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조선양화>전
장 소 : 호림박물관
기 간 : 2023.9.2 ~ 2023.11.30
글/ 김진녕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조선양화朝鮮養花_꽃과 나무에 빠지다>전( - 11.30)이 열리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강희안 (姜希顔, 1418년(태종 18)- 1464년(세조 10))이 지은 <양화소록 養花小錄>부터 조선 후기 영조 연간에 활동한 유박(柳璞, 1730~1787)이 지은 <화암수록花庵隨錄> 등 원예 서적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식자 계층에서 원예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이번 전시는 그게 어느 정도의 관심이었고, 어떤 수준까지 현실에 반영됐는지 유물로 보여주는 전시다.
전시는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제1전시실에는 ‘側_꽃을 사랑한 조선’, 제2전시실에는 ‘志_나를 키우는 꽃’, 제3전시실에는 ‘養_꽃을 키우는 나’란 제목이 붙어있다.
1전시실은 조선 후기 궁궐과 세도가, 왕족 등 조선 최상류층 주거에 실현된 원예문화를 그림으로 볼 수 있는 자료가 대거 등장하고 있다.
고려대박물관 소장의 <동궐도>는 19세기 전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국보 249호로 지정된 유물이다. 이번 전시에는 모사도가 나왔지만 오히려 진품보다 더 선명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창경궁과 창덕궁을 담은 동궐도에는 조선 궁궐의 온실인 창사루의 모습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온실의 존재는 15세기에 나온 <산가요록>에 이미 동절양채(겨울에 채소 기르는 방법) 항목에서 이미 확인되고 있다. 그 증거물이 창사루인 셈이다.
<동궐도> 앞에는 조선의 제17대 왕 효종(1619-1659)이 왕이 되기 전, 즉 봉림대군으로 불리던 시절 살던 낙산 밑의 집과 그의 동생 인평대군(1622-1658)의 집을 그린 <인평대군방전도>(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품, 모사품)가 걸려있다. 세 살 터울의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은 함께 청나라로 볼모생활을 하기도 했다. 낙산을 등지고 지은 인평대군의 집에는 석양루가, 종묘를 등지고 있는 터에 지은 봉림대군의 집에는 조양루가 있고, 두 집 사이에 방울을 단 동아줄을 걸고(영삭鈴索) 수시로 기별하는 등 우애가 좋았다고 한다. 조양루와 석양루가 있는 집을 한 장에 모두 담은 일종의 지도그림인 <인평대군방전도>는 17세기 조선 최상류층이 살던 집의 조경 실태를 알 수 있는 도감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정원 경영에 투입된 잉여력의 끝판왕격인 유물은 정조의 사돈이자 순조의 장인으로 세도정치를 연 당대의 실권자 김조순(1765-1832)이 경복궁을 넘보듯 내려다보는 백악 기슭에 지은 별장인 옥호정 일대를 그린 <옥호정도>다. 지난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고 2019년 국박 전시에 한 번 등장한 이후 오랜만에 전시장에 등장했다. 18-19세기 조선 정원 경영의 생생한 화보 자료가 되는 이 그림은 경사지를 극복하기 위한 계단식 화단인 화계花階, 창덕궁에서 확인되는 취병, 파초나 괴석, 연꽃을 기르는 매립형 수반 등 궁궐에 버금가는 정원을 가꿨던 김조순의 위세와 19세기의 고급한 사치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제2전시실에는 ‘志_나를 키우는 꽃’에서는 강희안의 <양화소록>(호림 소장본)과 강희안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국박 소장의 <절매삽병도>(덕수 2192)가 들머리에 놓여있다. 이외에 네 면에 사군자가 그려진 ‘백자청화 사군자문 사각병’(호림 소장품), 국보인 ‘백자청화매죽송문호’(호림 소장품), 조희룡의 홍백매도 8폭 병풍, 김규진의 ‘묵죽도 10폭 병풍’(아모레퍼시픽 소장품)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養_꽃을 키우는 나’란 이름이 붙은 제3전시실의 대표 유물은 단연 정선의 자화상격인 <독서여가>(간송미술관 소장품)다. 보물로 지정된 이 작품은 18세기 조선 상류층의 취향이 그림 속에 기호처럼 박혀있다. 그림 재주로 입신한 정선은 죽을 때까지 안락하고 유복하게 지냈다. 그림 속 정선은 툇마루에 나와서 사방관을 쓰고 쥘부채를 손에 쥔채 꽃이 핀 청화백자 화분에 심은 모란과 난을 보고 있다. 방안에는 책이 가득찬 서가와 한쪽 벽에 산수도 한 폭이 걸려있다.
오랜만에 전시장에 등장한 이 작품을 위해 호림쪽에선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에게 의뢰해 전시장을 꾸몄다. 고재를 이용해 툇마루 처럼 벽면을 꾸미고 그 사이에 <독서여가>를 걸고 그림 속의 겸재는 전시장 가운데 놓인 청화백자에 시문된 꽃나무를 보고 있는 형식이다.
