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아트옥션 55회 2025.2.27.
담졸(澹拙) 강희언(姜熙彦, 1738-1784 이전) 그림,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 제(題)
<신광동문도(神光洞門圖)> 종이에 수묵담채, 각 28.3×21.8㎝
낙찰가 1억 5천만 원
이번 마이아트옥션에서 시작가를 표시하지 않은 Special Lot는 총 여섯 점이다. 13세기 청자상감과형주자, 강세황이 제를 쓴 현재 심사정의 밤섬 그림, 김윤겸의 실경산수가 있었고, 일본 유현재 소장품이었던 김홍도 시대 화가의 북일영, 남소영, 세검정 그림, 큰 주목을 받았던 영남명승35경 도첩 등이며, 나머지 하나의 특집 출품작이 그림, 김홍도, 신한평, 김응환, 이인문 등 조선 후기 화원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친밀하게 지냈던 강희언(姜熙彦, 1738~1784 이전)의 실경 산수 두 점이다.
담졸 강희언 <신광동문도(神光洞門圖)> 종이에 수묵담채, 각 28.3×21.8㎝
담졸 강희언의 본업은 기상과 천문 업무 담당인 관상감 공무원이었다. 17세에 천문, 풍수관련 기술직인 운과(雲科)에 붙어서 관상감에서 오랜 기간 일해 천문학겸교수(天文學兼敎授, 관상감 종6품)에 이르렀고, 40대 중반에 이른 죽음을 맞기 전까지 의영고* 주부(主簿 종6품 관직), 조지서 별제(別提 종6품 관직)를 맡기도 했다. 순천에서 감목관(監牧官 지방의 목장(말)을 관장하는 종6품 외관직)으로도 재직했다. 현대로 말하자면 주사보다는 높고 사무관보다는 낮은 종6품이 최고직이었던 중인이다.
그의 집안은 어떠했나. 5대조 할아버지가 의과에 합격했었고 아버지는 정4품의 외관직 장수(무관) 만호 벼슬을 지냈던 무관이며 강희언과 두 동생, 강희언의 아들은 운과에 합격, 관상감에 근무했다고 한다. 전형적인 중인 집안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외할아버지인 역관 출신 정래교는 학문이 뛰어나 같은 동네에 살았던 정선, 김창흡 형제 등의 노론 문인들과 친하게 지냈다. 양반, 중인 자제들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었고, 중인 자제들은 모두 정래교에게서 글을 배웠다 할 정도로 선생님으로 유명했었던 것 같다.
자세한 정황이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강희언은 외할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옆집 할아버지 정선에게서 그림을 배웠다고 알려져 있다. 정선(1676-1759)은 강희언보다 62살 많아 70대할아버지였을 때 만났을 것이다. 정선은 강희언이 22살이 되었을 때 생을 마감했다.
강희언이 남긴 그림은 많지 않은데, 감각적으로 인왕산 서쪽 측면을 그린 <도화동망인왕산도>(또는 인왕산도)와 자신의 출근길이었을지 모를 창덕궁 앞의 새벽 모습을 그린 <북궐조무도> 같이 실경을 그린 것이 유명하고, 이 그림 <사인휘호도>와 함께 선비들의 모습을 그린 ‘사인삼경도士人三景圖’ 세 그림이 대표작이 된다. 남아 있는 그림이 귀하기 때문에, 경매에 나오는 일 역시 최초가 아닐까 싶다.
출품작은 황해도 해주시 신광리에 위치한 신광사 골짜기 입구를 그린 두 폭의 실경산수다. (찐친 김홍도도 신광사 실경을 그린 적이 있다.) 신광리의 남쪽은 평야지대지만 북쪽은 수양산맥의 주봉들이 솟아 있고 수양산, 책암산, 매봉산 등 높은 산들이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신광사에서 설류봉에 이르는 구간이 명승지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고 한다.
참고. 김홍도 <신광사> 종이에 먹, 32.7×28.0cm, 성호기념관
첫 번째 그림에는 신광사 입구에 자리한 부도밭이 표현되어 있고, 두 번째 그림에는 미륵불이 암각되어 있는 바위 뒤로 뾰죽하고 거친 암벽과 봉우리가 그려졌다. 미륵불 왼쪽으로 보이는 탑은 현전하는 신광사 오층탑이거나, 조선시대에 있었다는 12층 다보탑일 수도 있다.
첫번째 그림 부분
두번째 그림 부분
인왕산 그림과 북궐도 그렇지만 이 신광사 그림에도 강세황이 화제를 남겼다. 강희언은 강세황보다 25살 어리지만 서화에 있어서 뜻을 나눈 선후배 사이였던 것 같다. 표암은 담졸의 이 두 그림에 감상과 화평을 첨부했다.
첫 그림에서 강세황의 제는 다음과 같다.
借問肩輿客, 袖中新詩, 可能酬髠緇勞苦不.
묻노니, 견여를 탄 나그네여. 소매 속에 새로 지은 시가 머리깎은 스님의 노고에 보답할 수 있는가.
枯澹中有遒雅之致.
마르고 담박한 가운데 탄력 있고 고아한 운치가 들어 있다.
豹菴 표암
다음 부분의 제시는 강희언이 쓴 것.
神光洞門 신광사 골짜기 입구
立馬寺門外 절문 밖에 말을 세우고
別僧水石間 물과 바위 사이에서 스님과 작별하네
白雲送客處 흰 구름이 나그네를 전송하는 곳에
春盡洞中山 골짜기 속의 산에는 봄이 다 지났네
두 번째 그림에는 강희언이 따로 글을 쓰지 않고 강세황의 제만 포함되어 있다.
石逕廻轉處, 忽然遇丈八祥光, 不徒衲子便拜, 我亦當拜, 君亦當拜.
돌길이 휘도는 곳에서 홀연히 1장 8척 부처의 상서로운 광채를 만났다. 스님이라면 곧장 절을 올려야 할 뿐만 아니라, 나 또한 절을 올려야 하고, 그대 또한 절을 올려야 하리라.
石勢奇勁, 刻佛古雅.
바위의 기세는 기이하면서 힘차고, 새겨진 부처는 예스럽고 고아하다.
豹菴 표암
첫 그림에는 姜熙彦印, 두번째 그림에는 景運(강희언의 字)의 인장이 찍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