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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검은 백로를 읊다

올해 3월, 충남 천수만에 가면 전세계 2만 마리밖에 없다는 흑두루미의 70%인 14,000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만드는 장관을 만들었다. 흑두루미는 두루미(학)와 비슷한 종류인데, 몸을 먹물에 담근 것처럼 아래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흰 새를 먹물에 담근 것 같다고 하니 (두루미가 아닌 백로의 경우이지만) 사육신 중 한 사람인 성삼문의 ‘백로도’ 일화가 떠오른다. 

성삼문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중국 관리가(어떤 얘기에서는 황제도 자리함) 성삼문을 시험하고자 『백로도(白鷺圖)』가 있다는 화첩을 내놓으며 한시를 짓게 했다. 성삼문이 

 雪作衣裳玉作蹄 눈으로 옷을 만들고 옥으로 발굽을 만들어
 窺魚江上幾多時 강 위에서 물고기를 얼마나 많이 엿보았나

까지 지었을 때 중국 대신이 백로도 그림을 펼쳤는데 거기에는 까만 흑로가 그려져 있어 앞에 지은 시구와 맞지 않았다. 성삼문은 태연히 다음과 같이 뒷구절을 이어 중국인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偶然飛過山陰縣 우연히 산음 고을을 날아 지나다가
 誤落羲之洗硯池 잘못하여 왕희지가 벼루 씻은 연못에 빠지고 말았네

명필가 왕희지의 이야기도 적절히 인용, 음흉한 이들의 계략에 놀아나지 않고 멋지게 빠져나갔다. 지나치게 완벽한 결론으로 마무리됐다는 점에서 그 사실성이 조금 미심쩍지만, 이 일화와 시구는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많지는 않아도 백로 그림의 화제로 이 시구의 일부를 찾아볼 수 있다. 


양기훈 <노위도鷺葦圖> 비단에 먹, 108×40.5cm, 개인


이 주제의 그림들 중에 익산 출신의 서화가 우운 서정민(1875~1959)의 것이 보여서 옮긴다. 그는 석지 채용신의 제자로 아버지와 할아버지 글씨에 조예가 깊은 집안이었다. 


서정민 <해오라기> 종이에 먹, 109×33cm, 개인 


“鷺”는 백로와 멀지 않은 친척 해오라기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해오라기는 목이 좀더 짧은 새라서 그림과는 다르다. 백로 종류는 다양하지만 두루미보다 대체로 작다. 청계천 같은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흰 새는 백로의 일종, 대개 쇠백로라고 한다. 
업데이트 2024.03.1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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