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여성, 문 밖을 나서다 – 일하는 여성들》
서울역사박물관, 2023.05.05.~10.03.
18세기 말, 강세황의 손자 강이천이 ‘한경사(漢京詞)’에서 표현한 한양의 모습 중에는 “한낮 광통교 기둥에 울긋불긋 걸렸으니, 여러 폭의 비단은 병풍을 칠 만하네. 근래 가장 많은 것은 도화서의 솜씨로다. 많이들 좋아하는 속화(俗畵)는 산 듯이 묘하도다.”라는 부분이 있다. 아마도 당시 유행했던 속화, 즉 풍속화의 주된 스타일은 우리가 알고 있는 풍속화첩이나 행려풍속도 병풍의 장면 등 김홍도 스타일이었을 것이다.
파리 국립기메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여러 한국 문화재 가운데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행려풍속도(또는 사계풍속도) 8폭 병풍이 있다. 선비와 기생들이 여러 계절에 풍류를 즐기는 모습 등의 풍속도 병풍이 서울역사박물관의 기획전시 《한양여성, 문 밖을 나서다》에 (잘 만든 복제본으로) 나와 있다.
(참고 도판) 전 김홍도 <풍속도 8폭병풍> 18세기, 지본채색, 1,330x4,560cm(각 80.5×44.6cm),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전시장
인류학자인 루이 마랭(Louis Marin, 1871~1960)이 유럽을 횡단하고 시베리아와 만주를 거쳐 1901년 서울에 와 머무를 때 구입한 것이다(그가 수집한 조선의 물품과 사진자료들이 기메박물관 등에 기증되었다). 기메박물관 홈페이지에서는 이 그림을 김홍도라는 18세기 동아시아의 중요한 화가의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국내 학계에서는 전칭작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표현형식 상으로도 18세기라기보다는 19세기 말 무렵의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김홍도 <행려풍속도 병풍>과 필치를 비교해 보면 인물과 의습의 표현에서 유려함이나 심플하고도 세련된 필치보다는 다소 형식적이고 장식적이며 복잡한 선을 볼 수 있다. 그래도 훈련된 직업화가에 의해 그려진, 김홍도를 강하게 의식하고 존경하며 그린 그림이고 누군가 후에 金弘道라는 관서를 넣지만 않았어도 더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왼쪽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홍도 작 행려풍속도(1778년) 부분(취중송사). 오른쪽은 기메 소장 같은 부분
한양 여성의 삶을 다루는 흥미로운 이 전시에서 이 그림이 선택된 이유는 제 2폭과 4폭 때문이다. 병풍 그림에 선비들과 함께 노는 다양한 여인들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고, 그중 두 폭에 의녀가 등장한다. 의녀임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검정색 비단으로 만든 가리마(납작하게 누른 사각모 같은 형태)를 쓰고 다녔기 때문이다.
기메박물관 소장 풍속도병 제 4폭
궁중에서 각종 일을 하던 여성들, 잡일하던 무수리, 내의원과 혜민서 의녀, 상의원 침선비(針線婢) 등은 기생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지방 관비 중 기녀를 뽑아 악기연주나 춤 같은 것을 가르쳐 궁중행사에 동원했고, 이후에는 악기를 남자가 맡으면서 기녀를 올리지 않다가 인조대에 들어서 궁중행사에 기녀 역할의 필요가 대두되면서 의녀, 침선비 등이 기녀의 역할을 대신하는 식이 됐다.
병풍 2폭과 4폭에 가리마를 쓴 의녀들이 보인다. 4폭에 양반과 기녀가 연회를 즐기고 있는 주변에는 대나무로 틀을 짜고 넝쿨을 채워 만든 고급스런 울타리 취병이 둘러싸고 있다. 전시장에도 취병 울타리를 재현했다.
<김씨가 범을 때리다> 『삼강행실도』 1580년, 38.0x22.3cm
..범이 남편을 물고 달리니, 김씨가 나무활을 들고 고함지르며 나아가 왼손으로 남편 잡고 오른손으로 범을 치니, 예순 걸음은 가서 범이 놓고 던지고 앉으므로, 김씨가 이르기를, "네가 어찌 내 남편을 물고 나까지 물으려 하느냐?" 하니, 범이 가 버렸다...
