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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이윤영의 고란사 풍경

단릉 이윤영(李胤永, 1714-1759)은 목은 이색의 후손으로 이름 있는 양반가였으나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산수를 즐기며 살았다. 아버지가 충청도 단양 부사로 재직한 것을 계기로 단양의 구담(龜潭)에 정자 우화정(羽化亭)를 짓고 지냈다. 단양을 좋아해 호도 단릉(丹陵)으로 지었을 정도. 

이 <고란사도>는 부여 백마강변의 고란사와 그 주변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은 아니지만, 문인적 감성으로 산과 물을 맞대고 있는 고란사의 모습을 재해석해 그림으로 남겼다. 이인상과 비슷한 필치에 마른 듯 부드러운 느낌으로 나름의 미적 스타일이 있다. 그림을 그린 배경은 왼쪽에 써 넣은 화제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윤영 <고란사도> 1748년, 종이에 담채, 29.3×43.6cm, 국립중앙박물관(이건희 기증품)


戊辰春 會盤泉尹丈 於皐蘭寺歸 
訪元靈於智異山中 話其江山之勝
有言語不可傳者 
略用乾墨 下幅以發一
胤永

무진년 봄, 반천의 윤씨 어른을 만나고 고란사로 돌아왔다.
지리산에 있는 원령(이인상)을 방문하여 그 강산의 승경을 이야기하는데 
언어가 있어도 그 모습을 전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대략 마른 먹을 사용해 아래 폭을 그리니 그것으로 한번 웃는다.
윤영

1748 무진년은 이윤영이 만 34세 때이다. 산수를 즐기던 그는 (어디인지 모르겠으나) 반천이라는 곳, 부여의 고란사를 거쳐 절친인 이인상을 찾아 지리산에까지 갔다. 고란사의 모습을 전해주려고 그것을 그림으로 남겼다는 것이다. 


백마강 너머로 보이는 고란사


행서로 가볍게 써내려간 화제 글씨는 이인상의 그것보다는 조화로움이 덜하지만 그림과 담백한 화제가 어우러져 천천히 감상할 만한 작품으로 만들어 주기에는 충분하다. 마지막 글씨 웃음 소(咲)는 웃을 소(笑)와 함께 같은 뜻으로 쓴다.



문징명, 황희지, 조맹부의 초서 '咲(笑)'


반천의 윤씨 어른은 누구일까? 확실하지는 않으나 이인상과 이윤영이 스승처럼 따르던 어른 중 윤 씨라면 임재 윤심형 (尹心衡, 1698-1754)이 떠오른다. 그림이 그려진 1748년 윤심형은 만 50세였고, 사간 등 관직에서 일하고 있던 때이다. 단양은 윤심형과도 관련이 많은 장소다. 단양의 사인암에는 윤심형이 글씨를 새겨 놓기도 했다. 



靑山綠水有歸夢/ 白石淸泉聞此言



업데이트 2025.03.1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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