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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옥션] 44명의 청나라 문인들, 역매 오경석을 위한 그림과 시(2025.4.24)

칸옥션 제37회 미술품경매(2025.4.24) 정조경(程祖慶, 1785-1855) 외 44인
<천죽재서화첩 天竹齋書畫帖> 2권
종이에 먹·수묵담채
첩 33.3x17cmx2 (총51면)
추정가 5,000만~1억3,000만 원. 유찰.

'천죽재天竹齋'는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역관,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 1831-1879)의 당호, 집 이름이다. 칸옥션에 출품된 천죽재서화첩은 청나라 때 문인들이 오경석을 위해 천죽재 그림도 그려주고, 집에 대한 시, 배관기 등을 써 준 것을 모은 서화첩으로 상, 하권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첩의 표지에 ‘천죽재서화첩’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오경석은 1846년 역과에 합격해 1853년 역관으로 처음 북경에 가서 11개월 동안 머물렀다. 이후 1853년에서 1858년 사이에 네 차례 청나라를 왕래하면서 중국의 지식인들과 광범위하게 교류하며 신학문에 눈을 뜨고 여러 서적을 들여와 친구인 의관 유홍기에게 읽게 하고 정치인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오경석은 총 13차례 북경을 왕래하며 쌓은 인맥을 통해 서책과 서화, 금석문 등을 다수 수집하였는데, 특히 친목이 돈독했던 중국인 서화가 정조경과 하추도何秋濤, 유전복劉銓福 등은 오경석의 부탁을 받고 유리창琉璃廠의 골동상인들에게서 서책과 서화, 금석문을 구해주었다고 한다. 오경석 역시 청나라 학자들에게 우리나라의 금석문, 글씨, 그림 등을 여럿 보내주는 등 서화를 활발히 교환해 19세기 한중 서화교류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됐다.

이 서화첩에 대해서는 오경석이 교류했던 청나라 인사들이 오경석에게 보내온 서신의 원문을 모아 일곱 권의 책으로 엮은 『중사간독첩中士簡牘帖』에 관련 내용이 여럿 확인된다.


서화첩 중 정조경의 <천죽재도> 


<천죽재도>를 그린 정조경은 추사와 일정한 인연을 맺어 「문복도(捫腹圖)」 등을 그려 보낸 적이 있는 인물이다. 

亦梅書室之前自生天南燭一叢 彛齋權君因以天竹顔其齋額
咸豐乙卯之春 与亦梅再晤於都門屬爲之圖
程祖慶幷記
역매서실 앞에 스스로 피어난 남천촉 한 무리가 있었는데 이재 권군(권돈인權敦仁)이 이를 계기로 그 서실에 ‘천죽天竹’이라는 제액을 붙였다고 한다.
함풍 을묘년(1855) 봄, 역매와 다시 도문都門에서 만났는데 부탁을 하여 그려드린다.
정조경이 아울러 기록하다.

‘천죽재’의 유래가 분분했으나 이 화제를 통해 오경석의 자택 마당에 자란 남천촉을 보고 권돈인이 지어준 당호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서화첩 중 사마종의 <천죽재도>


또다른 그림 한 점은 사마종이라는 인물이 그린 <천죽재도>로, 채색을 써서 남천촉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집 안에 책이 가득 놓이고 책상에 앉은 오경석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상권에 실린 시 한 수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글을 쓴 이는 섭명풍葉名澧이라는 인물이다. 