이 공간에는 유박(柳璞, 1730~1787)이 지은 18세기의 원예서적인 <화암수록花庵隨錄>과 18-19세기 조선 상류층의 취향이자 최신 유행이었던 고동기와 유리로 만들어진 박래품, 고상한 취향을 드러내는 양껏 쌓아놓은 책, 옥으로 만든 기물과 실내에서 기르는 꽃을 상징하는 구근식물 등을 빼곡하게 그려넣은 책가도. 그 시절에 광풍처럼 불었던 괴석 붐을 반영하는 이끼와 괴석을 전시장 말미에 배치했다. 영조 연간에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꽃핀 18세기 조선 르네상스 시절 유행했던 ‘감각에 대한 탐닉’을 재현해 놓은 셈이다.
전시장에 유물로 재현하지 못한 ‘감각에 대한 탐닉’은 도록에 실려있다.
이번 전시의 도록에 실린 이종묵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글 <조선시대 원예서를 통해 본 선비들의 꽃나무 사랑>이란 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지난 기사년(1749) 겨울 오찬(吳瓚, 1717년(숙종 43)∼1751년(영조 27), 자는 경부 敬夫)이 매화가 피었다고 하기에 나(이윤영 李胤永, 1714년(숙종 40)-1759년(영조 35))와 이인상(李麟祥, 1710년(숙종 36)-1760년(영조 36)) 등 여러 사람이 산천재山天齋로 가서 모였다. 매화 감실에 둥근 구멍을 뚫고 운모로 막았더니 흰 꽃잎이 환하여 마치 달빛 아래 보는 듯하였다. 그 곁에 문왕정을 올려놓았는데 다른 돌그릇 몇 종도 또한 청초하여 마음에 맞았다. 함께 문학과 역사에 대해 담론하였다. 한밤이 되자 오찬이 백자 큰 사발 하나를 가져오더니 맑은 물을 담아 문밖에 내다 놓았다. 한참 지나고 보니 얼음이 2할 정도 두께로 얼었다. 그 가운데 구멍을 내고 물을 쏟은 다음 사발을 대 위에 엎어놓았더니, 흰하여 마치 은으로 만든 병 같았다. 구멍을 통하여 촛불을 넣고 불을 밝혔다. 불그스름 밝은 기운이 빛을 띠어 상쾌하기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이윤영의 <단릉유고> 권5 중)
한겨울 매화가 피면 매화를 넣어둔 감실에 구멍을 내고 운모로 막은 다음 그 빛을 이용하여 매화를 보았다. 투명한 운모로 만든 작은 병풍을 둘렀기에 그 빛에 의하여 달빛 비친 매화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더욱 품위를 더하려고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주공周公이 문왕을 위해 만든 문왕정文王鼎을 본뜬 솔과 그밖에 다른 골동품도 함께 진열했다. 여기에 더하여 한밤에는 큰 백자 사발 하나에 맑을 물을 담아 문밖에 내다놓고 얼린 다음 그 가운데 구멍을 내고 촛불을 넣고 불을 밝혔다. 얼음과 촛불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매화 감상이 된 것이다.
이를 빙등매氷燈梅라 하였다. 이인상이 이때 ‘오경부의 산천재에서 새로 주조한 동작銅爵을 구경하고, 얼음 등불을 걸고 매화를 구경하였다. 소라껍질을 가져다가 술을 마셨다. 진사 김백우(金伯愚, 尙默, 1726년(영조 2)-1779년(정조 3))도 술통을 들고 왔다’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다.
吳敬父山天齋오경보산천재
觀新鑄銅爵관신주동작
懸氷燈賞梅현빙등상매
取螺甲飮酒취라갑음주
金進士伯愚尙默김진사백우상묵
亦攜壺榼而來역휴호합이래 (능호집 권1)
觀新鑄銅爵관신주동작
懸氷燈賞梅현빙등상매
取螺甲飮酒취라갑음주
金進士伯愚尙默김진사백우상묵
亦攜壺榼而來역휴호합이래 (능호집 권1)
고동기를 감상하고 얼음등을 켜고 매화를 감상하며 술을 마시던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의 유복한 조선 엘리트 모임의 여가 문화가 눈에 그려지듯 펼쳐진다. 동으로 만든 참새 모양의 작爵같은 고동기는 전시장에 놓인 책가도 속에 등장하고 있다. 불균질하게 산란하는 빙등이 빛어내는 찰랑거리는 감각은 전시장 1층에 설치한 ‘매화감실’을 통해 경험해 볼 수 있다. 감실은 조선 후기 매화 애호 풍조가 확산되면서 눈 내리는 한겨울에 꽃 핀 매화를 보기 위해 실내에 마련한 일종의 매화 온실이다. 한반도의 기후는 매화 자생지에서는 눈이 내리지 않는 이른 봄에 핀다. 섣달 그믐에 ‘설중매雪中梅’를 보기 위해 복숭아 나무와 접을 붙여서 실내에서 기르는 ‘원예 노하우’가 확산됐고 이렇게 만든 매화분은 비싼 값에 팔렸다. 조희룡이 쓴 <호산외기>에는 김홍도의 ‘매화 사랑’이 등장한다. 김홍도가 자신의 그림을 서른 냥에 팔아 꽃이 핀 매화 화분 하나를 사는 데 스무 냥을 썼다는 것이다. 당시 서른 냥이면 변두리 초가삼간을 한 채 살 수 있는 돈이었다고 한다.
호림박물관의 전시기획자는 18세기 감각의 탐닉자들이 열광했던 빙등매 완상을 재현하기 위해 매화감실을 만들고 밀랍으로 만드는 윤회매 장인인 김창덕 작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에게 의뢰해 빙등과 꽃 핀 매화가지의 그림자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