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리뷰 > 전시

100년의 시간을 보는 눈 <다시 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

- 1920년대 식민지 시대부터 1980년대 말까지 대격변의 시기
-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격변의 전조이자 산물인 미술품을 다시 보다

전시명 : 다시 보다-한국근현대미술전
장 소 : 소마미술관
기 간 : 2023.4.6-2023.8.27
글/ 김진녕


서울 올림픽공원에 자리한 소마미술관에서 <다시 보다: 한국 근현대미술전>(- 8.27)이 열리고 있다. 주최측에선 25명의 작가가 남긴 회화, 조각, 드로잉 등 159점을 통해 “굴곡의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이 서구적 조형 어법을 본격적으로 수용한 1920년대부터 문화적 대변환의 계기가 된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미술의 전개 과정을 조망하는 자리”라고 전시 의의를 밝혔다. 


한반도의 20세기는 한때 세계 어느 곳보다 가난했고, 수백만 명이 죽고 나라 안팎으로 유랑걸식을 떠나고, 국토가 갈리고, 세계사에서 유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부유해지기도 한 기이한 시간이다. 고작 100년 동안, 나라가 망한 1910년 경술국치부터 1919년 삼일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945년 해방, 1950년 한국전쟁, 1953년 휴전, 1960년 4.19혁명, 1960년 5.16쿠데타, 1964년 베트남 파병, 1977년 수출 100억 달러 달성, 1980년 광주민주항쟁, 1987년 유월항쟁,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에 이르기까지 어질어질할 정도로 빠르게 사건이 일어났고, 사회가 변하고 사람이 변하고 국토도 변했다. 이 전시는 식민지 시절 ‘내지’인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서양식 근대 문물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유학생 수가 늘어난 1920년대부터 1970-80년대에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던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치러낸 서울올림픽까지의 기간을 미술의 시각으로 되짚어 보는 전시인 것이다.



전시는 다섯 토막으로 구성돼 있다.

1부는 ‘우리 땅, 민족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박생광(1904-1985), 구본웅(1906-1952), 이인성(1912-1950), 박수근(1914-1965), 이중섭(1916-1956), 장욱진(1917-1990) 작가의 작품이 걸렸다. 이들은 대략 1900-1920년 사이에 태어난 작가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작가로서 절정을 누린 시간대는 모두 다르고 세상을 떠난 해도 다르다. 주최측에선 이들이 “이 땅의 공기, 이 땅의 얼굴을 즐겨 그렸다”라고 짚었다. 이 시기의 작가는 쏟아져 들어오는 서구 문물에 노출된 첫 세대로 1930년대부터 해방 뒤까지 향토색 또는 한국적인 것(전통)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이 섹션에 전통 농경 사회의 상징이기도 한 소를 소재로 채택한 그림이 많이 걸린 것은 주최측의 의도겠지만, 이중섭이나 장욱진, 박생광, 박수근이 모두 소 그림을 남긴 것은 우연 만은 아닐 것이다.





2부의 ‘디아스포라, 민족사의 여백’이란 제목 아래 배운성, 이쾌대, 변월룡, 황용엽의 작품이 걸려 있다. 배운성과 이쾌대는 월북화가로 분류돼 오랜 기간 조명이 막혀왔던 화가이고, 황용엽은 월남화가, 변월룡(1916-1990)은 조선 유민의 후예로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타슈켄트로 강제이주 당한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이다. 변월룡은 러시아 최고의 미술대학으로 꼽히는 레핀미술대학을 나와 레핀미술대학에서 교수를 지낼만큼 엘리트 사회주의 화가였다. 그가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러시아 정부의 지시로 전후 북한 미술계의 재건을 위해 1년 여 동안 북한에 파견 근무를 하면서 김용준이나 최승희 등 월북 인사의 초상화를 그리고, 북한측 시각에서 바라본 판문점 풍경화를 남기는 등 한국 미술계와 접점을 만들어나갔다. 북한에서 귀화제의를 거부하고 추방된 뒤로는 단 한 번도 북한 땅을 밟지 못했지만 고향인 연해주를 자주 찾아 그의 분신처럼 보이는 소나무 그림을 많이 남겼다. 즉 조선인으로 태어나 조선말을 배웠지만 정식 교육은 러시아어로 받고 강제 이주를 당한, 말하자면 소비에트 연방의 소수민족 출신인 변월룡은 20세기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전시장에는 그의 <자화상>(1963)과 그가 북한 체류 중 그렸던 <평양의 누각>이나 <대동문> 등의 작품이 걸려 있다.




변월룡 <자화상>1963, 캔버스에 유채, 75x60cm, 개인


3부는 ‘여성, 또 하나의 미술사’란 이름으로 해방 이전에 활동했던 나혜석과 일본 유학 경험이 있는 박래현과 천경자, 프랑스에서 활동한 이성자와 방혜자, 박래현에게 배웠고 미국 유학을 한 최욱경 등 여섯 명의 화가 작품이 등장한다.



4부에서는 ‘추상, 세계화의 도전과 성취’란 제목으로 김환기, 유영국, 한묵, 남관, 이응노의 세계를 볼 수 있다. 김환기(1913-1974)는 그가 한창 활동하던 20세기 중반에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한국 현대미술의 대명사이다. 경매시장에서 한국 작품의 최고가 기록 레이스에는 여전히 그의 이름이 있다. 이번 전시에 등장한 1950년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돌>과 <산>(1955)은 그가 한국의 전통 안에서 현대 회화로의 이행 과정을 치열하게 모색했다는 것을 유감 없이 보여준다. 특히 <돌>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돌>(1949)과 같은 맥락의 작품으로 그가 괴석에 일회성 관심을 가진 게 아니라는 점이 확인된다. 또 이번 전시에 나온 구본웅의 <막漠>(1940년대) 역시 괴석 소재 그림이라는 점에서 1940-50년대 한국 현대 화단의 분위기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김환기 <돌> 1950년대, 45x33cm, 개인





마지막 섹션인 5부에서는 ‘조각, 시대를 빚고 깎고’란 이름으로 김종영, 권진규, 김정숙, 문신의 작품을 모아 놨다.



<다시 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은 민족(전통의 현대화)이나 이산, 여성, 추상, 조각이란 분류로 20세기 한국 미술을 통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부터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전과는 다르게 좀 더 구체적인 맥락으로 20세기 한국 미술을 소개하고 있는 전시다. 김환기나 천경자 등의 작품 중에는 그 동안 전시장에서 보기 힘들었던 작품들이 들어있다는 것도 반갑다. 



업데이트 2023.06.14 19:37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