海東有彦英 奉使歸復來 為言所居地 溪澗相縈迴
繁花媚晴昊 淸景羅高齋 偃仰此朝夕 時聞禽語諧
擧步忽有觸 異卉生庭階 枝葉日以長 果實何纍纍
扶搖風雪中 豔奪千玫瑰 矧乃富藏弆 左右牙籖披
靈秀天所貺 劫火不能灾 老屋暫云別 夢境猶卭郲
重以星紀感 離緒盈深杯 中朝蔚楨榦 大雅多通材
班荆代圖畫 分手心孔悲 馬首鬱遙望 楊柳春方回
해동에 훌륭한 선비가 있는데, 명을 받들고 사신으로 다시 연경에 왔구나.
역매가 말하기를 자기 집 주위엔 계곡물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단다.
갖가지 꽃들이 요염함을 뽐내고 하늘은 푸르니, 아름다운 경치가 고아한 서재 주변에 펼쳐졌다네.
조석朝夕으로 그 곳에서 편안히 지내니, 무시로 조화로운 새 소리 들을 수 있다네.
역매가 천천히 뜰에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기이한 풀이 정원에서 자람을 느꼈다네.
가지와 잎은 하루하루 커가고, 과실은 어찌도 주렁주렁 달리는지.
눈바람 속에서 마구 흔들리고 있으나, 그 미모는 천 송이 장미의 아름다움 앗았다네.
하물며 소장한 것이 풍부하며, 좌우로는 아첨牙籖을 걸쳤네.
청수한 아름다움은 하늘이 하사한 것이니, 겁화劫火인들 재앙을 가져오지 못하네.
고택古宅이 뜬 구름과 떨어져 있는 것이, 마치 꿈속 경지의 공래卭郲 같다네.
흐르는 세월의 슬픔보다 무거운 이별의 아쉬움은 깊은 잔을 가득 채워 찰찰 넘치고 있네.
청나라·조선 모두에 훌륭한 인재들이 많고 많으나, 역매 그대는 온갖 사물에 능통한 재주를 갖추었다네.
뜻 맞는 벗을 만나 담론하며 그림도 그려주는데, 헤어지려니 마음 한 구석이 슬퍼지려 하는구나.
말은 머리 들고 쓸쓸히 먼 곳을 바라보는데, 버들가지 늘어질 봄이 곧 찾아오겠구나.


하권 뒷부분에는 우선 이상적이 쓴 글이 있다.

天竹齋名海內知程君畵並孔君詩相思莫謾吟紅豆羨尒西窓話雨時
車笠翩翩正妙都人士盡眼揩靑古歡珎重商金石碧樹珊瑚見典型 (亦梅與春明諸友畜富訂金石文字) 日日懵騰醉篠中 浮華浪蘂摠消空 數枝我欲從君乞 風雪留看萬點紅
亦梅吟壇是正 老藉尙迪
천죽재天竹齋는 이미 해내海內에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 정군程君(정조경)의 그림과 공군孔君(공헌이)의 시가 함께 있으니 붉은 열매에 빗대어 그리움을 읊지 않더라도 그대가 있는 서쪽 창가가 문득 부러울 따름이다. 비 오는 날 그 창가에서 나눈 대화는 한층 깊은 여운을 남겼다.
삿갓 쓰고 우산 든 사람들이 바람결에 흩날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정묘正妙하고, 도성의 인사들조차 모두 눈을 비비며 바라보았다. 청고靑古의 세계는 진귀한 물건들에서 비롯된 기쁨으로 가득했고, 금석金石과 푸른 나무, 산호 등에 고전의 전형典型을 보는듯하였다. (역매亦梅와 춘명春明 등의 여러 벗들이 금석문金石文을 풍부하게 소장하고 정리해온 일도 그 안에 담겨 있다.)
나는 날마다 대나무 숲 속에서 흐릿한 정신으로 술에 취해 있었지만, 부질없는 사치와 겉치레의 화려함은 결국 텅 빈 허무 속으로 사라졌다. 그대에게 몇 가지만을 청하노니, 풍설 속에서도 머물며 만 점 붉은 꽃의 정취를 오래도록 감상하고자 한다.
역매 시단詩壇이 고쳐주소서.
우선 이상적

오경석과 청조 명사들의 다양한 서화교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천죽재도> 그림의 확인, 그것을 읊은 40여 수의 시가 모두 각각의 친필로 수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크다.
업데이트 2025.04.1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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