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 『신중도의 세계 –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의 향연』, 불광출판사, 2025
사찰을 가서 불전을 둘러보면, 부처님을 바라보고 오른쪽 벽면에 불교를 수호하는 여러 신들을 그린 그림이 벽화로 그려진 곳을 많이 찾을 수 있는데, 이 ‘호법선신(護法善神)’ 여러 명을 그린 그림을 ‘신중도(神衆圖’)라고 부른다. 여러 호법선신을 모아 불전에 그려 놓고 예배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인데, 이러한 예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예라고 한다.
한국의 불교는 중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신중신앙’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이 부분은 독자적 발전을 이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심에는 『화엄경』이 있다. 불교의 호국(護國)적인 면과 결합되어 독특한 신앙으로 전개되고 조선 후기로 오면 민간의 토속신까지 결합되면서 104위 신중으로 정비된다.
『신중도의 세계』는 한국 사찰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신중도, 신중신앙의 뿌리는 어디인가를 되짚고, 의례의 대상이 되는 그림, 신중도의 구성 요소는 무엇인지, 그 전개 양상은 어떠했는지를 고찰하는 책이다.
불교의 신들은 유일신이 아니라 불법승 삼보와 불교도를 수행하는 다수의 신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도의 전통 신들이 수용된 예가 많지만 전파되는 과정에서 지역의 토속신들도 합류했다. 그러니 뿌리가 다양한 매우 복잡한 구성을 가지게 된다. 이들을 경전에서 일컬을 때도 ‘제천(諸天)’, ‘신장(神將)’, ‘신중’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한다.
제석천도, 사천왕도 같이 개별적으로 그려진 그림도 있고, 신중을 그리면서도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시대도 있어서 신중도의 범주를 섬세하게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신중도의 영역을 정의하는 과정을 위해 신중신앙의 성립과 전개과정, 신중도가 만들어지는 직접적 배경과 신들의 합류 과정을 살펴보고 18~19세기 실제 신중도의 제작 양상에서 도상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설명하는 식으로 글이 전개된다.
신중신앙의 중심의 되는 신들은 대승불교의 경전 『금광명경』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는 사천왕, 공덕천, 제석천, 대변천, 일천자, 월천자 등등 다양한 신중들이 등장하는데 이 경을 읽고 외우면 신들이 보호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한다. 서역에서 중국으로 불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대중을 쉽게 매료시킬 수 있는 방법들, 즉 염불, 의례 같은 것이 점점 더 정밀하게 꾸려졌다. 남송대 천태종의 예를 보면 신중의 체계를 20제천으로 정리해 석존의 좌우에 두 여신 공덕천과 변재천이 있고, 대범천왕, 제석천왕, 동서남북의 사천왕, 금강밀적, 마혜수라, 산지대장, 위태천신, 견뢰지신, 보리수신, 귀자모신, 마리지천, 일궁천자, 월궁천자, 사갈라용왕, 염마라왕 등의 자리배치를 정했다. 한반도에도 전파되어 고려 후기 전탑에 『금강명경』의 신중이 그려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다.
한국 신중도의 성립배경 중 가장 중요한 배경은 벽암문도로, 성총 등이 이끄는 벽암문도는 화엄, 정토사상을 바탕으로 하며 18세기 불교계에서 높은 위상을 가졌던 집단이다. 양란으로 피폐해지고 기근과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나라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정토사상을 바탕으로 한 염불 수행, 신중 신앙의 예배를 하도록 하며 사찰 재건 불사에 앞장섰는데, 이러한 방법이 즉각적인 구원을 필요로 하는 대중들에게 어필했을 것이다.
신중도가 불전에 들어오계 된 계기를 살펴보자면 수륙재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수륙재는 세상의 모든 중생에게 베푸는 의례로, 불보살, 천신, 선인, 지기, 명부 시왕 등 모든 성인과 범부에게 음식을 공양하여 공덕을 쌓고, 아귀와 고혼들에게 감로로 변화된 재식을 베풀어 그들을 구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선 개국 이후 주요 불교 의례가 폐지되는 가운데서도 수륙재는 오히려 국가적 의례로 자리잡아 위상을 유지했다.
