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회 마이아트옥션 경매 2024.12.5.
겸재 정선(1676-1759) <승고월하문도僧敲月下門圖> 종이에 수묵, 26.5x38cm, 추정가 5,000만~1억 원
호생관 최북(1712-1786년 경) <승고월하문도僧敲月下門圖> 종이에 수묵담채, 54.5x32.5cm 추정가 2,000만~8,000만 원
당(唐, 618-907)의 시인 가도(賈島, 779-843)가 친구 이응(李凝, ?-?)을 찾아갔다가 ‘題李凝幽居(이응의 유거에 제함)’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다.
閑居少鄰並 한가하게 지내 더불어사는 이웃도 드물고
草徑入荒園 풀숲 오솔길은 황폐한 마당으로 들어간다.
鳥宿池邊樹 새들은 연못가 나무에서 자고
僧推月下門 스님이 달빛 아래 문을 민다.
이렇게 짓는 와중에 ‘僧●月下門’ 의 ●자리에 밀 퇴(推)자를 써서 ‘달빛아래 스님이 문을 민다’로 할지 두드릴 고(敲)자를 써서 ‘달빛 아래 스님이 문을 두드린다’로 할지 몰라 궁리하다가 한유(韓愈, 768-824)가 “두드린다고 해야 주변이 조용하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고, 친구 집을 방문하니 문을 두드려야 예에도 맞다”고 고敲를 쓸 것을 권유해 가도가 승고월하문으로 했다는 고사가 전해진다. ‘퇴고(推敲)’라는 단어의 유래를 만들게 되었다는 그 시이다.
賈島 <題李凝幽居>
閑居少鄰並 한가하게 지내 더불어사는 이웃도 드물고
草徑入荒園 풀숲 오솔길은 황폐한 마당으로 들어간다.
鳥宿池邊樹 새들은 연못가 나무에서 자고
僧敲月下門 스님이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
過橋分野色 다리 건너니 들빛이 분명하고
移石動雲根 돌을 옮겨 웅근(雲根)을 움직인다.
暫去還來此 잠시 떠났다 다시 이 곳에 오니
幽期不負言 은밀한 약속 말을 어기지 마시게.
달빛 비추는 밤에 외로운 집에 찾아 온 스님이 조용히 문을 두드리는 이 시의 장면을 겸재 정선과 호생관 최북이 그렸던 그림들이 나란히 미술품경매장에 등장했다.
옅은 먹으로 그린 겸재 정선의 <승고월하문도>는 독특한 구도로 화면 우측에 주요 제재가 치우쳐져 있다. 화면 중앙은 배경에 해당할 나무가 차지하고 있고, 앞에 배치된 바위는 그림의 무게를 잡는 역할인 듯 존재감이 크다. 상단의 둥근 보름달은 반만 표현되어 있다. 여백은 많지만 자욱한 안개가 낀 듯 답답한 느낌을 준다.
겸재 정선(1676-1759) <승고월하문도僧敲月下門圖> 종이에 수묵, 26.5x38cm, 추정가 5,000만~1억 원
호생관 최북(1712-1786년 경) <승고월하문도僧敲月下門圖> 종이에 수묵담채, 54.5x32.5cm 추정가 2,000만~8,000만 원
호생관 최북의 <승고월하문도>는 세로 그림으로 비교적 자유롭고 거친 필치를 보인다. 갈필로 휙휙 그렸지만 승려의 표정과 자세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맞나? 달은 왜 그리지 않았을까? 밤의 분위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은 하지 않은 것인가? 독특한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