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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옥션] 도상봉의 백자항아리 정물 소품

케이옥션 메이저경매 2023년 7월 26일
도상봉 <정물> 1971년, 캔버스에 유채, 24.2×33.4cm(4호)
추정가 3,200만~8,000만 원
낙찰가 3,200만 원

감, 사과, 파이프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약간은 어색하게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작은 백자단지. 작은 화폭에 단순한 구성의 도상봉 정물 소품이 삼천 만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되면서 미술 경매시장에서 스테디셀러로의 자존심을 지켰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상의 물건이었던 백자의 아름다움이 재발견되던 시절, 집착적으로 이를 캔버스에 올려 서양화적 구현을 만들어낸 화가가 도상봉(1902~1977)이다. 1921년 메이지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가 그곳에서 접한 서양미술사 서적과 서양화에 매료되어 화가로 전향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예비학교인 가와바타화학교(川端画学校)를 거쳐 1922년부터 1927년까지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수학했다. 스승은 나가하라 고타로(長原孝太郎, 1864-1930)와 오카다 사부로스케(岡田三郎助, 1869-1939)였다. 그중 오카다는 조선 공예에 관심이 많았기에 화풍 외에도 전통 소재와 관련된 도상봉의 예술관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고, 1930년대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활동, 『시라카바』 등의 매체에 이조백자 특집이 실리는 등으로 조선의 민예와 도자에 관심이 커지고 있었기에, 이러한 전통예술 재발견을 목격하고 자신의 작품세계에 적용했을 것이다. 

도상봉의 작품에 처음 백자가 등장한 것은 1933년작 인물화의 배경이었고, 1950~60년대의 꽃이 꽃힌 백자항아리 정물 등으로 가장 원숙한 형태의 정물화 스타일을 확립했다.  

1970년 11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미술부문 수상자였던 68세의 도상봉은 신문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우리나라는 아직 아카데미가 완성되지 않았으며, 어디까지나 민족적인 미술, 즉 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한국인의 감정과 생리에 맞는 독자적인 미술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재 너무 외국 것을 모방하는 경향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경향신문, 1970년 11월 11일자)

일본에서 배운 아카데미즘 양식을 고수하면서 소재적으로 ‘조선성’ 표현을 추구했던 그가 50년 넘게 인기를 구가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짐작할 힌트가 된다.  
업데이트 2023.08.0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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