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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90년대 한국 현대미술'

-30년 전 한국 현대회화의 여러 얼굴 / 국내 1호 등록 사립미술관 토탈미술관의 소장품 기획전

전시명 : 안녕하세요, 노준의입니다
장 소 : 토탈미술관
기 간 : 2023.3.3 - 2023.4.9

우리나라 등록 사립미술관 1호인 토탈미술관(관장 노준의)에서 《안녕하세요, 노준의입니다》라는 제목의 소장품 기획전(3.3 -4.9)이 한 달 여간 진행됐다. 전시의 큰 줄기는 1991년 토탈미술관에서 제정해 90년대에 권위있는 미술상으로 꼽혔던 토탈미술상 수상작 또는 추천작이다. 이 상은 1995년까지 5년 동안 진행됐는데, 전시에는 토탈미술상의 1~5회 추천작과 수상작을 중심으로 30명의 작가가 그린 41점의 소장품이 선보였다. 고영훈이나 김용철, 유연희 등 토탈미술상과 관련을 맺은 작가는 물론 노준의 관장과 교류가 있었던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작품이나 ‘평창동 이웃’ 김구림 등 90년대 초에도 이미 충분히 유명했던 작가의 작품도 포함돼 있다.


다음은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 목록이다.

고영훈, 김구림, 김근중, 김동영, 김용철, 김종학, 김차섭, 김춘수, 김태화, 김형대, 문범, 박승규, 백진, 신성희, 엄정순, 유연희, 윤동천, 이강희, 이경성, 이기봉, 이병용, 이승조, 이정지, 이태현, 정영렬, 제여란, 조덕현, 최명영, 한만영, 한묵


전시는 시기적으로는 1990년대, 지역적으로는 한국, 인맥으로는 토탈미술관이란 주제어로 살펴본 일종의 한국현대미술의 타임캡슐 같은 전시다. 미술계에선 대체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서양화가 동양화의 기세를 역전해 미술시장의 주류가 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토탈미술관의 노준의 관장은 1987년 1호 사립미술관 등록, 1995년 시작된 광주비엔날레와 연계한 미술행사, 1996년 시작된 국내외 작가 매칭 프로젝트인 ‘프로젝트 8’ 등, 그 시절 급격히 이륙하고 있던 한국 현대미술계의 현장에 참여하고 판을 벌이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시작은 1976년 대학로에 연 도자기·금속·장신구 등 디자인 영역을 아우르는 '토탈갤러리'였다.

노준의 관장은 배우자이자 건축가인 문신규 회장과 함께 한국 공예를 현대화하는 프로젝트로 일종의 쇼룸인 토탈갤러리를 대학로에 열었고, 동시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격월간 디자인 잡지 <꾸김>을 1977년 1월호로 창간했다.

“그때 공예 쪽은 화랑이라는 공간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34명을 골라서 전시를 하고 이들의 작품을 갤러리 한쪽에 상설 전시하기도 했다.”(노준의)


