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택, 『고려 1359년 아미타삼존도-고후(甲府)시 손타이지(尊躰寺)』, 동아시아미술연구소, 2023
2012년 11월, 일본 혼슈 야마나시(山梨)현 고후(甲府)시(市) 손타이지(尊躰寺)에서 고려 공민왕 때(1359년) 제작된 아미타삼존도가 발견됐다는 발표가 있었다. 비단에 금으로만 그린 고려불화가 없었기에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까지 제작시기가 분명한 고려불화는 12점뿐이었고 모두 1300~1350년 사이였다. 손타이지의 비단금니 아미타삼존도는 1359년이니 고려불화의 편년 기준이 있는 시기가 9년 확장된 셈이다. 그 전까지 이 그림을 15세기 조선시대 불화라고 여기다가 하단의 화기 발견으로 인해 제자리를 찾고 고려불화에 금니선묘 작품을 추가할 수 있게 됐다.
<아미타삼존도> 비단에 금니, 164.39 x 85.6cm, 일본 손타이지
손타이지가 이 그림을 입수한 것은 500여 년 전이라고 한다. 그 이래 절 밖으로 나간 적이 없는 것은 물론 공개하는 것도 극히 제한해 왔으니 작품을 실제로 본 사람은 절 관계자를 제외하면 손에 꼽을 정도였고, 존재 자체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발견과 편년 수정 이후 2013년에 파격적으로 절을 떠나 한국 동국대박물관에서 전시, 일반공개된 바 있다. 정우택 교수가 펴내고 있는 한국불교회화명품선 시리즈의 네 번째 책에 이 손타이지의 비단금니 아미타삼존도(1359년)를 다루었다.
공개가 드물었던 덕에 보존상태가 매우 훌륭한 그림이다. 통상적인 채색 그림이 아니고 금니의 섬세한 선묘가 치밀하고 조화롭게 화면 위를 채우고 있다.현재 알려진 170여 점의 고려불화 중 금선만으로 그린 그림은 노영필 1307년작 목판 흑칠 금선묘 불화 단 한 점 뿐인데, 이는 세로 21cm, 가로 12cm 정도의 작은 나무판 앞뒤에 그려진 것이다. 손타이지 아미타삼존도는 아미타삼존 기본 도상임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다른 고려불화와는 차별되는 표현을 보여주며, 구성요소의 균형과 조화, 섬세한 묘법이 그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아미타삼존도 도상의 근거가 되는 경전은 「불설관무량수경」. 이를 줄여 ‘관경’이라고도 부른다.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경」 세 가지를 정토삼부경이라고 하며 이 경전들이 정토신앙의 중심이 된다. 관무량수경의 내용은 정토-극락세계를 눈앞에 보여줌으로써 왕과 왕비를 구제하는 스토리이다. 태자의 왕위찬탈 사건을 배경으로 왕후가 석가모니께 빌어 석가모니가 극락세계를 보여주는데 극락을 보는 눈-16관법-을 알려주었고, 그를 통해 왕도 구제되고 왕비는 경지에 이른다. 그 극락정토에 아미타불이 있는 것이다.
「관무량수경」에서 표현하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두 분이 좌우에서 무량수불(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고 하며 이것이 아미타삼존도상의 기원이 된다. 서 있는 위치까지 지정이 되어 있기에 정면을 향해 중앙에 아미타여래, 좌우에 협시로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있는 정석을 따르는 삼존도가 많다(고려 말 이후 세지보살을 지장보살로 바꿔 그린 경우가 많아진다). 삼존이 비스듬히 서서 웰컴의 포즈를 취하는 내영도도 있다. 이분들이 우리를 정토 극락세계로 데려다 주는 분들이다.
손타이지 아미타삼존도는 비단 전면에 짙은 남색을 칠하고 그 위에 금니로 문양, 주름선을 포함 모든 화면 구성을 그렸다. 책에서도 고려 유일의 본격적인 금선묘불화라는 점, 화기로 고려불화의 편년에 중요 기준작이 된다는 것, 이 두 가지가 강조되었다. 서방 극락정토에 있으면서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왕생의 길로 이끌어주는 아미타여래가 중앙에 결가부좌하여 앉아 있다. 경전에서 아미타불은 “몸은 염부단금색(閻浮檀金色)과 같고, 몸의 높이는 60만억 나유타(那由他:10의 60제곱) 항하사(恒河沙:10의 52제곱) 유순(由旬:12km)”이며 “미간에 백호가 있고 눈은 바닷물처럼 청정해 푸르고 희며, 몸에서는 광명이 흘러나오는데 둥근 광명 속에 백만 억 화신불이 있다”.
