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K는 올해 미술계 결산을 위해 기획자, 학자, 공무원, 작가, 비평가 등 미술 각 분야에서 종사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설문을 드렸습니다.
※ 바쁘신 와중에 설문에 답해주신 30여 분 선생님들께 머리숙여 감사 인사 드립니다. 의견 내 주실 의향이 있으셨는데도 미처 연락 못드려 참여하지 못하신 선생님들께서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세 분야에서 선정해 주신 주제들을 차례로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중에서 먼저 쏟아지는 출판물들 사이에서 분투하고 있는 미술 신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올 한 해 출간된 미술 관련 도서는 백 권이 훌쩍 넘었습니다. 이 중에서 98권을 후보로 하여 주목할 만한 도서를 10위까지 뽑았습니다.
공동 10위
권근영 『아주 사적인 미술관: 이건희 홍라희 마스터피스』 중앙books
이태호 『신의 눈빛을 훔친 남자 빈센트 반 고흐』 마로니에북스
문명대 『한국불교미술개론』 덕주
정형민 『한국 현대미술의 모색 - 해방 후부터 1970년대까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박은순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 돌베개
이수미 『〈태평성시도〉 연구 - 조선후기 이상도시의 시각화』 진인진
케네스 클라크 『문명 - 예술 과학 철학, 그리고 인간』 소요서가
(모두 4표씩을 얻어) 동률로 10위에 오른 책이 7권 있었고, 그 중에 고미술 관련 분야가 세 권 포함되어 있습니다. 태평성시도, 진경산수화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서와 함께, 불교미술 교과서도 골라주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정형민 교수님의 한국 현대미술 개론서,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글을 바탕으로 한 권근영 기자님의 책도 선정되었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깊이 있는 책들, 읽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 있고 일반의 인기-판매 부수-가 그다지 높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책들이 많은데, 설문에 참여해 주신 선생님들의 학구적 의지가 반영된 점도 크다고 보여집니다. 케네스 클라크의 책 등을 골라주신 한 선생님께서는 ‘미술사 이해의 기본이 되는 충실한 책들’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혀주셨습니다.
공동 8위
이경화 『표암 강세황 - 붓을 꺾인 문인화가의 자화상』 소명출판
박재연 『모던 빠리 - 예술의 흐름을 바꾼 열두 편의 전시』 현암사
잘 알려져 있는 강세황의 자화상, 그리고 거기에서 드러나는 화가의 자의식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한 이경화 선생님의 책이 공동 8위로 선정되었습니다. ‘예원의 총수’ ‘삼절’이라고 불리는 표암에 대해 단순한 문인화가로서 피상적인 이해가 아니라 당시 사회 상황, 드라마틱했던 긴 삶 속에서 ‘수응’과 ‘절필’이라는 전략을 사용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자신의 의지로 사회를 관통해 갔던 과정을 파헤칩니다. 저자는 이 과정을 위해 중요 작품들을 꼼꼼하게 살펴봅니다. 작품 세계 전반을 살펴보는 일반적인 연구서와는 조금 다른 전개 과정이 주목되는 책입니다.
공동 4위
김재희 『김달진, 한국 미술 아키비스트 - 새로운 가치 창조, 수집에서 공유로』 벗나래
김재희 『김달진, 한국 미술 아키비스트 - 새로운 가치 창조, 수집에서 공유로』 벗나래
중요한 미술 현장에 홍반장처럼 빠짐없이 등장하시는 김달진 관장님의 이야기입니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미술관련 자료 수집에 있어서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나, 궁금하신 분들을 위한 책으로, 그림자료 수집의 새싹을 보였던 어린시절부터 유튜버로 활동하는 최근까지를 훑어보고 ‘수집’이라는 개인적인 활동이 모두를 위해 체계화하고 공개하여 풍성한 문화의 열매를 맺는 공적 활동이 되도록 한 그 활동의 의미를 짚어 봅니다.
공동 4위
김영나 『한국의 미술들 : 개항에서 해방까지』 워크룸프레스
김영나 『한국의 미술들 : 개항에서 해방까지』 워크룸프레스
연초에 나와서 이미 많은 분들이 보셨을 텐데, 독특한 판형, 흔하지 않은 흥미로운 도판들, 어렵지 않고 단순한 서술 덕에 전공 학생들을 위한 개설서이기도 하면서 일반인들이 해방 이전의 한국미술에 대해 접근할 수 있도록 한 흥미로운 책입니다. 미술사학자이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기도 한 저자가 세계미술사 속에서 한국 근대미술의 흐름을 읽고, 복잡한 시기 미술가들의 활동이 어떤 방향이었는지를 주목합니다. 많은 공백을 메웠지만 아직도 비어있는 곳이 있는 한국 근대미술사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공동 4위
최완수 『추사명품첩별집』 한국학자료원
최완수 『추사명품첩별집』 한국학자료원
오프라인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1976년 간송미술관이 펴낸(지식산업사 출간) 추사명품첩 1.2 추사명품첩별집, 김추사연구초 네 권의 책 중 별집을 영인본처럼 펴낸 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아니라면 연락주십시오). 예전의 자료도 헌책방에서 간간히 볼 수 있는데, 리스트 중에서 이 책을 골라주신 분들은 최완수 선생님의 성함과 제목 자체가 가지는 무게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한국미술 연구가 있다” “노학자들의 역저, 중진학자의 충실한 저서, 꼭 필요한 번역서”라고 써 주신 응답자들의 코멘트는 이러한 책들이 신간 도서로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에 대한 희망이 느껴집니다.
