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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그 때 그 장소 『경성풍경』

-새로이 알게 된 중요한 장소의 위치들

김상엽 『경성풍경-지도와 사진으로 만나는 근대 서울의 원형』 혜화1117, 2005.

일제강점기를 몸으로 직접 겪지 않은 우리 세대는 ‘경성’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담은 말이 복고적 멋으로 다가오는 걸까. 영화, 드라마의 배경으로 인기 있는 것이 뭔가 가상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20대가 주 고객인 카페 이름이 ‘낙랑파라’인 것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공식 명칭 ‘한성부’ 였던 서울은 일제강점기에 공식 행정명칭이 ‘경성부’로 바뀌었다. 식민지 초기만 해도 조선사람들은 경성 대신 한성, 서울 등의 용어를 섞어 썼지만 1930년대 이후 경성이라는 용어 사용이 늘었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단체나 회사에 주로 사용되던 이 ‘경성’이라는 단어는 공간뿐만 아니라 시대도 포함하는 단어가 되었다. 

100년 전 경성은 어떤 모습이었고 어떤 일이 일어났나. 조선시대 서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미술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종종 ‘경성미술구락부’를 맞닥뜨리게 된다. 일제강점기 최대의 미술품 전문 경매회사로 1920년대부터 활발하게 서화를 비롯한 고미술품을 다루었고, 특히 그들이 경매를 위해 발행했던, 미술품 사진을 포함하고 있던 경매도록은 중요한 고미술품들의 수장가와 이동경로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1930년대에 발행된 경매 도록과 관련 명보 등을 모아 묶은 책이 바로 『경매된 서화』(2005)이고, 이 책을 쓰고 펴낸 두 저자 중 한 사람이 20년 후 『경성풍경』이라는 대작을 낳았다.

그는 미술사학자로서 ‘경성’ 지도를 대하고, 그곳에서 경성미술구락부는 어디였을까 찾아보지 않았을까? 서촌에 사는 화가와 문인들의 거주지, 박물관이나 경매소 같은 유명한 기관들이 있었던 장소 등을 짚어보고, 벽수산장과 송석원, 이상과 구본웅이 머무르고 만났던 장소들, 부유한 이들이 가배나 양탕국을 즐겼을 카페를 확인하면서 그 시대의 모습을 좀더 자세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10년 후 두 지도를 세밀하게 파고들어 미술이 아닌 다양한 영역으로, 지도 자체가 담은 정보를 최대화한 목침보다 두꺼운 책을 내리라고는 저자 본인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펀딩해 준 사람들에게 편집자가 남긴 감사의 말로 끝나는데 그 페이지가 1078.)


『경성풍경』은 <경성정밀지도>와 <대경성부대관>이라는 1930년대에 만들어진 두 장의 세밀한 경성지도의 지리정보와 당시 건물과 거리의 사진, 유명 인물과 기관, 사건의 장소를 연결한 책이다. 당시 경성의 풍경은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서울의 공간정보와 혼합, 재구성되어 ‘경성’의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이 책을 서점에서 집어 들고 후루룩 펼쳐본다면 20세기 초반 서울의 모습에 눈길을 빼앗길 것이다. 서대문로터리 모퉁이에 멋진 건물의 서대문우체국이 있었네. 어렸을 때 거기는 재개봉관 화양극장이 있었는데. 주윤발 영웅본색을 거기서 본 것 같은데. 이런 잡생각들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와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이중으로 접힌 별도 책표지에는 <대경성부대관> 위에 구획을 안내해 놓아서, 지금의 서울 지리 지식을 바탕으로 과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도 있다. 자신만의 다양한 방식으로 경성풍경을 즐길 수 있다. 


두 지도 중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항공사진을 그림으로 그려 제작한 파노라마 지도 <대경성부대관(大京城府大觀)>(1936)이다. 올칼라로 입체감과 사실감이 살아있어, 제작 방법을 상상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놀랍다. 건물들은 조감도처럼 살짝 대각선 방향에서 내려다 본 방식으로 그려져 있고, 큰 건물은 창문도 그려 넣어 몇 층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표현했다. 검은색 가는 선으로 테두리를 그리고 산 같은 곳은 자연스러운 음영을 곁들여 채색해, 당시에는 3D 네비게이션을 처음 대했을 때의 감탄을 자아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개천과 강은 푸른색이고 이 또한 그라데이션을 주었다. 미술 책이 아니라고는 했지만 일반적인 자료로 볼 수는 없을 정도로 회화적 느낌이 있다. 171x168cm의 전체 지도를 실제로 보면 그 느낌이 더할 것이다. 


지도에는 ‘일본의 조선시정 25주년 기념’. ‘조선신문사(朝鮮新聞社)가 1936년 8월 1일 발행’ 등의 정보가 꼼꼼히 들어 있다. 편집 및 작도는 오노 가즈마사(小野三正), 저작자 이시카와 류조(石川隆三), 발행자 와다 시게요시(和田重義), 인쇄는 오사카의 정판인쇄주식회사(精版印刷株式會社)에서 시행했다. 이때의 반응이 궁금해 당시의 조선신문 기사를 찾아봤다. 1936년 8월 8일 조선신문 2면에서 광고성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정가 20원. 1930년대의 물가를 찾아보니 쌀 한 가마가 20원 정도 했다고 되어 있다. 상당한 가격이다. 

