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옛것에 혹하다』 돌베개, 2025.3
오락가락하는 봄날씨에 웅크리고 나간 인사동에는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즐거운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득하다. 50년 전 이곳이 화가, 시인, 대학교수, 선비같은 한학자들과 나까마라 불리던 중간상인까지 여러 종류의 군상이 갤러리와 종이, 붓가게들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이색적이고도 고즈넉한 동네였다는 것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인사동은 모습을 바꾸었으되, 몇 십 년째 똑같은 모습으로 인사동을 누비고 있는 것 같은. 50년 동안 인사동에서 고서화와 서첩을 다루는 일을 하면서 글씨와 서지학, 우리 고미술과 관련된 일을 파고 들어 독보적 위치를 차지했던 인물의 첫 번째 저서가 나왔다. 그를 스쳐간, 또는 놓지 못하고 품게 된 수천, 아니 그 이상의 고미술품들이 있을 텐데, 단 80건이 선정되어 이야기로 묶였다.
먹으로 그린 그림이나 옛 서첩은 현대 한국에서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불가의 세계다. 그러나 어떤 물건이 오래 전해졌다면 그 물건 자체에 뭔가 매력이 있다는 얘기다. 누군가의 그림, 누군가의 글/글씨가 욕망의 대상이 된 것으로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바랐는지 알게 된다. 대상인 고미술 자체가 품고 있는 가치, 그 물건이 제작된 배경에 일어났던 일들, 남겨지는 데 관계된 사람들, 그의 손에 오게 된 경위, 임자를 만나 떠나가게 된 이야기 등의 다양한 스토리가 있다. 저자가 그 물건에 눈길이 가고, 혹하게 되었던 그 사정 그대로 독자도 그를 따라가게 된다.
이렇게 우연히 발견되다니! 그 유명한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거구나! 역시 많이 알아야 보이는군! 아, 미술품의 운명이란! 자료를 탐구하는 일은 중요한 수단이고 필수지만, 저자가 고미술을 쫓는 동력은 작품을 가운데에 두고 과거의 인물들과 소통하고 동감하는 것에서 나오는 듯하다. 담백한 문장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림 속에서 낡은 책 속에서 진실과 마주하는 순간을 묘사하는 곳은 낭만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조선시대의 글씨에 대한 얘기에 할애되고 있다.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글씨에 대해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저자의 개인적인 표현을 사용하는데, 각 글씨의 특성을 알아볼 때 좋은 안내가 되어준다. 글씨를 냉면과 칼국수에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죽남(오준)의 조금 큰 글씨를 보면 석봉 글씨보다 살이 쪄 있고, 또 글씨가 커지면서 전체적인 짜임새가 떨어지고, 수필(붓을 거두어들이는 법)이 자연스럽지 않아 매우 어색해 보이는 단점이 있다.”
“남창은 안평대군과 같은 종으로 미려하게 뻗은 글씨와 달리 왕희지 같은 둥글둥글한 모양의 글씨를 썼다. 같은 송설체를 써도 시대나 환경,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두 사람의 서풍을 국수의 면발로 비유한다면 안평은 냉면, 남창은 칼국수라 할 수 있다.“
“나는 옥동의 글씨를 볼 때 중국 무협 영화 <취권>을 생각한다. 글씨는 비뚤비뚤하지만 그 정격을 잃지 않은 것이 취권으로 쓰러질 듯 말 듯 정도라 자처하는 사파의 무림인을 이겨가는 모습 같다.”
옥동 이서 <옥동 서첩> 30x19cm, 개인
“자하의 글씨를 보면 깔끔하고 예쁘고 부드럽다는 인상을 받는다. 어찌보면 상당히 여성적인 분위기의 글씨라고도 할 수 있다. 둥글둥글한 글씨만으로 자하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면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수려한 외모의, 시대마다 등장하는 풍류남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안중근의 세심대) 글씨를 보는 순간 그 서늘한 기운에 압도되면서도, 그 단어가 여느 마을의 어귀나 뒷산 중턱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내용이라 마음 한편이 쓸쓸하였다.”
저자의 정체성이 수장가인지, 독학 미술사학자인지, 고미술을 다루는 비즈니스맨에 가까운지 잘 판단하기 어렵다. 그런데 방향이 어느 쪽이든 그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글에는 불교, 유교 사상, 역사적 사건, 주요 인물, 미술 이론을 넘나든다. 그러나 사전 지식이 필요하거나 어려운 내용으로 들어가지 않고 각 꼭지의 길이도 짧아서 편안하게 읽힌다. 근대기의 유명인들이 수시로 등장하고, 지금으로서는 상상하지 못하는 몇 십 년 전의 분위기도 전해 준다. 박수근, 이중섭이 청전과 소정과 감히 비교하지도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요즘 아이들은 믿을까?
어떤 우연한 경험으로 인해 정체모를 서화를 손에 넣게 되고, 무언가가 나를 이끌고, 귀인의 도움을 받아 그것의 정체를 밝히게 되고, 몇 백 년 전의 인물과 사건과 공감하는 결말. 누가 읽어도 흥미로운 소재와 구성이다. 그런데 특히 고미술 컬렉션을 시작하려는 사람이거나 나만의 한국미술 심미안을 키우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 태도에 있어서 갖춰야할 덕목 같은 것을 은근하게 제시해준다.
“옛 물건이란 값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에 주고 받는 두 사람의 손에 모든 게 달려 있다.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더 많은 값을 받는다. 아무리 좋은 예술품이라 해도 임자를 제대로 만나지 못하면 그저 책상 옆에 매달린 붓에 불과할 뿐이다. 고미술품 거래는 은근과 끈기로 꼭 필요한 것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싸움이다. 내가 모르는 앞 세대의 무진장한 사료 더미를 끈기 있게 하나하나 찾아가다 보면, 기다림의 시간은 지루한 것에서 재미있는 것으로 변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자하 신위 <석죽도> 23.8x28.9cm, 개인
“섬세한 면은 탄은이 뛰어나고 다양하고 굳센 면은 수운이 낫다. 가장 부드럽고 여린 대는 자하의 것이다.”(본문 중)
내밀한 것들을 기록하고 공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의도치 않게 어리석었던 과거를 공개하거나 노하우를 받는 것 없이 알려주게 되고,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쉽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들, 고서점은 점점 없어지고, 경험을 쌓은 골동상들은 나이들어 가고, 경험과 지식이 세대를 이어가지 못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많이 보고 꾸준히 공부하고,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고미술계가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인사동의 참모습과 그 안에서 일어났던 미시적인 일들은 지금 그 기억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미지로 남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