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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전후의 한국 미술계 복기 <밤하늘의 별이 되어>전

-1954년 천일화랑이 주최한 김중현 구본웅 이인성 3인 유작전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상업화랑인 천일화랑 창업자이자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이완석
-예화랑이 선보이는 근대 유산 아카이브의 세번째 시리즈

전시명 : 밤하늘의 별이 되어
장 소 : 예화랑
기 간 : 2023.4.5-2023.5.4

<밤하늘에 별이되어>전(2023.4.6.-5.4)은 예화랑의 1층에서 3층까지 이어졌다. 전시에서 1층 가운데에 놓인 이인성(1912-1950)의 작품 두 점이 먼저 눈에 띄었다. 한 점은 비단에 수채로 그린 <귀가>(1935)였고, 다른 한 점은 종이 수채로 그린 <어느 나루터>(1947)였다. 한국에서 보통학교만 나온 이인성은 미술에 대한 재능 하나로 일본인 선생에 의해 일본 유학을 추천받아 1931년 일본으로 건너가 1932년부터 1935년까지 태평양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그는 이 기간 식민지 조선의 조선미술전람회와 일본의 제국미술전람회에서 수차례 상을 받는 등 당대 젊은 재능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던 화가였다. 이인성과 같은 시기, 조선인으로 태평양미술학교에 수학한 인물 중 이완석(1915~1969)이 있었다. 그는 1932년부터 1936년까지 태평양미술학교에서 도안과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1937년에 귀국해, 그때 ‘조고약趙膏藥’으로 사세를 키우고 있던 천일제약의 도안과에 디자이너로 취직했다. 그는 한국의 초기 광고 디자인 등의 산업미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2022년 11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이완석을 포함해 국내 산업디자인의 뿌리를 찾는 기획전 <모던 데자인: 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전에 이완석의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가 다수 소개됐다.



이인성과 이완석은 가까울 수 밖에 없는 사이였지만 이 전시에 이완석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인성이 1950년 한국전쟁 와중에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39세로 연표에 마침표를 찍었고, 한국전이 휴전한 직후인 1954년 9월 이완석이 한국전쟁 중 사망한 3인의 한국화가를 위한 <김중현, 구본웅, 이인성 3인 유작전>을 자신이 문을 연 천일화랑에서 개최했기 때문이다.


김인승 <이완석 초상화> 캔버스에 유채, 28x22.5cm


이 유작전의 개막에 맞춰 천일화랑 옥상에서 열린 추도식에는 서화미술회에서 배운 뒤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20세기 중반 한국화계의 파워맨으로 활동했던 고희동과 동경미술학교를 거쳐 해방 전에 프랑스로 미술유학까지 다녀온 당시 서양화계의 넘사벽 프로필 소유자였던 이종우가 인사말을 하고 이상범, 도상봉, 김환기, 장욱진 등이 참석했다. 50년대 한국화계와 양화계의 중심인물이 모두 참석할 정도의 의미있는 전시였다는 얘기다. 이날 이인성의 아들 이채원(1950-)도 참석해 아버지의 <한정>에 손을 대고 찍은 사진은 이인성의 대작 <한정>의 존재를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유물로 남아있다. 이 전시 이후 이 작품은 미술계에서 사라졌고, 전시를 주최한 예화랑의 김방은 대표도 여러 경로로 수소문했지만 외할아버지(이완석)이 남긴 수첩에서 ‘박사장 소장품’이라는 메모만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완석의 장녀이자 김방은 대표의 모친인 이숙영은 1978년 서울 인사동에서 남편 김태성과 함께 예화랑을 열었다. 첫 전시는 남편 김태성의 할아버지인 규당 김재관이 수학했던 서화미술회의 스승인 안중식 조석진 등을 포함한 근대명가 서화전이었고, 두 번째 전시는 이숙영의 부친인 이완석과 태평양미술학교 동문이거나 인연이 깊었던 구본웅 김환기 도상봉 박수근 손응성 유영국 정규 등의 작품이 출품된 서양화 기획전을 열었다. 2021년 예화랑이 규당 김재관의 작품을 포함해 집안에서 소장해오던 안중식 조석진 최우석 정대유 이도영 강진희 변관식 등 20세기 초기 서화미술회의 자취를 중심으로 꾸민 한국화 전시 <회: 거슬러 올라가다>를 연데 이어, 2022년에는 김태성 가문의 사돈이자 서화미술회에서 활동했던 서화가 강진희(1851-1919)의 미국 체류시 제작했던 작품을 선보였던 <연:이어지다>전시를 선보였다. 강진희가 1887년 주미전권대사에 임명된 박정양을 수행해 미국을 방문해 한국화가 중 최초로 기차를 그린 풍경화인 <화차분별도>(1888, 간송미술관 소장품), <잔교송별도>(1888, 이화여대박물관 소장품) 등을 선보이며 새로운 문물에 노출된 당시 서화가의 대응을 보여줬다.