그러다 1978년부터 경기도 장흥에 사립미술관 건립 준비에 들어갔다. 제5공화국의 시작과 3저 호황이 동반한 1980년대 초중반 건설 붐이 폭발했고 노 관장은 인테리어와 연계한 작품과 외부 조형물 컨설팅을 하면서 현대미술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장흥에 토탈 야외조각 전시장을 준비하며 시작된 이 미술관은 번번이 당국의 승인을 얻지 못하다가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난 뒤인 1987년에야 허가가 났다. 올림픽이라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대외 행사에 5공 정부는 경기장 건설부터 ‘부대행사’격의 미술 이벤트까지 총력 지원을 했고 결국 이것이 한국 미술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때(1987년) 사회주의권 미술작가 17명이 왔는데 그 사람들에게 관광을 시켜야 됐다. 그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막 개관했고 용인의 호암박물관 정도가 미술관 시설이었다. 그러다 우리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그때 우리는 해마다 장흥에서 이장 면장 군수 이렇게 다 통과시킨 서류 올려서 미술관 허가 신청하면 떨어지기를 여섯 번이나 반복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인데 올림픽 조직위원회라고 연락이 왔다. ‘작가들이 왔는데 하루 정도 맡아달라(?)’고. 일단 제의는 응낙했는데 시골에서 뭘 대접할 게 없었다. 그때 여기에 현대 조각 공원을 추진하고 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던 시절이라. 근처 국도변 식당에 평소하던 대로 닭볶음탕과 묵무침 같은 것 주문하고 대접했다. 행사 당일에 열일곱 명의 작가가 왔는데 사회주의권 사람들이니까 두 명씩 가드가 붙어서 51명이 장흥 조각공원을 찾아왔다.
  그때 우리도 올림픽 개최 소식을 듣고 조각 공원의 운영을 바꿨었다. 조각가도 전문가에게 추천을 받아서 50명을 선정하고 그들에게 그때 돈으로 200만 원씩 작품 제작비를 주고 작품을 설치했다. 그때 한 작가가 ‘30만원이면 충분한데’라고 말을 할 정도로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렇게 조성한 조각공원에 온 사회주의권 작가의 반응이 이전 방문지에 비해서 너무 좋았다. 마침 해외 투어를 준비하며 퍼포먼스 영상 촬영을 위해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공연을 하고 있어서 작가들이 더 재미있어했던 것 같다. 이들 일행이 밤 늦게까지 공원에서 머물며 놀자 같이 온 공무원들이 더 신기해 했다. 그들이 조각공원에서 그렇게 하루 놀고 가니까 그 해 연말에 미술관 허가가 나왔다. 78년부터 준비해서 87년에 허가를 받은 것이다. 야외 조각공원도 최초였고 사립미술관도 최초였다.”



1991년 토탈미술관은 새로운 미술상을 선보였다. 20세기 중후반기 한국 미술계의 치부 중 하나는 정부의 승인이 필요한 미술계의 이권을 둘러싸고 각종 미술단체와 학맥의 파벌 싸움이 치열했다는 점이다. 문신규 회장과 노준의 관장은 200만 원 이상의 사전 제작비와 대규모 개인전 기회를 제공하는 토탈미술상의 물주였음에도 토탈미술상의 운영에서 자신들을 완전히 제외시키고 전문가를 영입했다. 이를 통해 특정 대학이나 인맥의 독식 카르텔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


평창동에 토탈미술관이 문을 연 것도 이 무렵이다. 1978년 평창동으로 살림집을 옮겼던 노준의 관장은 1992년에 살림집 바로 옆에 토탈미술관을 개관했다.

토탈미술관은 1996년부터는 국내외 원로와 신진을 엮은 '프로젝트8'을 선보였다. 첫해는 독일 출신의 토니 크랙과 토마스 루프, 미샤 쿠발과 클라우스 폼 브루흐를 데려왔고 한국에선 중견급 이상인 이우환과 전수천, 소장작가인 김동연과 김영진을 선보였다. 1995년에 시작한 광주비엔날레와 맞물려 프로젝트8은 이듬해 프랑스, 그 다음해에는 영국 등 현대미술 강국의 작품을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 우리 작가를 서구 현대미술계에 알리는 효과를 거뒀다.


200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은 자본 규모가 큰 재벌이 운영하는 사립미술관이 등장하는 등 저변이 크게 확대됐다. 토탈미술관은 2005년 장흥의 조각공원을 상업화랑이자 경매업을 하는 가나아트센터에 매각하고 평창동의 토탈미술관만 운영하고 있다. 노준의 관장은 작가에게 제작비를 주고 조성했던 조각공원의 작품을 조각공원 ‘부동산 매각’과 분리해 학교법인에 기증했다. 저작권과 관련된 잡음이 나올 여지를 없애기 위해 미술관 관장다운 선택을 한 것이다. 이번 전시가 토탈미술관이라는 쇼케이스를 통해 본 ‘90년대의 한국 회화’라면, 학교법인에 기증된 토탈조각공원의 조각품도 80-90년대 한국 조각사의 쇼케이스라는 점에서 2020년대의 한국인에게 보여주는 이벤트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업데이트 2023.04.1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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