이 대대적 프로젝트는 일본인들이 경성의 지리적 군사적 중요성을 인지하고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세계를 제패하고자 했던 일제의 팽창 야욕이 최대화되었던 시기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또 식민지 지식인과 민중들에게는 암울한 공포의 시대였더라도 당시의 자본가들은 낙관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풍요의 시기이기도 하다. “1930년대 조선사회는 ‘만주 특수’와 ‘황금광시대’라 불리는 투기의 시기였다. 1930년 1월부터 일본이 금본위제로 복귀하면서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산금 정책에 따라 한반도에 금광 개발 열기가 불어닥쳤고 금값이 폭등했으며, 1931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만주 침략으로 인한 만주 특수로 주식이 최고의 호황을 맞았다. 골동품 수집 열기가 고조되어 남산동2가에 있던 미술품 경매회사 경성미술구락부는 호황의 시절을 보냈다.” (본문중)

1933년에 먼저 만들어진 것이 <경성정밀지도>이다. 세대주 이름까지 넣은 그 정밀함에 감탄하게 되는 지도 제작의 기획이 어떤 의도로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이 자체가 인문적 사료이자 ‘작품’이 됐다. 미에출판사(三重出版社) 경성지점이 1933년에 발행했고, 전체 크기는 183x113cm이며 저작 및 발행자는 시라카와 유키하루(白川行晴), 에리구치정판인쇄소(江里口精版印刷所)에서 만든 것이다. 저자는 <경성정밀지도>의 특징과 중요성 등은 실물로 보기 전에는 실감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당시 관광서 학교 상점 병원 등 주요 건물의 위치의 상세한 지번, 누가 어디에 거주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간송 전형필의 집을 찾아보자. 이 책의 부록에는 일제강점기 경성의 지명변화, 주요 참고문헌 외에 유형별 인덱스(관공서, 교육기관, 언론기관, 문화시설 등등)와 이름순 인덱스를 실었다. 이름순을 이용해 ㅈ의 ‘전형필의 집’을 찾으면 (공관 및 개인거주지)라는 유형을 알려주고 ‘627’을 가리킨다. 627쪽에는 전형필에 대한 소개와 ‘종로4가 112’라는 주소가 있고 두 지도 중 <경성정밀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표시인 흰 네모번호 ‘04’가 있다. (큰 지도인 <대경성부대관>에서 볼 수 있는 장소는 노란 네모번호) 몇 페이지 앞의 지도에서 04가 표시된 곳은 종묘 남쪽 청계로 방향, 광장시장 입구 서쪽 맞은편인 종로4가 사거리 인근이다. 알고 있던 것과 같은 위치에 ‘全鎣弼’이 세밀한 붉은 글씨로 적혀있다. <경성정밀지도>는 정밀성과 정보의 양에서, <대경성부대관>은 예술성과 사실성에서 우수하다는 평을 내릴 수 있다. 


우리가 많이 들어보기는 했지만 실제 그곳이 어디였는지 알지 못했던 중요한 장소의 실제 위치를 명확하게 파악하게 된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성과이다. 예를 들어 오봉빈의 조선미술관의 경우,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도를 통해 광화문통(세종로) 210 광화문빌딩 1층 3호에 있었음을 확인하도록 해 준다. 조선미술관이 조선총독부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상징적인 위치에 있었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이상, 구본웅, 길진섭, 김용준 등이 단골로 모였던 낙랑파라는 현재의 소공동 105번지에 있었고, 소설가 박태원의 숙부 박용남(朴容南)이 운영한 공애의원과 붙어 있었던 박태원의 집도 새롭게 발견했다. 광통교(광교) 부근의 청계천 남쪽에 있었는데 1950~60년대 청계천 복개와 도로확장, 도심재개발 사업 등을 거치면서 도로로 변해 알 수 없었으나 <경성정밀지도>를 통해 특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이왕가박물관,  조선총독부박물관 등의 기관과 문명상회, 박영철이나 이병직 등 유명인들의 집, 조선신궁, 신사, 경무국, 원래의 독립문과 경복궁 동십자각 위치 등도 확인할 수 있다.  



또 이 책은 다양한 부분에서 다정한 배려심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침 꼭 궁금한 그곳의 사진 자료, 장정 방식, 지도상 지점을 알아보기 좋도록 몇 번이나 손을 다시 대었을 편집, 후에 다시 볼 때도 반드시 필요한 인덱스 등등. 무엇보다 가치 있는 것은 이러한 방식으로 지도와 사진 이미지를 연결하는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방식을 기획하고 실행해 낸 창의성과 실행력이다. 처음에는 사진에 눈을 빼앗기지만, 점차 지도가 담은 의미에, 그리고 그것을 세세하게 풀이한 작업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분리 표지 안쪽의 구획 안내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두꺼운 책이 펀딩 목표금액을 훌쩍 넘어선 것은 이 꼼꼼하고 거대한 작업이 가진 가능성을 알아본 이들 덕분일 것이다. 앞으로 경성을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자들이, 근대를 연구하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이 책을 바탕으로 더 깊이 있는 결과물을 낼 수 있게 될 것이고, 무엇보다 이렇게 잡아놓은 윤곽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풀어나갈, 여기에 미처 못 담은 이야기들도 기대된다. 
업데이트 2025.09.2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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