구본웅 데생


그러니까 이번 전시 <밤하늘에 별이 되어>는 2021년부터 시작된 예화랑의 뿌리를 정리하는 아카이브성 전시의 세 번째 마디가 되는 셈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문을 연 최초의 상업화랑 천일화랑의 유산과 초창기 산업디자이너이자 공예 운동을 주도했던 이완석의 활동상과 그와 연결됐던 20세기 중반의 한국 서양화단의 모습이 <밤하늘의 별이 되어>전의 기둥이다. 1층에 걸린 이인성 작품과 구본웅의 드로잉 작품은 이인성이 미술을 배우고 활동했던 시기의 식민지 조선과 한국전쟁 전후의 한국 사회의 미술 수용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3층 전시는 그 전시를 기획하고 주도했던 이완석이 운영했던 천일화랑의 아카이브 자료와 그가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결과물, 미디어에 실린 상품 광고 디자인, 각종 행사 포스터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 산업 디자인의 1세대 프론티어’로서 조선산업미술가 협회, 대한미술협회, 조선공예가협회를 만들며 작가들과 연합해 다양한 협회를 만든 활동가의 모습을 정리해 보여준다.



전시장

전시장 1층 들머리에 걸린 이인성이 비단에 수채로 그린 <귀가>(1935)는 전형적인 세로폭의 동양화 족자 형식이다. 큰 산이 원경에 배치되어 있고 근경에는 냇가의 빨래터가 화면 가운데에 멀리 사라지는 한복을 입은 여인 두 명이 빨래감을 머리에 이고 가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그때 미술계의 화두였던 향토색 코드와 일본화의 새로운 구도나 색채감을 반영한 ‘동양화’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다.


이인성 <귀가(빨래터 풍경)>1935년, 116x28cm


이인성에 앞서 1910년대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던 그때의 미술 재능자 고희동(1886-1965)이나 김관호(1890-1959), 김찬영(1889-1960) 등은 모두 일본이나 한국에서 학생 시절 떠들썩한 입상 경력을 기록하면서 미디어에서 큰 관심을 모았지만 귀국 이후 모두 서양화 경력은 단절됐고 그나마 고희동만이 그의 출발점이었던 동양화로 다시 전향하면서 화업을 이어갔을 뿐이다.

반면 1930년대에 일본 유학을 떠났던 이인성과 비슷한 시기에 태평양미술학교에 유학한 구본웅이나 이종우(1898-1979)나 오지호(1905-1982), 길진섭(1907-1975) 등은 자신의 유학 경력을 살려나갔다. <귀가>와 함께 걸린 이인성의 1947년작 <어느 나루터>는 색채감이 두드러진 서양식 수채화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미술’보다는 ‘서화’라는 말이 보편적이었던 상황을 보여줬던 게 2021년 전시라며, 2023년의 이번 전시에서는 1930년대 이후 ‘미술’이란 용어와 상징 체계가 표준이 되어가는 한반도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인성 <어느 나루터>



전시장


김방은 예화랑 대표는 “외할아버지 이완석이 운영했던 천일화랑은 전후 처음 생겼던 상업 화랑이자 바로 예화랑의 뿌리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개인적인, 가족적인 인연을 넘어 한국현대미술사의 초기를 함께 했던 작가의 작가 정신을 오늘날에 되살려보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전시에 선보인 작가는 오지호, 구본웅, 남관, 임군홍, 이인성, 김환기, 윤중식, 김향안, 손응성, 유영국, 최영림, 장욱진, 이준, 이대원, 임직순, 홍종명, 정규, 문신, 권옥연, 천경자, 변종하 등 21명. 예화랑 소장 작품과 예화랑과 인연을 맺었던 콜렉터의 개인 소장품을 중심으로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업데이트 2023.05.1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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