아미타부처님의 입장에서 오른쪽은 지혜의 문. 여기에 대세지보살 또는 세지보살이 자리잡고 왼쪽은 자비문, 관세음보살이 지킨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 화면을 향했을 때 오른쪽에 있는 분이 관음보살이 된다. 그림에서 관음보살은 화불이 가운데 자리잡은 보관을 쓰고 양 팔을 앞으로 내려 우아하게 교차시켜 버드나무가 꽂힌 정병을 잡은 모습이다. 화면 왼쪽의 세지보살은 정병이 가운데 있는 보관을 쓰고 경책이 놓인 연화가지를 잡고 있다. 이런 특징 또한 관무량수경을 근거로 한 것. 손타이지 아미타삼존도에서는 두 보살이 거의 대칭이며 얼굴도 비슷해서 손과 보관을 제외하고 본다면 관음보살인지 지장보살인지 구분이 어렵다.
세지보살의 얼굴(정병이 그려진 보관)
앞선 시리즈의 도록과 마찬가지로 각 부분 이미지를 확대해 다량으로 싣고, 도상 내의 특정 부분을 다른 불화에서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확대 이미지만의 비교로 상세히 다룬다. 관음보살이 정병과 버드나무를 든 손도 다양한 그림에서 표현된 예를 줌인한 이미지로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보관의 화불, 손에 든 버드나무 같은 부분은 직접 그림을 대한다 해도 정확한 모습을 보기 어려운데 도록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손타이지 아미타삼존도 상단에 있는 천개(天蓋)는 다소 특이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책에서는 다양한 불화에서 천개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를 비교한다. 기본적으로 고려는 구름에 둘러싸인 소위 ‘궁전 지붕형’이 대세인데 손타이지 아미타삼존도 천개는 비슷한 시기의 불화들과는 다른 스타일로 아래를 향해 피어난 연꽃의 모습이다. 비슷한 예는 阿明院의 <관음지방보살병립도> 에서도 볼 수 있다.
손타이지 아미타삼존도의 천개 부분
묘만지 미륵하생경변상도(1283), 린쇼지 관경십육관변상도(1323), 지온인 관경십육관변상도(1323)의 천개
이 아미타삼존도를 고려불화로 재발견하게 됨으로써 고려불화 표현이 더 다양했음을 알게 됐고, 阿明院 등 15세기 조선 선묘 불화 양식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규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책 뒤쪽에는 화기의 발견 경위와 공개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보존 상태가 뛰어난 화려한 불화를 실견했을 때 느낌은 어떨까.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그 와중에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글자 같아 보이는 부분을 발견했을 때는 이것이 그토록 중요한 정보 제공 단서가 될 것임은 몰랐을 것이다. 판독이 쉽지 않았던 것은 표구시 풀 같은 것이 덧씌워져 잘 눈에 띄지 않았고 작품 조사시 치밀하게 살펴보지 못한 면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해외 한국문화재에 대한 조사 연구의 소극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책 뒤쪽에는 화기의 발견 경위와 공개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보존 상태가 뛰어난 화려한 불화를 실견했을 때 느낌은 어떨까.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그 와중에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글자 같아 보이는 부분을 발견했을 때는 이것이 그토록 중요한 정보 제공 단서가 될 것임은 몰랐을 것이다. 판독이 쉽지 않았던 것은 표구시 풀 같은 것이 덧씌워져 잘 눈에 띄지 않았고 작품 조사시 치밀하게 살펴보지 못한 면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해외 한국문화재에 대한 조사 연구의 소극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화기가 써 있는 부분
이 외에 이 그림이 당초원문, 연화원문, 국화문, 귀갑문 등 고려불화에서 많이 쓰이는 문양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면은 어떤 것들인지 찾아 보여준다. 작가가 전통을 수용하고 새로운 변화를 줄 역량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임을 추정해 보는 동시에, 뭔가 형식화되어가는 고려 후반기의 불화 변화의 징조를 읽어냈다. 그래도 그 품격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