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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세기 신라인과 가야인이 죽음을 배웅하는 방식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가 담고 있는 세계관 탐구

전시명 :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 간 : 2023.5.26-2023.10.9
글/ 김진녕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5.26-10.9)이라는 이름으로 한반도 남부인 신라와 가야의 영역에서 출토된 사람과 동물, 사물을 본 떠 만든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 332점을 보여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 유물 중에는 국보 91호인 기마인물형 도기 한쌍과 보물 636호인 서수형명기 등 국보와 보물 15점이 포함돼 있다.

한반도 남부에서 4-6세기에 집중 생산되다가 이후 사라진 상형토기나 토우는 죽음의 의례에 쓰였을 것이다. 망자의 무덤에 묻혀서 15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20세기에 발견된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에 부착된 토우는 4-6세기에 한반도 남부에 살던 사람들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대응했는지 추론할 수 있는 유물이다.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방식은 외부에서 새롭게 흘러들어온 불교라는 세계관을 받아들이기 이전의, 우리 문화의 원형질을 다시 생각해보는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춤추는 여인 토우,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남쪽 무덤, 국립경주박물관


전시장의 들머리에는 '다섯 개의 상형 토기가 한 사람과 함께 갑니다'라는 문구가 벽에 쓰여있고 2022년 10월 보물로 지정된 ‘함안 말이산 45호분 출토 상형도기 일괄’(집모양 도기 한 쌍, 사슴모양 뿔잔 1점, 배모양 도기 1점, 등잔모양 도기 1점 등 총 다섯 점)과 45호 무덤에서 함께 나온 5세기 가야의 금동관이 다섯 개의 박스형 진열장에서 관람객과 마주하고 있다. 금동관의 주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다섯 점의 상형토기에 실었을 것이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떠들썩한 몸짓의 토우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2부 ‘헤어짐의 이야기-토우장식 토기’다. 지금까지 토우는 대부분 토기와 분리된 개별 모습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토우는 굽다리 접시의 뚜껑이나 긴목 항아리의 목 부분에 붙어 다른 토우와 함께 하나의 장면을 이루던 것들이다. 그러한 장면에는 당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생각과 태도, 토우가 제작된 당대의 복식과 악기와 춤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전시 2부에서 소개되는 유물은 1926년 일제강점기에 수습된 경주 황남동 유적 토우장식 토기 97점이다. 토기와 분리됐던 토우가 담당자들의 오랜 노력 끝에 뚜껑 위에 제자리를 찾아 애초 토기 제작자의 의도가 들어있는 하나의 장면을 복원한 것을 보는 것은 이번 전시가 주는 선물이다. 2부 전시는 최근 하나의 무덤 안에서 다량의 토우장식 토기가 발굴되어 주목을 받은 경주 쪽샘 B지구 6호 무덤 일괄품과 토우 최다 발견지인 경주 황남동 유적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총 세 가지 주제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헤어짐의 축제’에서는 공동 의례를 치르거나 줄지어 행진하는 모습을 표현한 토우장식 토기를 볼 수 있다. 의례나 행진 속에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추는 사람이 등장한다. 행렬 모습은 토우장식뿐만 아니라 선각문으로도 표현되었다. 용과 같은 상서로운 동물을 탄 사람, 사슴, 개, 말을 탄 사람 등이 줄지어 가고 있는 신라의 행렬도 구성은 죽음을 슬픔만이 아닌 방식으로 받아들인 신라인의 세계관을 추론할 수 있다.


말 탄 사람 토기, 신라 6세기, 경주 금령총,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두 번째 ‘함께 한 모든 순간’에서는 당시 사람의 일상적인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사냥하는 모습, 말을 타고 있는 모습, 노동을 하는 모습 등이다. 주최측은 “토우로 표현한 50종에 가까운 동물은 장송의례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재생, 생산, 부활, 영혼의 인도 등 다양한 상징성을 지닌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히고 있다.

