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강서경 개인전 <버들 북 꾀꼬리>
장 소 : 리움미술관
기 간 : 2023.9.7 ~ 2023.12.31
글/ 김진녕
리움미술관에서 설치미술가 강서경(b.1977)의 <버들 북 꾀꼬리>(2023.9.7 - 2023.12.31)가 열리고 있다. 강서경은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고 이후 평면,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현대미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이전 작품을 보면 동작이나 소리 같은 비시각언어를 시각언어로 바꾸는 데 관심이 많은 듯 보였다. 특히 조선시대의 춤이나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형상화한 경우가 많았다.
‘자리’ 연작은 조선시대 궁중무용인 ‘춘앵무(春鶯舞)’에서 춤을 추는 공간의 경계를 규정하는 화문석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고, 조선시대 악보인 ‘정간보(井間譜)'의 이미지를 활용한 ‘정井’ 시리즈, '독자적인 소리의 최소단위는 아니지만, 소리의 최소단위를 하는 역할을 표현하는 최소단위'를 뜻하는 언어학 용어인 ‘모라(Mora)’를 빌려온 모라 시리즈 등 시간의 진행을 전제로 하는 신체적 감각이나 청각적 감각을 시각 이미지로 옮기고 있다.
이번 전시도 그의 이전 전시처럼 전시를 관통하는 영상 작업물이 리움 로비에서 상영되고 있다. 신작 영상의 제목은 <버들 북 꾀꼬리>. 이에 대해 주최측은 “마치 실을 짜듯 버드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꾀꼬리의 움직임과 소리를 풍경의 직조로 읽어내던 선인의 비유를 참조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시각·촉각·청각 등의 다양한 감각과 시·공간적 차원의 경험을 아우르는 작업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들머리에 세워진 <井-버들> 시리즈에는 이번 전시의 모티브로 활용되는 버들과 북과 꾀꼬리가 나오는 시가 쓰여져 있다. 전통 음악인 가곡에서 '우조(羽調) 이수대엽(二數大葉)'에서 활용되는 ‘버들은’의 가사다.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구십 삼춘(三春)에 보내느니
나의 시름/누구서 녹음방초(綠陰芳草)를 승화시(勝花時)라 하던고?"
국립국악원이 해석한 노랫말(풀어쓴 정가)은 다음과 같다.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구십 일 봄 석 달 동안 짜내나니 나의 시름
그 누가
녹음 드리우는 초여름이 꽃피는 봄보다 좋다고 하던가
이 시조에서 ‘북(spindle)’은 타악기(drum)가 아니라 천을 짜는 베틀에서 씨실을 얹어 날실 사이로 오가는 나무틀(베틀의 부속품)을 가리킨다. 버들과 꾀꼬리라는 낭만적인 상징에 반복적인 노동과 ‘짜내는 시름’을 등가교환으로 노래하는 복잡한 심경의 화자에 대한 묘사가 탄식을 불러 일으킨다. 역시나 이번 전시도 음악적인, 청각적인 요소가 모티브로 쓰였음을 암시하는 차용이다. 또 씨실과 날실이 오가며 짜인 섬유를 활용한 작품이 이번 전시에 대규모로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전시장 M2관의 1층과 지층을 관통하는 벽면에 부착된 대형 패브릭 소재의 <밤 #21-1-24>가 그런 예이다.
지층과 1층 두 개의 전시장에 모두 1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가 최근 2년 여의 투병 생활을 하면서 제작한 신작과 이전 작품이 섞여있다. <정井>, <모라>, <자리>, <그랜마더타워> 등 기존 연작에서 이어지는 작업과 <산>, <귀>, <아워스>, <기둥>, <바닥>과 같은 새로 선보이는 작업이 섞여있다. 금속을 사용한 신작 <산> 시리즈는 1층에 집중 설치돼 있다.
1층에 설치된 산 시리즈나 귀 시리즈는 강서경의 기존 작품과 달리 폐곡선이나 사각형의 닫힌 선을 사용하지 않고 비정형의, 열린 곡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마치 선화禪畵의 산세 묘사인 듯 한 개나 두 개의 구부러진 선으로 표현한 산 시리즈는 바닥에 놓이거나 공중에 매달린 채 전시돼 있고 관람객은 이들 사이를 통과하며 열린 풍경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가가 기존에 보여줬던 원과 사각형이 변주하는 공감각적인 미니멀리즘과는 다른 결을 모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최측에선 “전시는 마치 한 폭의 풍경화가 3차원으로 펼쳐져 공감각적으로 공명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속에는 사계를 담은 산, 바닥과 벽으로 펼쳐지는 낮과 밤, 공중에 매달린 커다란 귀, 작지만 풍성한 초원과 제 자리를 맴도는 둥근 유랑, 그리고 각자의 자리를 만들고 전시의 보이지 않는 틀이 되는 다양한 사각이 함께 한다. 이들의 얼개는 틀과 여백, 따뜻함과 차가움, 부드러움과 딱딱함, 정지와 움직임 사이의 풍성한 울림을 담아낸다”고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