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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과 먹으로 변혁을 추구한 한국화가 2인展 - <필묵변혁-송수남, 황창배>

-동양화의 기본, 붓놀림과 먹의 번짐으로 변혁을 추구한 두 한국화가
-80,90년대 한국화 절정기의 에너지

전시명 : <필묵변혁-송수남·황창배>
장 소 : 세종미술관 1,2관
기 간 : 2023. 11. 28 - 2024. 1.14

글/ 김진녕



세종문화회관이 자체 기획한 <필묵변혁-송수남·황창배>전이 세종미술관 1,2관에서 열리고 있다. 제목에서 보듯 20세기 한국화단에서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남천(南天) 송수남(宋秀南, 1938-2013)과 소정(素丁) 황창배(黃昌培, 1947-2001)의 작가 인생 절정기였던 80-90년대의 작품 위주로 선정한 80여 점의 작품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제목에 등장하는 ‘필(筆)과 묵(墨)’은 이들이 전통 동양화가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변혁(變革)’이란 말은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걸맞는 변화를 작품에 도입했던 화가라는 점에서 쓴 것으로 보인다. 송수남은 1980년대 '한국 수묵화 운동을 이끈 주역'이라 평가받은 화가이며, 황창배는 염색, 수묵, 채색, 아크릴, 장지 등 다양한 재료를 도입하고 발묵과 비백, 선묘와 채색 등 어떤 전통 기법에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 시절 ‘황창배 현상’까지 일으켰던 한국 현대화가다.


전시는 9개의 섹션으로 구분된다.


송수남 <붓의 놀림> 2007년, 2008년 작. 국립현대미술관



첫번째 섹션은 송수남과 황창배의 작품이 각각 두 점씩 걸려있다. 송수남의 붓의 놀림 시리즈 중 1997년작과 2001년 작이 포함되는데, 모두 국현 소장으로 송수남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특히 1997년 작은 발묵과 필획이 결합된 추상작품으로 비슷한 시기에 한국 단색화진영에서 등장했던 스트로크 위주의 작품과 비교해볼 만하다. 같은 공간에 걸린 황창배의 작품은 <무제>(1994)와 <무제>(1990)이다. 1994년 작은 비구상으로 분류할 수 있고, 90년 작은 구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90년 작의 화면에는 개를 닮은 크리처가 등장하고 화면 좌측 상단에 일식으로 보이는 금환이 그려져있고, 개의 입에서는 불이 뿜어져나오고 있다. 우리 민간 설화 중에 불개가 해를 훔치려고 물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일식이라는 설화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황창배 <무제> 1994년, 한지에 아크릴릭, 184 x 424cm, 개인


황창배 <무제> 1990년, 화선지에 혼합재료, 144 x 366cm, 개인



주최측에서는 송수남과 황창배 회화를 ‘필’과 ‘묵’, ‘변혁’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고자 했던 이번 전시의 의도를 반영한 대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섹션은 황창배가 시도한 현대한국화가 걸려있다. 1993년작 <무제>는 화면 반을 ‘天地者萬物逆旅’(천지라는 것은 만물의 여관)이란 이백의 시구와 단기 4326년 겨울이란 서명으로 채웠다. 나머지 오른쪽 반은 화병에 꼽힌 화초를 묘사한 듯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캔버스에 아크릴릭으로 형상화한 이 ‘화초’와 ‘화병’이 서예의 비백을 검은 색과 노란 색의 아크릴물감으로 두텁게 부조처럼 물성을 얻은 형태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찰라적이고 비물질적인 비백을 서양화의 재료로 물성화시킨 것이다. 황창배가 왜 한국화의 변혁가란 이야기를 듣는지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렇게 한 번의 붓질로 여러 색이 공존하는듯한 붓질을 전면에 내건 서양화 진영의 작품은 요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황창배 <무제> 1993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 x 97cm, 개인



세 번째 섹션은 황창배의 1980년대 작품으로 19세기 이후 유행한 민화나 문인화, 괴석도 모티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 걸려있다. 네 번째 섹션은 송수남의 대표작이 등장한다. ‘단순화된 이미지와 대칭적 구도, 운필의 리듬, 반복적인 필획, 발묵 효과를 이용한 추상적 풍경 등’ 송수남의 세계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모두 등장한다. 다섯 번째 섹션은 송수남과 황창배의 절정기인 1990년대에 제작한 대작이 등장한다. 이번 전시에 등장한 거의 유일한 송수남의 색채 작품도 이 섹션에 걸려있다.


송수남 <붓의 놀림> 1995년, 패널에 한지,채색, 194.6 x 245.2cm, 국립현대미술관


여섯번째 섹션은 송수남이 문인화 모티브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 걸려있고, 일곱 번째 섹션에서는 황창배가 밑그림없이 즉흥적인 발묵효과를 이용한 숨은 그림 찾기 시리즈(1986-87)가 선보이고 있다. 당대의 대중이 알아듣는 유머가 넘치는 현대미술을 선보인 황창배는 이 시리즈를 통해 미술계의 칸막이를 넘어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었다.