세 번째 ‘완성된 한 편의 이야기’에서는 인물과 동물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토우장식 긴목 항아리 2점(국보)을 함께 전시한다. 개구리의 뒷다리를 무는 뱀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사이사이에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토우장식 그릇받침ㆍ긴목 항아리, 삼국 4-5세기, 부산 복천동 32호 무덤, 국립김해박물관


2부에 등장하는 토우 중에서 동물형 토우는 움직이는 형태이며, 사람형 토우는 대개는 팔과 다리가 몸통에 일자로 붙어있는 게 아니라 두 팔을 뻗어 활개짓을 하거나 다리를 교차시키며 떠들썩하게 걷고 악기를 연주하고 생명을 만들어내는 성교의 장면을 재현하는 등 살아있는 생명의 활기를 재현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2부에서 기술적으로 주목할 만한 점은 비교적 새로운 기술인 투명 OLED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전시기법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TV형 디스플레이어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 진열장의 한쪽 면을 투명 OLED 디스플레이로 적용해 토우의 이미지를 활용한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며 화면에 구현된 애니메이션이 개별 유물에 대한 조명을 겸하기도 하는 등 새로운 시각적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전체 전시의 마지막에는 1cm크기의 작은 토우 한 점을 벽면에 걸고 핀조명으로 비춰주는 장면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죽음의 순간을 지키는 사람 토우’라는 이름이 붙은 이 토우는 경주 황남동 유적에서 출토된 신라 5세기의 유물로 추정된다. 이 유물은 머리 아래의 가슴 부위에 신체 비례에 비해 커다랗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서 여성으로 추정되고 무릎 아래 횡으로 누운 물체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어 고요한 응시를 부른다. 전시기획자는 “망자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곁을 지킨 누군가가 있었다는 애도의 의미가 담긴 유물”로 해석했다. 망자를 부여안고 애통함을 표현하는 순간은 서양미술을 접한 이에겐 기시감이 겹칠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형상화한 <피에타>의 그 순간. 그 옆 벽면에는 “무덤 속 상형 토기와 토우 장식 토기는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었다는 것을. 삶의 또다른 이어짐,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주최측은 5세기의 한반도 피에타 뒤에 간략한 후일담과 토우의 등장과 퇴장에 대한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설명글을 달아놨다.

“상형 토기와 토우장식 토기는 비슷한 점이 많다. 두 가지 토기 모두 흙으로 인물, 동물, 사물을 본 떠 만들어 무덤에 넣었다. 죽은 이를 보내기 위해 의례에 사용했다. 다른 점도 보인다. 상형 토기가 동물과 사물을 주로 본떠 만들었다면 토우장식 토기의 주인공은 인물과 동물이다. 상형 토기는 3세기 중반 이후, 토우 장식 토기는 5세기에 유행하다가 6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사라진다. 상형 토기는 신라, 가야의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데 반해 토우 장식 토기는 신라의 경주에서 대부분 발견된다.”

“신라는 6세기에 들어와 중앙집권적 지배체제가 강화되면서 새로운 통치 이념으로 불교를 받아들였다. 생명이 있는 것은 업보에 따라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는 ‘윤회’의 불교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면서 거대한 무덤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한 무덤에 다시 추가로 매장할 수 있는 돌방무덤(石室墓)이나 화장한 뼈를 담은 그릇(葬骨器)이 유행했다. 껴묻거리를 성대하게 묻는 전통도 자취를 감추고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 역시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후 등장하는 것이 무덤에서 죽은 이를 기리는(또는 죽은 이를 사후에 계속 시중드는) 토용이 등장한다. 토우처럼 그릇에 딸린 일종의 장식이 아닌 독립된 조각상이다. 전시장 마지막에는 경주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7-8세기)의 남자와 여자 토용, 소와 수레 토용 등이 신라인의 바뀐 세계관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업데이트 2023.05.3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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