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영원, 낭만, 꽃>전
장 소 : 전남도립미술관
기 간 : 2023.6.20 ~ 2023.11.5
글/ 김진녕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영원, 낭만, 꽃 Romance Rooted in Eternity: Flowers in Bloom>(6.20 – 11.5)이라는 이름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는 꽃이 등장하는 근대 이전의 유물을 고려시대 청자에 음각으로 새겨진 연꽃 무늬부터, 17세기 프랑스 왕 루이 14세가 자신의 왕좌 뒤에 걸어뒀던 대형 태피스트리, 19세기 조선시대 청화백자에 새겨진 꽃무늬, 19세기 전후의 자수병풍 등과 천경자, 오영재, 오승우, 정희승, 송수민, 김홍주, 구성연, 김상돈, 한운성, 손봉채, 강종열, 오딜롱 드롱, 가스통 두앵, 돔 로베르, 샤를 르 브룅, 폴 세귄 베르토, 폴 아이즈 피리, 메이플 소프, 제니퍼 스타인캠프, 제임스 로젠퀴스트 등 동서양, 근대 이전과 현대 작가의 작품 등 7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인류문명사에서 언제부터 꽃을 장식적인 요소로 이용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지금까지 발견된 인류 문명의 아카이브를 훑어보면 가장 오래된 그림에 등장하는 대상은 대개는 식용이 가능하거나 공포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었다. 아마도 꽃은 의식주에 대한 욕구가 안정적으로 해결된 뒤에 등장했을 것이다.
고대문명 중 현재까지 전해지는 유물이 가장 많은 그리스 로마 문명에서 꽃을 생활 속 장식적인 요소로 많이 소비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로마의 마시모국립궁전박물관에는 기원전 39년에 제작된 ‘빌라 오브 리비아’의 프레스코화를 전시하고 있다.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회랑형 전시실의 벽에는 실내에서 마치 정원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받게끔 실물대의 열매가 열린 나무와 꽃, 수풀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유럽 대륙에선 기독교의 보급으로 문명의 발달이 1500년 동안 왜곡되며 르네상스에서야 원근법을 발견했다고 얘기하지만, 이미 기원전 39년에 로마인은 직관적인 원근법을 사용해 꽃과 수풀, 새를 어우러지게 배치해 장식적 요소로 소비하고 있었다.
기원 전후의 그리스로마 문명 유산 중 폼페이의 유물에는 지난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의 <폼페이전>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화환(festoon)을 든 큐피드’라는 프레스코화나 2019년 에트루리아문명전에 소개된 석조 유골함에 꽃줄이 등장한다. 이 꽃줄의 기원은 그리스 문명이고 이 조각 양식은 기원 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활동으로 지금의 인도 북부의 간다라 지역까지 전해진다. 간다라 지역에서 제작된 ‘꽃줄을 든 동자상‘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구 4510/4509)으로 편입돼 있다. 적어도 기원전후 서방에서 동방까지 전지구적으로 꽃줄무늬 장식이 유행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고려시대까지 올라간다. 다섯 개의 섹션 중 첫번째 섹션 ‘연화재생, 재생의 염원’ 코너에 고려시대 장인의 솜씨를 볼 수 있는 청자음각연화문 과형 주자(고려시대, 12세기, 서울역사박물관 소장품)가 선보이고 있다. 이외에도 해남 대흥사 소장의 십일면 천수관음보살도(19세기), 조선 19세기 전후의 청화백자 등 우리 전통 문화 속의 꽃무늬 활용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대흥사 소장의 두 점의 불화는 전남 유형문화재 179호로 지정된 유물로 이번이 절 바깥으로 나온 첫번째 외출. 조선 후기 불화 중에도 우아함이 돋보인다.
두 번째 섹션 ‘자유와 역동, 구체적 삶의 복귀’에서는 자수 화조도 병풍과 모란도 병풍, 자수 꽃무늬 보자기 등 서울공예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빌려온 유물을 선보이고 있다. 18세기 조선왕실에서 채색 병풍화 제작이 많이 제작됐고 이는 민가에도 번져 18-19세기는 병풍화 수요와 공급이 엄청났던 시기다. 프랑스의 태피스트리가 집중소개되고 있는 3부 섹션과 비교해 보면 문화에 끼치는 지리적, 기후적 요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3부는 ‘시대를 넘어서’라는 이름으로 프랑스 모빌리에 나쇼날(Mobiler National)에서 빌려온 작품과 천경자나 오승우, 김홍주 등 한국 근현대 작가의 작품을 함께 배치하고 있다. 모빌리에 나쇼날은 루이 14세가 세운 욍립가구관리소의 후신으로 13만 점의 가구와 장식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프랑스 모빌리에 내셔널에서 빌려온 작품은 9점으로 대부분은 태피스트리이다. 벽에 걸어 놓는 용도로 사용되는 태피스트리는 서양의 주거문화를 따져보면 우리의 병풍에 해당하는 쓰임을 갖고 있다. 샤를 르 브룅 원작으로 고블랭 공방이 제작한 <봄(사계)>는 17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유물로 루이 14세의 왕좌 뒤를 장식했다고 한다. 크기도 세로 3.18m, 가로 4.64m에 달하는 대작이다.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오딜롱 르동의 원화와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태피스트리도 우리의 자수 유물과 비교해볼만 하다.
네 번째 섹션 ‘미래로부터’는 지난 2020년에 국내에 집중 소개됐던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동영상 작품 하나로 채워졌다.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그의 기존 작품을 재편집했다고 한다.
마지막은 ‘삶의 확장, 가능성을 향해’라는 이름 아래 현대 작가의 작품을 집중 소개하고 있다. 전통 상여의 구성요소를 활용한 2021년 광주비엔날레에 선보였던 김상돈의 <카트>, 극사실 터치의 한운성의 양귀비, 동백 화가로 유명한 여수 출신 강종열의 흰 동백, 정희승의 장미 연작 등 장르를 넘나드는 현대의 꽃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퇴장로는 대단히 정적인 정물화풍의 꽃사진이지만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난 시리즈와 하프시코드의 금속성 마찰음처럼 밟으면 존재감을 불러 일으키는 박기원의 설치작품 <대화>가 상반된 감각을 환기시킨다.
주최측은 이번 전시에 대해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개최를 기념하며 꽃으로 표현되어 온 예술작품 속에서 낭만성을 찾아보고자 했다. 생성하고 소멸하는 삶의 표상인 꽃은 인간의 전 생애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가지며 시각예술로 표현되어 왔다. 한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언제나 꽃이 함께 했음을 살펴보는 이 전시에서 ‘낭만’을 읽어보고자 하는 것은 거대한 하나의 관념으로서의 총체성에서, 개별적인 삶의 구체성과 역동성으로 눈을 돌려보고자 하는 시도”라고 밝혔다.
꽃과 관련해 동양과 서양의 문화 유산과 현대작품을 엮은 커다란 꽃다발 같은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