수륙재 의례문들을 살펴보면 재의 대상을 상중하 삼단으로 구분하는데, 상단은 불, 보살, 나한 삼보(三寶)를, 중단에는 천장, 지지, 지장의 삼장보살과 천신, 오통선인, 천룡, 선신, 염마라왕을 포함시켰다. 마지막 하단은 아귀, 지옥, 축생의 삼도(三途)에 빠진 십류고혼, 문무관료, 충의장수, 국경을 지키던 관료와 병졸, 산과 숲에서 선법을 배우는 도인, 아귀, 지옥, 아수라의 무리들, 초목에 기대어 있는 모든 귀신, 법계의 중생, 중음(죽은 후 49일 동안 머무는 영혼), 그리고 모든 생명을 지닌 존재가 초청된다. 이 수륙재의 삼단이 사찰 건축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1397년 「진관사수륙사조성기」 등에서는 삼단이 따로 따로 전각에 만들어지다가 조선 후기가 되면서 건물 내 북쪽에 상단, 동쪽에 중단, 남쪽에 하단을 배치하는 형식으로 정착되었고, 오늘날 한국 사찰의 중심 불전에 북쪽에 상단을 두고, 동쪽이나 서쪽에 중단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진화된다. ‘상단 불화’는 주존의 역할이고, ‘하단 불화’라는 말은 <수륙회도>의 화기에서만 언급되어 상단과 하단의 주제는 명확하다. 중단에는 다양한 주제의 불화가 봉안되는데 전기에는 삼장보살도가 많다가 후기로 들어서면서 지장시왕도가 많아졌다. 18세기에는 신중도가 중단 불화가 아니어서 삼단과 별개인 신중단, 별도의 공간에서 모셔지다가 19세기로 들어오면서 중단 의례에 신중 의례가 들어오며 신중도가 중단 불화로 여겨지게 된다. 불전 내에 수륙재 삼단 의례의 탱화가 배치되면서 염불을 통해 신중의 옹호를 바라는 신앙의 확산 등 복합적인 과정을 통해 원래 신중도가 불전 내에 안착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중도에는 어떤 신들이 그려져 있을까. 먼저 신들의 왕인 제석천을 꼽을 수 있는데 제석천은 인도 고대의 번개의 신 출신이다. 나쁜 신인 아수라와의 싸움에서 승리해 모든 신을 주재하는 최강의 신이며 금강저를 무기로 적을 격퇴하는 강력한 군신으로 묘사됐었다. 중국에서 천녀형으로 변화되면서 고려 말의 <제석천도>에서도 천녀의 모습으로 부채를 들고 의자에 앉아 있는 도상을 찾아볼 수 있다. 1750년 제작된 <신중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서 구성요소로 등장한다.
<신중도> 견에 채색, 173.3x204.0cm, 국립중앙박물관
1) 제석천 2) 위태천 3) 아수라 4) 용왕 5) 사천왕 6) 가루라 7) 천자 8) 천동, 천녀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해설 참조)
인도의 군신 스깐다도 불교의 호법신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위태천이 되었다. 구라마천과 같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공작을 타고 있는 모습이거나, 갑옷을 입고 보저(寶杵)를 든 형상이다. 조선 신중도에서는 조선후기에 들어와서 비중이 커진다. 독특한 깃털장식 투구를 쓰고 합장한 양팔 위에 보저를 올려놓은 도상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위태천 도상들
염마라왕 도상들
업을 심판하는 염마라왕은 시왕의 하나로 여겨지기도 하고, 독립된 신앙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머리에 일월작변(日月爵弁)이라는 판을 얹은 관모를 쓴 모습이 많다. 초기 신중도로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인 버지니아미술관 소장 도갑사 <신중도>(1740)의 본존을 염마라왕으로 볼 수 있다.
도갑사 <신중도> 1740, 90.0x75.0cm, 미국 버지니아미술관
이밖에 여동빈, 종리권, 철괴리 등의 중국 신선도 일찌감치 불교에 편입되었는데, 신중도에서 인기있던 신선은 여동빈이다. 백살이 넘어도 동안이고 강력한 신통력을 지닌 이미지의 그는 도교의 팔선 중 하나이면서 불교적 깨달음을 얻은 불교적 인물이기도 한 것이다. 이밖에 역사적 인물인 장군들(울지경덕, 진숙보), 문을 지키는 문신, 귀신을 막아주는 종규, 실존인물이자 삼국지의 캐릭터인 관우 등이 신중도에 등장하며, 도교 경전 한 편을 그림으로 풀어낸 신중도도 있다.
현주 스님의 2018년 박사학위논문 「조선시대 신중도 연구」를 바탕으로 이후 축적된 연구 결과를 반영하여 정리, 단행본으로 엮어낸 것이다. 한국 불교미술사학계에서는 한 작품을 연구한 사례나 예적금강, 제석천, 조왕신 등 개별도상을 연구한 사례는 꽤 이루어져 왔지만 전반적으로 작품 수에 비해서는 성과가 아직 많다고 보기 어렵고 종합적인 연구는 거의 없다. 저자는 성립과정을 다루었는데 아직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지 못하고 여기고 있다.
한국 신중도의 성립 과정을 제대로 고찰하기 위해서는 불교사의 흐름이나 의례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그렇기에 불교미술사 이전에 불교 자체에 대한 지식 없이 이 책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한번 이 책을 훑고 나서 어느 날 한국 내 한 사찰을 방문했을 때, 불전 벽면을 채운 신중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