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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ZOOM IN] 변상벽의 토종닭 가족

변상벽(1726?-1775)의 닭 그림을 보니 삼복을 무사히 넘긴 토종닭 가족이 이렇게 어디엔가 있겠거니 싶다. 검은 토종닭 암수 두 마리와 흰 암탉 한 마리, 얼룩무늬 병아리들이 풀밭에서 한가하게 노니는 장면이다. 소장처에서는 ‘암수 닭이 병아리를 거느리다’라는 의미로 <자웅장추(雌雄將雛)>라는 이름을 붙였다. 


변상벽 <자웅장추> 종이에 먹과 채색, 30.0×46.0cm, 간송미술관


짙은 갈색의 암탉은 벌레를 입에 물고 새끼들을 불러모으고 있고, 붉은 벼슬이 뚜렷한 수컷은 정면을 향하고 앉아 길쭉한 꼬리 깃털과 부풀린 목털로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기웃거리는 흰 암탉의 보조 출연으로 화면의 밋밋함을 덜었다.


변상벽은 영조 임금 때에 나고 활동하고 죽었던 화원 화가로, 조선 후기에서 영모화조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인물이다. 그의 집안은 영남의 밀양 변씨 효량공파였다고 하는데(21대손) 어느 조상 때인가 서울로 올라와 중인 계급이 되었다. 변상벽의 5대조 할아버지가 처음 역관으로 활동한 기록이 있고, 고조부, 증조부, 조부 모두 역관이었다. 부친인 변운서는 무과에 합격해 무관이었고 그의 2남 2녀 중 차남 변상벽은 화원이 됐는데, 이후 변상벽의 양아들, 조카 등도 화가가 됐다. 

변상벽은 초상화에도 실력을 보여 영조대왕의 어진을 두 차례나 그려서 그 공으로 전라도 곡성 현감을 지내기도 했다. 화원으로서 사람의 초상도 잘 그렸고 닭 그림도 잘 그렸지만(변닭) 가장 유명한 것은 고양이 그림(변고양이). 약관의 나이에 고양이 그림으로 서울에서 명성을 얻었다고 여러 기록에 전한다. 그가 고양이 그림을 잘 그리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변상벽의 활동은 정극순(鄭克淳, 1709-1767)이라는 소론 명문가 양반의 기록으로 전해진다. 정극순이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변상벽을 불러 고양이 그림을 그리게 하고 그 내용을 자신의 문집에 자세하게 기록했기 때문이다. ( 『서윤공유고』, 『연뢰유고』 속의 「변씨화기(卞氏畵記)」)

「변씨화기」에서 정극순은 변상벽이 원래부터 고양이 그림에 능한 것이 아니라, 산수화를 그려보았자 다른 대가에 미치지 못할 것을 알고 고양이 그림에 집중함으로써 고양이 그림에 제일이 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는 내용을 기록했다. 고양이를 꾸준하게 관찰하여 그 습성을 익히다보니 변상벽의 마음에 수많은 고양이가 존재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여러 종류의 고양이를 잘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라 말했다고 하는데, 정극순은 이 내용을 말하면서 전문화되지 못한 사대부의 학문을 질타했다. 변상벽은 물론 재능도 가지고 있었고 노력도 기울였지만 무엇보다 그 방향 설정이 탁월했던 것이 현재까지 이름을 남기게 된 그 성공의 비결이다.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닭 그림에서도 그의 동물 표현은 생생하기 그지없다. 두 군데 있는 화제 중 오른쪽 것이 동시대 예술계의 중심인물 강세황(1731~1791)의 글인데, 그도 변상벽에게 아낌없이 칭찬을 내렸다. 

푸른 수탉과 누런 암탉이 7~8마리 병아리를 거느렸다.
정교한 솜씨 신묘하니 옛사람도 미치지 못할 바이다.
青雄黃雌 將七八雛 精工神妙 古人所不及

토종닭 흑계 수탉은 녹청색의 광택을 띠는 경우가 많아 강세황은 이를 푸른 수탉이라고 표현했다. 변상벽의 솜씨를 신묘하다고 칭찬하고 있는데, 조선 후기 예술비평가의 눈에는 (아마도 중국의 거장까지 포함한) 옛 사람들에 비해 당대의 사람들의 솜씨가 대체로 마땅치 않지만 그중 변상벽의 표현력은 인정할만 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상단에 큼직하게 있는 글씨는 누구의 것일까? '마씨(馬氏)', '인백(仁伯)'이라는 인장을 통해 후배 화가 마군후(1750?~?)의 것임을 알 수 있다. 

흰털 검은 뼈로 홀로 무리 중에 우뚝하니, 기질은 비록 다르다 하나 5덕(德)이 남아 있다. 의가(醫家)에서 방법을 듣고 신묘한 약을 다려야겠는데, 아마 인삼과 백출과 함께 해야 기이한 공훈을 세우겠지.
白毛烏骨獨超群 氣質雖殊五德存 聞道醫家修妙藥 擬同蔘朮策奇勳

몸에 좋다는 백모오골(흰 털의 오골계) 상투적인 표현을 쓰는 바람에 그림과 차이가 생겼다. 그런데 인삼, 백출 운운 삼계탕 생각을 하며 닭 그림 감상을 적다니, 무더위에 닭그림을 자연스레 연상한 것이 나뿐만은 아니겠구나 싶어 다행스럽다. 큼직하게 공간을 차지한 화제 내용이 저렇다는 것으로 두 화가들의 평소 농담과 친밀함을 알 만 하다. 어쨌거나 화제 덕에 그림이 더 재기발랄하게 느껴진다. 
업데이트 2024.08.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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