공동 4위
장병탁, 심상용 외 『AI, 예술의 미래를 묻다 -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예술과 가능성』 시공아트
장병탁, 심상용 외 『AI, 예술의 미래를 묻다 -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예술과 가능성』 시공아트
새로운 기술은 늘 예술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AI는 이제 너무나 우리 생활 속에 깊게 파고든 상태인데, 미술가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요. 창작의 도구로서의 기술의 쓰임을 넘어서 예술이라는 개념과 규범 자체가 그로 인해 변화되는 바를 느끼게 됩니다. 예술 분야에서 사용되는 인공지능의 개념, 예술 창작 주체에 관한 논의, 저작권 문제, 동시대 AI와 협업해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과 작품, 앞으로의 쟁점과 전망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골라주신 한 선생님께서는 “여성, 추사, 전각, AI 모두 낯익으나 새로움.”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혀 주셨습니다. 낯익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 깊이 들여다볼수록 새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3위
김홍희, 김혜순 『페미니즘 미술 읽기 -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 열화당
김홍희, 김혜순 『페미니즘 미술 읽기 -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 열화당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영 잘못 쓰이고 있는 요즘,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을 살펴보는 책을 내셨습니다. '여성성과 섹슈얼리티' 장에서는 윤석남(1939)과 장파(1981) 작가를, '몸의 미술' 장에서는 이불(1964), 이피(1981), 이미래(1988) 작가를, '저항적 여성서사' 키워드에서는 임민욱(1968), 송상희(1970), 함양아(1968), 김아영(1979) 작가를 소환해 주제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2021년부터 1년여 간 『경향신문』에 연재된 ‘김홍희의 페미니즘 미술 읽기’를 기본 원고로 하여 수정보완한 것이고, 올해 PHIDON출판사에서 Korean Feminist Artists: Confront and Deconstruct라는 제목으로 영문판이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2위
최열 『옛 그림으로 본 조선 1-3』 혜화1117
최열 『옛 그림으로 본 조선 1-3』 혜화1117
1권은 금강, 2권은 강원, 3권은 경기, 충청, 전라, 경상으로 구성된 '옛 그림으로 본 조선' 시리즈입니다. 최열 선생님은 2020년 옛 그림으로 본 서울, 2021년에는 옛 그림으로 본 제주를 출간, 미술 분야 베스트셀러 단골 작가로 자리매김하셨죠. 조선 실경은 현재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옛그림으로 본' 실경산수 시리즈의 마침표 세 권에 실린 그림만 1천 점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실경의 비교, 지역의 특징 설명 뿐만 아니라 30년간 저자가 모아온 자료에서 우러나온 화가에 대한 이야기, 그림, 땅에 얽힌 역사와 이야기를 씨줄 날줄로 엮어 풀어놓습니다. 이야기와 함께 그림을 많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가장 큰 미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위
윤난지 『그들도 있었다 1, 2 - 한국 근현대 미술을 만든 여성들』 나무연필
윤난지 『그들도 있었다 1, 2 - 한국 근현대 미술을 만든 여성들』 나무연필
확실히 ‘여성’은 여전히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한국 근현대 미술 씬에서 ‘여성도 상당히 많이 있었고 그들의 역할은 이러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책입니다.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에는 4명, 이후 증보한 『120인 선집』에는 5명의 여성만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근현대의 여성 미술가들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뛰어난 결과물을 보인 여성 화가가 없기 때문은 아니었겠지요. 현대미술포럼을 중심으로 한, 30대부터 70대까지 53명의 ‘여성’들이 저자이며, 기획에서 출간까지 5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이들이 골라낸 한국 근현대 여성미술가 105명의 면면을 보면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을 보여준 여성 작가들을 선별하고자 했고, 그들이 페미니즘 의식을 가졌느냐 아니냐는 중요한 구분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존 작가들과의 인터뷰, 대표 작품의 귀한 도판들, 깊이 있게 예술세계를 조명한 글이 책의 가치를 더했습니다.
점점 볼거리가 많아지는 시대,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이렇게 열심히 쌓아올린 귀한 책들이 발견되지 못하고 지나가게 되는 건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많이 쏟아질수록 더욱 신경써 눈여겨 보고 재미와 유익함을 모두 갖춘 좋은 책들을 주변에게 추천하며 마무리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설문지>
<설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