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미술에 대한 시각을 확장한 후쿠오카시미술관 《조선왕조의 회화-산수•인물•화조》 전(2023.9.13.~10.22.)에 등장했던, 규슈국립박물관 소장의 소상팔경도 병풍 한 점이 현재 바다를 건너와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 전기 특별전에서 선보이고 있다.
그림 미상, 글씨 김현성 <소상팔경도 병풍> 비단에 먹과 담채, 각 47.0x41.0cm, 규슈국립박물관
8폭 병풍 각각의 면에 소상팔경을 그려 붙여놓고, 각 그림의 상단에는 고려 문인 진화(陳澕)의 시 송적팔경도宋迪八景圖를 조선 중기의 명필 남창(南窓) 김현성(金玄成, 1542-1621)이 쓴 글씨를 대응시켜 놓았다. 오른쪽부터 어촌석조, 소상야우, 평사낙안, 원포귀범, 연사모종, 동정추월, 산시청람, 강천모설 순서.
어촌석조
소상야우
평사낙안
원포귀범
연사모종
동정추월
산시청람
강천모설
맨 마지막 강천모설의 시 끝에 '위의 시는 한림 진화의 팔경시인데 이군을 위해 그림 병풍에 글씨를 써넣었다. 만력 갑신년 음력 4월 1일 남창'이라는 관지가 있어 글씨를 쓴 해가 1584년임을 알 수 있다.
안견파의 화풍을 확인하기 위해 각각의 그림들을 들여다보면, 공기 원근법, 공간감, 편파구도, 겹겹이 쌓여 후퇴하는 주봉 등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그림들이나 15세기 말의 다른 소상팔경도들에 비해 해조묘의 날카로운 면이 적고 간략화되어 부드럽게 느껴지고, 근경의 언덕이나 건물이 중앙으로 밀려들어와 구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각 폭의 화풍이 주제에 따라 조금씩 달라서 연사모종에서는 미법산수 화풍이 보이기도 한다.
이 병풍은 아마 직간접적으로 안평대군의 『비해당소상팔경시첩』으로부터 영향받은 바가 클 것이다. 1442년, 안평대군이 주도해 신하들이 참여하여 만든 『비해당소상팔경시첩』은 당대 문인들의 소상팔경시와 함께 아마 안견이 그렸을 소상팔경도가 포함되어 있었겠으나 현재 그림은 없고 시문만 첩의 형태로 전하고 있다. 아마도 그림이 남겨져 있었다면 <몽유도원도>와 함께 조선 초기의 수준 높은 그림과 시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걸작으로 남았을 것이다. 유현재 구장품 소상팔경도를 외삽해 그때 비해당 첩 중에 있던 소상팔경을 상상해볼 수도 있겠다.
미상 <소상팔경도> 부분(산시청람 연사만종), 15세기 후반, 비단에 먹, 각 28.5×29.8cm, 일본 유현재 舊藏
미상 <소상팔경도> 부분(어촌만조 원포귀범), 15세기 후반, 비단에 먹, 각 28.5×29.8cm, 일본 유현재 舊藏
미상 <소상팔경도> 부분(소상야우 평사안락), 15세기 후반, 비단에 먹, 각 28.5×29.8cm, 일본 유현재 舊藏
미상 <소상팔경도> 부분(동정추월 강천모설), 15세기 후반, 비단에 먹, 각 28.5×29.8cm, 일본 유현재 舊藏
이 병풍은 7월 20일까지만 국내 전시되고 이후 다른 작품으로 교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