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리뷰 > 도서

편지에 담긴 미술사 『이만, 총총: 미술인의 편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편, 『이만, 총총: 미술인의 편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2025.7

1971년 파리에 머물고 있던 이응노(1904-1989)는 제자인 남전 금동원(1927-)에게 편지를 보냈다,  당시 이응노는 파리동양미술학교를 설립하고 서구 학생들에게 한국의 미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5월의 첫 번째 편지를 통해서는 1971년 가을에 프랑스의 동양박물관과 ‘우리 학교’의 공동 주최로 첫 학교전을 가지게 되었으니, 파리 진출을 위해 작품을 보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파리진출에 길을 열기 위해서 통지하오니 보는 즉시로 폭 화선지 1매 세운 것 정도의 그림과 2, 3매쯤 있는 것을 5월말일로 도착되게 보내시오... 우리 학교 후원인들은 국제적인 대방가들의 심사를 거치게 되니 방심하지 말고 순수한 것으로 우리나라에 독특한 것을 취재로 하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나서 2개월 후 7월에 다시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이고 날카로운 지적이 들어 있다. 

“...이번에 다시 보내온 8매 그림 중 1매도 출품할 만한 것이 없기로 다시 글을 쓰니 이해하시고 공부삼아 또다시 화선지 4분의 1 정도 크기에 작품을 다시 그리어서 팔월 말까지 보내주시오. 동양박물관에는 모든 심사와 준비가 끝났으나 아직 작품이 도착되지 않았다고 미루고 있습니다... 이번 보내온 (것은) 말할 만한 것이 한 점도 없으며, 예를 들어 갈대를 그리고 범의 땅가비를 그린 것을 이야기하자면 첫째 주관이 양쪽으로 분립해져서 시각이 갈리는 것과 풀을 그린 가는 선이 모두 똑같은 선으로써 아무런 생각 없이 의식적으로 그린 것이며 그나마 먹색의 농담이 없다싶게해서 딱딱해 보이며 하늘의 구름도 너무 의식적으로 되는대로 파필을 써서 밑에 가늘게 그린 풀밭의 필치와 전연 맞지 않는 것이며....”

이어서 동양화의 생명, 동양화전의 입장 등을 조곤조곤 설명해 항상 연구하고 머리를 쓸 것을 종용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 그림을 보내면 그에 대해 평을 들을 것을 각오해두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 두 통의 편지는 고암이 한국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 그가 작품과 제자에 대해,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말해주고 있을 뿐 아니라 당시의 분위기, 역할, 인식 같은 것에 대해 수많은 것을 증언하고 있다. 


『이만, 총총: 미술인의 편지』라는 제목의 작은 책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2025년에 열었던, 같은 타이틀 전시의 도록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지와 엽서, 봉투 등 136점의 아카이브자료가 사진으로 실려 있고, 알아보기 힘든 국한문 혼용과 친필 글씨들이 최대한 원문을 살리고 한자를 풀어 텍스트를 싣고, 당시의 상황과 의미에 대한 해설을 실었다. 발신인과 수신인을 합해 총 101명의 인물이 포함되어 있어 작은 책이지만 거기에 담긴 속사정은 적지 않다. 

또 하나의 눈길이 가는 편지가 있다. 

“...동경 한국전 때는 저 때문에 선생님이 많은 욕을 먹었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 얘기를 일체 안 해서 그렇지 실은 저를 앞에 두고 직접 호령을 하는 선배도 있었고 욕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는 그런 그림 집어치우라고 근대미술관 모 씨에게 청원을 올린 작자도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서글프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는 아직 남 앞에 자랑할 만은 작품은 없습니다마는 그렇다고 남도 아닌 자기 나라 선배들에게 기막히는 모욕을 당할 줄이야 정말 몰랐습니다....”


이 글은 1969년 4월 3일 재일 한국인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한 서른 네 살의 청년 이우환(1936-)이 선배 화가인 이세득(1921-2001)에게 보낸 편지글의 일부이다. 

1968년, 해방을 맞은 지 23년이 지난 해에 한일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한국현대회화전》(1968.7.19.~9.1)이 열리게 됐는데, 이우환은 당시 곽인식(1919-1988)의 추천으로 이 전시에 참여하게 된다. (이 전시에는 두 사람 외에도 변종하, 최영림, 정창섭, 전성우, 하종현, 김훈, 김영주, 권옥연, 이수재, 남관, 박서보, 곽인식, 유영국, 김종학, 김상유, 이성자, 유강열, 윤명로 등 20명의 한국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지금의 이우환의 예술세계가 평가받기 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우리는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썼던 편지는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 또 그 이후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많은 생각과 상상을 하게 해 준다. 

이 편지 이후 1969년은 이우환에게 중요한 한 해가 된다. 「존재와 무를 넘어서-세키네 노부오론」, 「다카마쓰 지로-표현작업으로부터 만남의 세계로」 등의 평론을 발표해 일본 미술계 안에서 주목받았고, 나아가 일본미술운동인 모노하[物派]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다. 

편지가 작성된 그 시대를 잘 이야기해 주고 있는 편지들, 화가와 화가, 주변인물들 간의 관계를 나타내 주는 편지들, 그리고 개인적인 기록으로서 어떤 일의 다양한 측면을 입체적으로 알게 해 주는 편지들로 나누어 크게 세 파트로 구성했다. 손글씨에서 느껴지는 특별한 감정들, 정리된 내용 이면에 있었을 맥락 등을 생각하다보면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는 않는다. 

새해가 되어도 연하장을 쓰지 않고, 여행을 가도 엽서를 쓰지 않는 시대가 되고 보니, 글씨로 소식을 전하면서 남겼던 이 흔적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펜이나 만년필로 종이에 적은 손글씨에 우체국 소인이 찍혀 보관된 서랍속의 편지들은 길어야 100년 남짓의 기간 동안의 유물이 될 것이다. 20세기 후반기 미술계의 흔적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다. 특정 시기나 사람들을 중심으로 더 많은 자료를 유기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후속탄을 기대해 본다. 

업데이트 2026.01.12 23:46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