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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1920년, 동양화단에 등장한 영 제너레이션의 산수

노수현의 <조일선관도>와 <신록>
안중식(1861-1919)과 조석진(1853-1920)이 사망하고 난 뒤 한반도의 동양화단은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그들이 가르쳤던, 소년부터 청년까지의 젊디젊은 제자들이 국내의 주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주체로 등장했다. 
1917년의 창덕궁 화재 이후 3년간의 공사를 끝낸 다음 대조전, 희정당, 경훈각 내부를 약간 서양식으로 바꿔 꾸미면서 총 여섯 점의 부벽화를 제작하게 되는데, 이를 젊은 서화미술회 출신들이 담당하게 된 것이다. 

대조전에는 김은호와 함께 오일영, 이용우의 합작이, 희정당은 김규진의 그림으로 결정됐다. 왕비의 휴식공간인 경훈각은 청전 이상범의 <삼선관파도>와 노수현의 <조일선관도>가 붙게 된다. 1920년, 1897년생인 이상범은 만 스물 셋, 1899년생인 노수현은 스물 하나에 불과했다. 


심산(心汕) 노수현(盧壽鉉, 1899~1978), <조일선관도(朝日仙觀圖)> 1920년, 비단에 채색, 183.5x525.4cm
<조일선관도>를 비롯한 창덕궁 부벽화 여섯 점은 올해 여름 창덕궁을 나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함께 전시되었는데, <조일선관도>는 전시로 처음 일반 공개된 것이다.


경훈각 동쪽 벽면에 장식되는 그림이어서인지 작은 붉은 태양이 눈에 띈다. 화면 중앙에는 신선이 산다는 해옥(海屋)이 있고 왼쪽 아래에 두 동자가 복숭아와 불로초(영지) 같은 것를 들고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은 산악이, 오른쪽 하단은 넘실대는 바다 물결을 표현했다. 






스물 하나라는 나이를 감안했을 때 규모와 완성도 면에서 놀랍고 흥미로운 그림이지만, 작가로서의 개성은 왕실의 위엄을 넘어서지 못했다. 

창덕궁 벽화 작업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후, 다른 신진 동양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노수현 또한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다. 인물화 쪽으로 간 사람들이 있고, 풍경 산수 쪽으로 온 이들이 있었다. 노수현은 이상범, 변관식, 이용우 등과 함께 새로운 산수를 탐색했다. 이들은 1923년에 같은 벼루를 쓴다는 멋진 이름의 ‘동연사(同硯社)’ 그룹을 만들어 중국의 산수를 벗어나 주변의 고즈넉하고 친밀한 풍경들을 화폭에 담고자 노력했다. 

1925년 전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신록> 또한 3미터가 넘는 대작이다. 심산의 1920년대 그림은 총 30여 점이 전해지는데, <조일선관도> 다음으로 크다. 이 작품에는 전통 회화 청록산수와는 조금 다른 색, 전통 수묵산수와는 조금 다른 구도를 추구했던 젊은 화가의 노력이 담겨 있다. 


심산 노수현, <신록(新綠)> 1920년대, 비단에 채색, 204x312cm, 고려대학교박물관





업데이트 2025.11.1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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