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18세기 조선에 살았던 여항문인화가입니다. 외할아버지가 유명한 여항시인이었는데, 젊어서는 외갓집 근처 북악산 아래에 거주하면서 인근에 살던 겸재 정선에게 그림을 배우게 되었고, 이후 김홍도, 신한평, 김응환, 이인문 등과 어울리면서 그들과 함께 활발히 작품활동을 한 기록이 있습니다.
<출렵도(出獵圖)> 종이에 먹과 담채, 29.5x22cm, 개인
이 사람은 누굴까요?
중인이던 그의 직업은 무엇일까요?
(1) 그림 그리던 화원 (2) 통역하던 역관 (3) 의사 역할의 의관
(4) 행정실무 서리 (5) 음양과 관원
-----
이 그림은 담졸 강희언(姜熙彦, 1738-1784이전)의 1781년 그림 <출렵도(出獵圖)>입니다. 『한국회화대관』에 흑백 사진으로 그려져 알려져오다가 1992년 한 화랑의 고미술전시에 개인 소장으로 등장했습니다.
이 사람의 대표작은 아마도 (특이하게) 하늘에 푸른색 담채를 칠한 것, 합리적인 원근법, 적절한 음영으로 양감을 살린 것으로 유명한 인왕산의 실경 산수 <인왕산도>일 것입니다. 이 그림에 당대 예원의 어르신 표암 강세황은 “진경을 그리는 사람은 매번 지도를 닮을까 걱정하는데, 이 그림은 매우 핍진하며 또한 화가의 여러 가지 법을 잃지 않았다[寫眞景者 每患似乎地圖 而此幅旣得十分逼眞 且不失畵家諸法].”이라는 평을 써 그를 추켜세우기도 했습니다.
강희언의 그림으로 전해지는 것은 많지 않지만 닭은 담채의 투명한 효과와 청신한 맛을 주는 감각의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그림이 처음 공개될 때 주목받았던 것은 원화와 함께 당시 수장가와 감식가로 유명했던 석농 김광국(1727-1797)의 발문을 함께 공개했기 때문이었기도 합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병신년(1776)에 사절단을 따라 연경으로 가던 도중 어양과 여룡 사이에서 수렵인들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과 말들의 민첩함을 보고 탄복한 바 있는데, 지금 강희언의 이 그림을 보니 완연히 그곳을 다시 밟아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더구나 그 필법의 정세함과 설색의 신교함은 아마도 송나라 화가 진거중(陳居中)이라도 이 그림 앞에선 명예를 떨치지 못하리라”
발문 끝에 김광국의 호 석농(石濃)과 자 원빈(元賓)을 써 놓았습니다. 글씨는 당대에 전서로 유명했던 경산 이한진이 쓴 것입니다. 김광국은 강희언의 〈석공도〉 또한 모아 놓고 제발을 남긴 바 있습니다.
그는 화원은 아니었습니다. 강희언과 그의 두 동생, 아들 강필수 등은 운과(雲科)에 합격, 관상감(觀象監)에 근무했습니다. 22세인 1759년부터 관상감에서 능행할 때의 부종관이나 부연사행, 추보성력 등을 담당했던 삼력관(三曆官)으로 활동한 기록이 있습니다. 관상감에서의 퇴직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삼력관으로 오래 근무하면서 교수(敎授)를 겸했습니다. 천문학 관련된 일, 달력 등 역서를 편찬하는 일을 담당했던 사람입니다. 그 외에 이외에 조지서(造紙署) 별제, 의령고(義盈庫) 주부 등과 외관직으로 순천의 감목관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정답은, 천문학, 지리, 점술, 역서편찬 등을 담당하는 관상감에서 근무한, (5) 음양과 관원.
강희언의 외가는 역관을 배출한 창녕 정씨 집안입니다. 외할아버지 정래교는 삼청동 일대에서 정선을 비롯하여 김창협 형제 등 노론 문인들과 가깝게 지냈고 양반들 자제, 중인들 자제와 함께 외손주 교육에도 힘썼으니, 강희언이란 인물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담졸화첩(淡拙畵帖)》 서문을 보면 “정선의 삼청동 옆집에 살면서 정선의 영향을 받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이 1781년작인데, 친하게 어울렸던 김홍도가 1784년 12월에 그린 〈단원도〉의 제발을 통해 강희언은 40대 중반인 1781년에서 1784년 사이에 세상을 떠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홍도(1745-1806?), '단원도(檀園圖)', 1784년(40세), 종이에 담채, 135×78.5㎝, 개인 소장
'창해(정란) 선생이 북으로 백두산에 올라 변경까지 다다랐다가 동편 금강산으로부터 누추한 단원(김홍도의 집)으로 나를 찾아주셨다. 때는 신축년(1781) 청화절(4월 1일)이었다....나는 거문고를 타고, 강희언은 술잔을 권하고, 선생께서 모임의 어른이 되어 참되고 질박한 술자리를 가졌다....강희언은 지금 세상에 없는 옛사람이 되고,...이곳에서 홀연히 선생을 만나게 되니...단원에서 예전에 놀던 것처럼 하였더니 슬픈 느낌이 그 뒤를 따르는지라, 끝으로 단원도 한 폭을 그려 선생에게 드린다. 그림은 그 당시의 광경이고, 윗면의 시 두 편은 이날 선생께서 읊으신 것이다. 갑진년(1784) 12월 단원 주인 김사능이 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