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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최칠칠의 겨울과 일출

눈발이 흩날리고 쌀쌀한 날이 계속되는 겨울에는 며칠을 굶다가 그림을 팔아 겨우 마련한 돈으로 술을 사 마시고 눈 오는 겨울밤 결국 얼어 죽었다는 화가 최북(1712-1787)이 종종 떠오른다. 그와 동갑 친구였던 남인쪽 문인인 신광수(1712-1775)는 어느 겨울, 최북을 방문하고는 그에 대한 안타까움의 시를 남겼다. 


최북이 장안에서 그림을 팔고 있으니
평생 오두막 한 칸 사방 벽은 텅 비었구나
문 닫고 온종일 산수를 그리고 있으니
유리 안경에 나무필통 뿐이로다
아침에 한 폭 팔아 아침끼니
저녁에 한 폭 팔아 저녁끼니
추운 겨울 해진 방석에 손님을 앉혔는데
문밖 작은 다리엔 눈이 세 치나 쌓였도다

여보게, 내가 오면서 본 풍경을 설강도로 그려보게
두미월계1) 강가에 절뚝이는 당나귀를 타고
남북 청산에 온통 하얀 빛에다
눈에 파묻힌 어부의 집과 외로운 낚싯배 한 척
어찌 꼭 눈보라 날리는 파교2)와 고산3)에
맹처사 임처사4) 만을 그릴 것인가
복숭아꽃 물에 함께 배 띄울 날을 기다리며
설화지에 다시 봄 산을 그려주게나
   崔北賣畫長安中
生涯草屋四壁空
閉門終日畫山水
琉璃眼鏡木筆筩
朝賣一幅得朝飯
暮賣一幅得暮飯
天寒坐客破氈上
門外小橋雪三寸

請君寫我來時雪江圖
斗尾月溪騎蹇驢
南北靑山望皎然
漁家壓倒釣航孤
何必灞橋孤山風雪裏
但畫孟處士林處士
待爾同汎桃花水
更畫春山雪花紙

 -『석북집』 중에서. 1763년 정월.

 두미월계斗尾月溪 : 앙평의 한강 지류
 파교灞橋 : 맹호연의 파교심매 고사에 나오는 중국 섬서성 다리. 
 고산孤山 : 항주 서호의 산. 임포가 은거한 곳.
 맹처사孟處士 임처사林處士 : 맹호연과 임포. 

이때 최북이 신광수에게 눈 쌓인 강의 모습을 그려 주었을지 어떨지 모르겠으나, 다른 때, 다른 인물에게 그려 준 겨울 산수가 전한다. ‘정묘동 위길보형사丁卯冬爲吉甫兄寫(정묘년 1747년 겨울 길보 형에게 그려주다)’라고 써 있는 화제를 통해 그림의 제작 연유와 시기를 알 수 있다. 이때의 그림보다 석북에게 그려준 그림은 훨씬 더 거칠고 쓸쓸했으리라. 


최북 <산수> 1747년, 비단에 담채, 29.3x40.2cm, 국립중앙박물관


강세황, 허필, 신광수 등이 속해 있던 안산 15학사들은 최북과도 긴밀히 교유하며 지냈는데, 안산의 선비 중 ‘길보’라는 자를 썼던 최인우(1711-1781)가 이 그림을 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최인우는 진사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하지 않고 평생 안산에 은거하며 학문에 몰두한 인물로 안산 15학사 중 한 사람이다. 

1747년은 최북이 일본에 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해. 성호 이익은 그해 일본으로 떠나는 최북을 위하여 <최칠칠을 일본에 보내며(送崔七七之日本)>라는 시를 지어주었다. 

拙懶平生欠壯觀 (나는) 못나고 게으른 삶이라 장관을 보지 못했지만
奇遊天外隔波瀾 (그대는) 하늘 저편 좋은 유람이 물결을 건너게 되었구나.
扶桑枝上眞形日 부상(扶桑) 가지에 걸린 해의 참 형상을
描畵將來與我看 부디 잘 그려와 나에게 좀 보여 주게

'毫生觀山水花舟?圖'라 적힌 화첩 중에 들어 있는 최북의 일출 그림 한 점. 이 그림의 제에 쓰인 것이 '창해관일출' 즉, 푸른 바다에서 일출을 보다'라는 것이 정설인데, 마지막 글자를 出 아닌 本으로 읽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을 가는 길에서 봤던 해인지는 모르나 바닷길을 통해 일본을 가면서 여러 차례 직관한 푸른 바다 위에서의 해돋이 인상이 강하지 않았을 리는 없을 듯하다. 


최북 <창해관일출(滄海觀日出)> 종이에 담채, 24.5 x 32.5cm, 국립중앙박물관



업데이트 2024.01.1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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