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백자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명한 작품. 철화로 매화와 대나무를 그려넣은, 큼지막한 백자 항아리로, 1974년에 국보 166호로 지정된 바 있다.
항아리의 형태는 위쪽 어깨가 둥글게 풍만하다가 서서히 곡선의 각 변화가 적도록 선을 유지하면서 아래로 내려가며 약간 좁아지는 모양새여서 두리두리한 느낌이고, 높지 않게 올라온 아가리의 가장자리는 밖으로 살짝 말려 있다.
백자 철화매죽문 항아리 (白磁 鐵畵梅竹文 壺) 16세기, 높이 41.3㎝, 입지름 19㎝, 밑지름 21.5㎝ 국립중앙박물관 (덕수 6294)
철화 안료를 사용해 넓은 몸체 면에 한쪽으로는 대나무, 다른 한 쪽에는 매화를 그렸는데, 그 솜씨가 종이에 그린 듯이 능수능란하다. 입구에는 구름무늬, 그 아래로 꽃잎과 추상적 무늬로 장식하고, 항아리 아래쪽에는 파도무늬로 마무리하여 단정한 느낌을 주었다. 철화 백자 항아리이지만 바탕에서 푸른 기운이 살짝 돌고 전체적으로 은은한 광택이 있다.
어깨와 아랫부분에 반복적으로 넣은 무늬는 16세기, 17세기 전반기의 백자 항아리에서 나타난다. 밝은 유약색은 16세기 후반경 경기도 광주군 분원인 관음리 가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매화와 대나무 그림으로만 보아도 16세기~17세기 궁중 화원의 솜씨가 떠오르는데, 당시 유행하던 사군자 그림이나 화원의 그림과 연계성을 살펴볼 수도 있다.
요 시기, 그러니까 1550년경부터 1700년 사이 조선 중기는 매화나 대나무가 가장 많이 그려진 시기이다. 특히 매화의 경우 어몽룡, 조속-조지운 부자, 김시, 이정, 오달제, 송민고 등 매화도로 이름난 화가들도 꽤 있고, 특징적인 화풍이 자리잡았다. 초기나 후기 매화도와도 다르고, 비슷한 시기 중국의 매화 그림과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
회원화가가 그렸을 것으로 생각되는 계회도의 매화그림들 몇 점을 데려와서 도자 속의 매화 그림과 비교해 본다.
1542년작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蓮榜同年一時曹司契會圖> 국립광주박물관
조선 초기. 비스듬히 선 매화 줄기가 꺾이듯 직선적.
1583년작 <태상계회도太常契會圖〉> 비단에 먹, 95.6x61.5cm, 국립중앙박물관, 보물1431. 건희17(정사신 참석 계회도 유물)
한 줄기가 사선방향으로 곡선을 그리고 서 있는 수직구도. 초기보다 부드러운 느낌.
1586년작 <형조낭관계회도刑曹郞官契會圖> 비단에 먹, 95.6x61.5cm, 국립중앙박물관, 보물1431. 건희17(정사신 참석 계회도 유물)
1612년작 <송도사장원동료계회도松都四壯元同僚契會圖> 종이에 담채, 110x50cm, 국립중앙박물관
더욱 회화적인 표현. 원말명초의 화가 工冕의 〈南枝春早〉와 유사. 곧게 뻗은가지가 표현되고태접, 안접이 두드러지며, 줄기의 중앙을 희게 비워 입체감을표현한것은조선 중기 매화도에서 흔히 볼수 있는특징.
1635년작 《육사계첩六司契帖》중 대나무와 매화 부분. 종이에 먹, 168x30.3cm, 경기도박물관 소장
월매도 형식, 부러지고 옹이진 굵은 줄기와 한선으로 그린 가지가 이루는 단출한 구성
계회도와 도자에 그려진 그림은 조건이 다르지만, 같은 시기 비슷한 사람들에 의해 그려진 그림으로서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철화백자 항아리의 매화는 어느 계회도의 매화와 가장 유사할까? 16세기일까? 아니면 17세기 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