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 채용신(1848-1941) <태호 정영원 초상> 1927년, 비단에 수묵채색, 129x74.2cm
외 진주 정씨가 전래 유물 일괄
칸옥션 제 32회 미술품경매 2024년 4월 25일
추정가 1억 5천만~ 3억 원
낙찰가 1억 5천만 원
어진화가였던 채용신은 1905년 경 전주로 내려가 살면서 전라도 지역의 유지, 학자, 우국지사 등과 교유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 여러 인물의 초상화를 그려 주기 시작했다. 전통 초상화법을 토대로 서양화법, 사진의 요소 활용 등으로 자신의 화법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1923년 정읍으로 이주해 ‘채석강도화소’를 세우고 운영해 더 많은 초상화들을 제작했다.
진주 정씨 정영원(鄭榮源, 1853-1940)은 전북 고창 출신의 유학자이다. 마을이 어려울 때 도움을 주었던 것을 기념해 1865년에 만든 정영원 시은비가 동네에 세워져 있다. 고창의 정영원에 대한 기록은 1910년 강화영이라는 사람의 논을 400냥의 구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7년 같은 사람에게서 논을 저당잡고 1000냥을 빌려주고 매월 4푼의 이자를 받은 계약서 등이 있어서 그가 시골 유지였음을 알 수 있다.
1927년에 그려진 초상화이니 정영원이 74세, 채용신은 79세 때, 정읍 채석강도화소를 운영하던 시기 주문 제작된 그림이다. 전신 좌상 초상화로 얼굴의 잔주름과 입체감, 수염의 묘사에 힘을 기울였고, 녹색 관복의 텍스처와 단학 흉배의 묘사가 정밀하다. 배경의 산수화 병풍은 채용신 초상화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칸옥션의 진주 정씨 가문의 출품 유물 중에는 정영원의 아들 정휴탁의 호패, 그의 아들 정동환 부부의 초상화, 정영원의 조부 정면규의 과지, 관복 등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