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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옥션] 친일파 관리의 주문으로 그린 춘경일까

청전 이상범(1897-1972) <춘경> 비단에 수묵담채, 26.5x23.7cm
칸옥션 제26회 미술품 경매 2023.3.10
낙찰가 260만원




청전의 전형적인 스타일이 생성되기 전 30대의 젊은 나이에 그린 춘경으로, 소나무가 있는 둔덕에 흰색과 분홍색의 점으로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모습을 그려 색다른 맛이 있다. 

화제는 다음과 같다. 

春日芳暢 萬物生成
癸酉 小春 依小坡舍兄囑  祝井上大人 榮臨
봄날 꽃 피고 만물이 살아나네
계유년 10월에 소파 사형의 부탁으로 이노우에 대인의 영림을 축하합니다.

계유년은 1933년. 小春은 봄이 아닌 음력 10월을 말한다. 겨울의 시작이지만 추위가 깊지 않고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는 경우가 많아 소춘, 즉 작은 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림’은 찾아주셨다는 말의 한자어투. 

소파(小坡)라는 사람의 청으로 이노우에(井上) 대인이 찾아주신 것을 축하하는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누구인지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몇 가지 추정은 해 볼 수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모두 포함된 인물 중 한준석(1877-1940)이라는 사람의 호가 소파小坡였다. 군서기를 거쳐 함흥, 함남 지역에서 면장직을 오래 지내면서 매일신보 등에 일제를 찬양하는 시를 지어 싣기도 하고 조선총독부와 일본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표창을 받은 전형적 친일파이다. 

당시 조선에 있던 일본인 중 이노우에라는 성을 가진 이는 많았겠지만, 친일파 관리가 반색할 정도로 유명한 인물로는 경성부윤을 지냈던 이노우에 키요시(井上清, 1885-?)가 있다. 1929년 조선연초원판매주식회사 전무로 조선에 와서 1931년 경성부윤에 임명되고 1933년 체신국장으로 취임했다. 이노우에가 1933년 12월에 체신국장으로 전임하면서 쓴 글이 매일신보에 실려 있다. 

일본 관리가 영전한다는 소식을 들은 친일파 조선인이 그의 앞날이 꽃길 같기를 희망한다면서 청전에게 (아마도 많은 비용을 주고) 겨울이 다가오는 계절에 일부러 꽃 그림을 주문하지 않았을까. 
SmartK
업데이트 2023.04.05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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