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회 마이아트옥션 경매(2025.11.27)
연옹 윤덕희 <준마도> 1736, 종이에 수묵담채, 76.3×64.7㎝
추정가 5,000만~1억 원
인상이 사나운 한 인물이 범상치 않은 눈빛의 멋진 말을 데리고 서 있다. 섬세한 필치로 근육의 중량감과 표정을 솜씨좋게 다뤘다.
족자 뒷면에 부착된 종이에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9세손인 윤정현(尹定鉉, 1882-1950)의 글이 있는데, 이 그림을 윤두서 할아버지의 그림으로 보고, 일본인 야마다[山田]에게 드린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그림 속 낙관은 다르게 말하고 있다.
족자 뒷면에 부착된 종이에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9세손인 윤정현(尹定鉉, 1882-1950)의 글이 있는데, 이 그림을 윤두서 할아버지의 그림으로 보고, 일본인 야마다[山田]에게 드린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그림 속 낙관은 다르게 말하고 있다.
丙辰夏 白蓮逋翁 寫與二子愹
병진년 여름, 백련포옹이 그림을 그려 둘째 아들 용에게 준다
인장은 '會心樓'와 '敬伯'.
경백(敬伯)이라는 자를 썼던 윤덕희(尹德熙, 1685-1776)가 병진년(1736, 영조12) 여름에 그려서 둘째 아들 윤용(尹愹, 1708- 1740)에게 준 것이다.
윤두서-윤덕희-윤용 삼대의 그림은 한국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높은 편이다. 윤두서와 윤덕희는 말 그림에 관심이 많은 편으로 꽤 많은 작품들을 남겼는데, 이 작품 또한 해남 윤씨 집안에서 나온 유현재 구장품이며, 윤덕희의 그림으로 상당히 큰 편에 속한다. 얼마전 포스코미술관에서 일반 공개되었던 작품이다.
윤선도를 고조할아버지로 두었던 윤덕희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도석인물 등 중국 스타일의 소품을 많이 남겼다. 요절한 아들 윤용이 그림 센스가 더 있었던 것 같지만 남긴 그림이 별로 없고, 윤덕희의 그림은 다양하게 남아 있다.
* 부전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尹斗緖 號恭齋 文章德行 表著一世 工於六鞱算數 世稱公輔器 官至嘉善大夫 戶曹參判 兼同知義禁府事 五衛都摠府都摠管 成均進士 今爲二百四十年
윤두서는 호가 공재로 문장과 덕행으로 온 세상에 높이 드러났다. 육도六鞱 병법과 산수에 뛰어나 세상에서 정승이 될 그릇으로 일컬어졌다. 관직은 가선대부, 호조 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이르렀고, 성균진사이며, 지금부터 240년 전에 태어났다.
隆熙四年一月日 九世孫尹定鉉 奉獻于山田氏
융희 4년(1907) 1월 모일에, 9세손 윤정현尹定鉉이 야마다씨山田氏에게 드린다.
윤정현은 1909년에 해남군 향교직원으로 임명된 기록이 있는데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 부전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尹斗緖 號恭齋 文章德行 表著一世 工於六鞱算數 世稱公輔器 官至嘉善大夫 戶曹參判 兼同知義禁府事 五衛都摠府都摠管 成均進士 今爲二百四十年
윤두서는 호가 공재로 문장과 덕행으로 온 세상에 높이 드러났다. 육도六鞱 병법과 산수에 뛰어나 세상에서 정승이 될 그릇으로 일컬어졌다. 관직은 가선대부, 호조 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이르렀고, 성균진사이며, 지금부터 240년 전에 태어났다.
隆熙四年一月日 九世孫尹定鉉 奉獻于山田氏
융희 4년(1907) 1월 모일에, 9세손 윤정현尹定鉉이 야마다씨山田氏에게 드린다.
윤정현은 1909년에 해남군 향교직원으로 임명된 기록이 있는데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