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회 마이아트옥션 메이저경매 2024.5.30.
표암 강세황 <두운지정화첩> 11점, 각 20x50cm 내외
낙찰가 8억 5천만 원
조선 후기 문화예술계의 리더 표암 강세황(1713-1791)은 말년에 둔지산에 정자를 짓고 ‘두운지정(逗雲池亭)’ 즉 구름이 머무는 연못이 있는 정자라 이름 지었다. 그는 여기에서 바라보는 광경을 사랑해서 ‘두운지정기’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도성의 남대문을 나서 꺾어져 조금 동쪽으로 10리 못 미친 곳에 둔지산이 있다. 봉우리와 바위, 골짜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산이라는 명칭이 있고 둔전(屯田)을 둔 땅은 없지만 둔전의 땅이라는 이름이 있다. 이는 정말 따져 힐난할 것은 되지 못한다. 들길이 구불구불하고 보리밭 두둑이 높았다 낮아지는데, 마을 수백 기가 있다.”
두운정전도
지금의 용산 대통령실과 멀지 않은 땅이다. 그의 나이 71세이던 정조 8년(1784)에 강세황은 느즈막한 나이에도 지금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한성부판윤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문집 『표암유고』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갑진년 3월, 지산(芝山) 교외에 있는 정자로 나가 머물렀다. 하루종일 일이 없다가 우연히 16자루의 부채를 얻어 정자와 동산의 경치 및 꽃과 풀, 새와 벌레를 되는대로 그리고, 그 위에 각각 제시를 썼다.”
이 16자루 부채에 그린 그림 중에서 8점을 포함하고 있는 ‘두운지정화첩’이 지난 5월30일 열린 마이아트옥션 경매에서 8억 5천만원에 낙찰됐다. 이 화첩 안에는 이때의 부채그림 8점에 표암이 예서로 쓴 ‘逗雲池亭畫帖’ 글씨, 그리고 강세황이 금니로 그린 죽도 선면화, 큰아들 강인의 총석정도 선면화가 더 들어있다.
『표암유고』를 통해 16점 부채 선면화의 면면은 다음과 같았음을 알 수 있다. (괄호 안에 번호 표시된 것이 두운지정화첩을 통해 이번에 공개된 것이다.)
1. 두운정 전도 逗雲亭全圖 (1)
2. 화선루 전면도 畫扇樓前面圖 (2)
3. 화선루 측면도 畫扇樓側面圖 (3)
4. 화선루 동면도 畫層樓東面圖
5. 화선루 서면도 畫扇樓西面圖 (4)
6. 옥후북조도 屋後北眺圖
7. 작약도 芍藥圖 (5)
8. 난초도 蘭草圖
9. 죽도 竹圖 (6)
10. 홍매화도 紅梅花圖
11. 도화도 桃花圖
12. 월계도 月桂園 (7)
13. 태호석도 太湖石圖 (8)
14. 지두 소작도 枝頭小雀圖
15. 임거추경도 林居秋景圖
16. 산정송석유인왕래도 山亭松石遊人往來圖
경매에는 나오지 않았으나 옥후북조도(개인), 임거추정도(이홍근기증 국립중앙박물관), 산정송석유인왕래도(선문대박물관) 등이 따로이 전해지고 있다.
제작연도와 배경 뿐 아니라 『표암유고』 내 「두운지정에 대한 기記」에서 주변 정황과 노후의 회환 등 그의 감정이 상세히 실려 있다. 그림 하나하나 제목, 그에 어울리는 화제들도 기술되어 있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로서 이렇게 많은 정보가 담긴 작품도 드물다. 자신이 사랑하던 정자 풍광을 담은 진경산수, 대나무, 꽃, 괴석이 골고루 포함된 다채로운 작품들을 대중에게 처음 공개하는 귀한 자리였다.
프리뷰 전시장에서는 화첩으로 묶였던 이 그림들을 모두 별도의 작품으로 다시 꾸며 전시하고, 선문대 박물관 등에 소장된 헤어진 그림은 영인본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 부채그림들은 부채로 사용된 흔적이 없는 채로 고이 새 주인에게 안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