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말해준다고는 할 수 있다. 그림의 구도 같은 부분에서는 조선 중기에 크게 유행했던 절파화풍의 영향력이 감지된다. 17세기에 유입되기 시작한 중국의 서적 속 판화 삽도도 채색인물화 스타일의 생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모티브가 도식화된 느낌인 것은 책의 목적이나 성격 때문일 것으로 생각되지만, 판화용으로 제작된 것도 아닌 책이니 좀더 생동감을 불어넣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