여덟 번째 섹션은 ‘남천 산수’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그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던 송수남의 수목 산수와 소품을 소개하고 있다. 아홉 번째 섹션은 황창배의 매달려있는 영혼 시리즈 두 점과 가로로 4미터가 넘는 대작 한 점, 송수남의 발묵과 필획이 결합된 연도미상 작품 한 점(토탈미술관 소장품)이 전시 마지막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들고 있다.


송수남 <산수> 전시 전경



황창배의 작품은 최근에도 이런 저런 전시에 자주 나오는 등 접할 기회가 많았지만 송수남의 경우 그의 사후 본격적으로 그의 세계를 다룬 전시가 드물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가 반갑다.

송수남이 1981년 한국화가 40여 명이 참여한 <오늘의 전통회화 81>전시를 시작으로 1990년 <90년대 한국화 전망전>까지 10여 년 동안 매년 40명에서 100여 명의 한국화가가 참여하는 수묵화 전시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80-90년대 한국 수묵화 진영의 흐름을 보여주는 주요한 작가라 더욱 그렇다. 미술평론가 오광수(b.1938,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의 도록에 실린 글 <필묵의 변혁>에서 송수남이 이끈 80년대의 한국화 운동에 대해 이런 평가를 했다.



“80년대 초에 등장한 수묵화 운동은 80년대 중반을 넘어 거의 후반에까지 잔영을 남긴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특징은 그룹 단위에 의해 추진된 것이 아니란 점에서 먼저 찾을 수 있다. 어떤 미술운동이든 대체로 이념의 결속체로서 그룹에 의해 촉발되고 추진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수묵화 운동은 결속체로소 그룹이 없이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그 예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하고 있다. 이 운동은 한시적인 기획전시를 통해 전개되었고 그러한 한시적인 전시체제를 통해 운동을 실천해 나간 것이 되었다. 전시의 규모는 4,5명의 소단위에서 몇 십 명에 이르는가 하면 최대 100명을 넘는 대단위의 것까지 다양한 구성을 띠었다. 그러니까 초대된 작가들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를 내건 전시에 따라 이에 호응한 작가가 구성된다는 점에서 한시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한시적인 만큼 전시가 시간의 구속을 받고 있지 않다는 또 하나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1년에 몇 차례씩 열리는가 하면 예고도 없는 당돌한 전개의 양상이 다분히 게릴라식이었다는 점에서도 이 운동의 특징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운동은 홍대라는 미술 아카데미의 동문에 의해 전개되었다는 점도 지적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선후배의 동문에 의해 그룹이 만들어지는 예는 이 운동에 한하지 않고 많은 그룹이 일종의 동문전이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함은 우리 미술의 고질적인 단면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룹으로서의 결속에 있어 같은 동문끼리가 유리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조형이념이라는 대의에서는 아무래도 결격의 사유가 될 수밖에 없다. 자칫 친목회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대부분의 동문그룹에서 목격해 온 터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이 운동이 오랜 기간을 통해 지속되었다는 것은 퍽 예외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념의 결속에 못지않게 작가들 사이의 친화적인 요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본다. 이 운동의 가장 연배가 되는 작가로 홍대 교수였던 송수남을 비롯한 몇몇 작가가 포함된다. 그러니까 수묵화 운동은 이들을 중심으로 발전되었고 그것의 추진은 전적으로 이들에 의한 이념의 개진과 더불어 친화적 결속이 탄탄하게 적응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략)


수묵화 운동은 80년대 초반에서 중반에 이르는 시기의 왕성한 전개 양상을 보이다가 80년대 후반에 오면서 서서히 개별의 모색으로 바뀌면서 막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잔영은 80년대 후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운동을 통한 정신적인 긴장감이 개별로 전이되면서 치열한 의식의 고양이 잔영을 이끌었다고 본다. 송수남의 작가적 성숙도 이 운동을 통해 이루어졌으면 운동이 끝나고 개별적인 모색기에 들어가서도 수묵이 지닌 열기를 잃지 않고 지속시켰다. 스스로도 밝혔지만 수묵인이라는 명칭이야말로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이지 않을 수 없다.”


송수남 <붓의 놀림> 시리즈 외 전시전경


이번 전시는 송수남과 황창배라는 20세기 후반에 걸출했던 두 작가의 절정기 작품을 유감없이 볼 수 있는 전시다. 그래서 전시를 보고 나면 전시장에 걸린 황창배가 '1979년 이후 그림'이란 인장을 찍기 이전의 작품이나 송수남이 70년대에 그린 전통 수묵화에 대한 궁금증도 생긴다. 



업데이트 2023.11.2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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