조선시대 한양의 여성들의 모습을 재구성해 보여주는 전시이기에 다양한 계층의 여성 생활을 보여주게 되는데, 규문 안의 여성, 한양 도성 내에서 일하는 여성, 성 밖의 여성 이렇게 차례로 구분해 놓았다. 조선시대 여성은 지극히 제한된 테두리 안에서 지내야 했던 억압받는 처지였고 신분이 높을수록 더 자유롭지 못했다. 양반 부인네의 모습과 위상을 말해주는 회화적 자료로 서울역사박물관 소장의 경수연도 한 점을 보여준다.
미상 <경수연도> 1655년(?), 39.0x28.2cm, 서울역사박물관(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이거(李遽, 1532~1608)라는 인물이 1605년(선조 38년) 자신이 참여하는 계회에서 자신의 어머니 채씨부인(당시 102세), 강신(姜紳)의 어머니 윤씨부인(83세) 등 장수를 누린 10여 명의 사대부가 대부인들을 위해 잔치를 연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경석(李景奭)과 유명한 허목(許穆)의 서를 남겼는데 이거의 어머니 채씨부인이 만 100살을 맞자 조정이 논의해 선조 임금이 찬문을 내려주고 예조참의였던 이거에게 한성부우윤의 벼슬을 제수했다. 2년 뒤 연세가 70세 이상 되는 모친을 모시고 있는 대신들이 계모임을 맺고 잔치를 열기로 했고, 선조가 잔치에 필요한 물자와 악공(樂工)을 내려주고 ‘경수연(慶壽宴)’이라는 잔치 이름까지 붙여 주었다고 한다. 영광이 아닐 수 없는 이 일에 대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계원들은 잔치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자손에 전하도록 했다. 1605년의 그림 원본은 병자호란 시 소실되고 이거의 손자가 1655년 다시 제작했다.(서울역사박물관 소장본은 1655년 재제작된 화첩 그 자체가 아니라 18세기 후반경 다시 제작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몇 백 년 전 이 자리에서 일하던 여성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재미있게 배치해 놓았다. 채소, 과일, 반찬 등을 팔던 여성 운영 시전인 '여인전'과 바늘, 실, 화장품, 족두리 등 여성 관련 물품을 팔던 시전 관련 유물과 기록들도 흥미롭다. 도성 내 시전에서 올린 상언과 그에 대한 비변사의 처분이 나와 있어 그 시절의 시전의 생생한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경직도> 114.2x44.6cm, 강홍빈 기증
농사와 함께 누에치고 비단짜는 일을 그린 것으로 시경의 빈풍칠월편에서 유래했다.
친잠의례 중 왕비가 사용하는 뽕잎 따는 도구(갈고리와 광주리) 도판과 재현품
수라간 현판
바닥에 "뎡유가례시큰뎐고간이뉴오"라고 새겨진 백자 그릇, 1837, 21.9x8.0cm, 서상현 기증
1837년(정유년) 헌종과 효현왕후 혼례 때 대전에서 쓰기 위해 만든 20개의 그릇 중 5번째 그릇이라는 의미다. 내부에는 福, 외부에는 壽자가 적혀 있다.
이밖에 인현왕후가 여성들의 교육을 위해 만든 일종의 보드게임인 ‘규문수지여행지도’, 길쌈을 장려하기 위해 왕비가 주최하는 친잠례의 자세한 내용들, 궁녀가 활동했던 ‘수라간(水刺間)’ 현판과 궁중에서 사용한 백자와 자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한양 도성 밖으로 나와서는 남양주 수종사탑을 재현해 인목대비가 발원한 불상을 넣어두었고, 상궁 최씨가 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나 깨달음을 얻도록 발원한 의정부 원효사 소장의 ‘묘법연화경’(최초공개), 단종복위를 하다 죽임을 당한 금성대군을 모신 금성당 하당의 재현, 무신도, 무구 등으로 무녀의 모습까지 되살린다.
여러가지 무신도
<삼불사할머니> 87x58cm
금성당 본당 무신도 중 하나. 수명과 복을 관장하고 아기를 점지해 주는 신이다.
조선시대 ‘서울’ ‘역사’ ‘여성’을 키워드로 해 찾을 수 있는 다양한 기록과 자료로 재구성한 시원한 전시장이 한여름 무더위를 잠시 잊게 만들어주었다. 언젠가 기메박물관의 풍속도 병풍 원본도 실견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