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주의라는 드라마가 있다면 그 주인공은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와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가 될 것이다. 거기에 입체주의가 생겨나는 데 큰 영향을 준 세잔, 입체주의 작가들을 소개하고 가치를 높게 평가한 미술상 다니엘-앙리 칸바일러와 다른 입체주의 작가들이 그 조연이 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동료 화가들 중에 입체주의 이론을 만들어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아마추어 수학자 등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예술 형식을 위한 논문을 쓰고, 큐비즘에 대해 최초로 이론적 해석 및 정당화 기반을 닦았다. 피카소와 브라크도 이를 지지한 바가 있다.
______, La Femme au Cheval(Woman with a Horse), 1911-12, Oil on canvas, 162×130.5cm, Statens Museum for Kunst, Copenhagen
닐스 보어의 연구실에 걸려 있던 그림.
양자역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는 영감을 얻기 위해 연구실에 “이 화가”의 대형 그림 ‘La Femme au Cheval(말을 탄 여인)’을 걸었는데, 이는 '이동 시점'을 구현한(동시성) 대표적인 입체파 초반 작품이기도 하다.
이 프랑스 입체주의 화가는 누구일까?
(1) 장 메챙제(Jean Metzinger, 1883-1956)
(2) 알베르 글레이즈(Albert Gleizes, 1881-1953)
(3)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1885-1941)
(4) 앙리 르 포코니에(Henri Le Fauconnier, 1881-1946)
(5) 모리스 프랑셋(Maurice Princet, 1875–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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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시작 무렵, 파리에서 일어났던 혁신적인 미술운동 입체주의는 20세기 미술 사조 중 가장 중요한 운동 중 하나다. 피카소는 입체주의 초기에 중심적 장소가 되었던 세탁선 아틀리에(바토 라부아르)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메챙제와 친분이 있던 프랑셋(5)이라는 아마추어 수학자이자 보험계리사가 글레이즈 등 그곳의 예술가들과 친분을 맺었다.
모리스 프랑셋은 앙리 푸앵카레의 이론과 "4차원"의 개념을 바토 라부아르의 입체파 화가들에게 소개했다. 프랑셋은 피카소의 관심을 끌기 위해 1903년에 출간된 에스프리 주프레Esprit Jouffret의 책, "4차원 기하학에 관한 기초 연구(4차원에서 하이퍼큐브와 기타 복잡한 다면체를 설명하고 이를 2차원 페이지에 투영한 푸앵카레 가설의 대중화를 가져옴)"에 대해 피카소에게 알려주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 스케치북을 보면 주프레가 피카소의 작품에 미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주프레의 1903년 논문 중 일러스트레이션. 피카소 등 입체주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메챙제, 르 포코니에, 글레이즈 등은 1910년 살롱 도톤에 급진적인 입체주의 스타일을 소개해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메챙제는 이론적 근거를 위해 직접 ‘회화에 관한 노트’라는 논문을 써서 하나의 이미지에 산점투시로 본 풍경을 결합시킬 수 있음을 설파했다. 기존의 원근법과 달리 주관적으로 대상을 묘사하게 된다. 메챙제, 글레이즈, 포코니에, 레제 등 살롱 도톤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은 살롱 입체주의 작가로 불리면서 칸바일러와 독점 계약해 따로 전시를 연 피카소, 브라크의 갤러리 입체주의와 구분, 조금은 다른 길을 걷는다.
메챙제는 이후 잠시 신인상주의 시기를 거쳐 1908년 입체주의에 합류하게 되고, 피카소의 영향을 받은 누드화 등으로 ‘표절’이라며 비난받기도 했다.
메챙제의 입체주의 그림들은 피카소나 브라크와 달리 강렬한 색채에 규모가 큰 그림들을 주로 그렸고, 수학과 생명주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이론적 배경을 정립했다. 주제 면에서도 피카소보다 서사적이고 우화적인 경향을 띤다. 피사체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이야기를 담았다.
정답은 (1) 장 메챙제.
Jean Metzinger, Danseuse au café (Dancer in a café), 1912, oil on canvas, 146.1x114.3 cm, Albright-Knox Art Gallery, New York
참고) 메챙제와 입체주의를 비롯해 아방가르드의 수도 파리에서 있었던 주요 전시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더 알고 싶으신 분께는 다음 책을 추천합니다.
박재연, 『모던 빠리-예술의 흐름을 바꾼 열두 편의 전시』, 현암사, 2024.
박재연, 『모던 빠리-예술의 흐름을 바꾼 열두 편의 전시』, 현암사,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