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기 간 : 2023. 12. 22(금) ~ 2024. 4. 14(일)
글/ 김진녕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는 2천 년 전 남인도의 미술을 소개한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기획 <나무와 뱀 Tree & Serpent : 인도의 초기 불교미술 Early Buddhist Art in India>의 한국 전시이다. 메트로폴리탄 전시는 지난 7월 17일부터 11월 13일까지였고 바로 한국 전시로 이어진 것이다. 기원 전 230년부터 서기 225년까지 인도 데칸고원 동남부 지역을 다스렸던 사타바하나 왕조 시절의 인도미술을 집중 조명하며,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전시에 나온 작품 중 클리블랜드박물관 등 미국 ‘로컬’ 박물관이 출품했던 유물을 제외하고 뉴델리국립박물관 등 인도 12개 기관, 영국, 독일, 미국 등 4개국 18개 기관의 소장품 97점이 포함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이번 전시에 대해 “메트의 전시가 그동안 북인도에 편중되어 있던 인도 불교미술사 연구의 시점을 남쪽으로 돌리고자 노력한 학술적 전시였다면, 한국 전시는 우리 관람객이 생명력 가득한 남인도 미술 세계에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전시가 될 수 있도록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했다”고 밝혔다. 출품작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구성을 바꾸고 메트 전시에는 없던 그래픽을 이용한 프로젝션을 대거 활용하는 등 전공자가 아닌 보통의 시민도 즐길 수 있는 요소를 다양하게 집어넣어 전시를 다시 꾸몄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인도 미술이 간다라미술 정도인 상태여서 북인도 미술과 남인도 미술을 구별하는 시도가 국내에선 큰 의미를 갖기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일반적으로 그리스로마 양식의 신체 비례와 서양인 이목구비를 갖춘 흑청색 편마암 재질의 불교 조각품은 간다라미술로, 간다라풍보다 둥글둥글하고 육감적인 조형감각을 붉은색 사암에 실현한 조각은 마투라미술로 소개됐다.
이번 <스투파의 숲> 전시는 문명의 회랑 지대, 실크로드 길목인 인도 북부의 간다라 지역에서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으로 헬레니즘과 인도 토착양식이 결합해 탄생한 인도 불교 미술이 북부 인도보다 습하고 무더운, 그래서 자연의 생명력이 더 짙푸른 인도 내륙으로 확산하면서 기존 토착신앙의 상징과 결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예를 들어 메트의 전시 제목에 쓰인 ‘나무와 뱀’에서 ‘나무’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자리인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의 보리수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뱀은 한국 문화에서는 몹시 부정적인 상징이다. 한국에서 뱀이 긍정적인 의미를 획득한 것은 서양식 근대화 이후 서양문화권에서 의술의 상징으로 뱀 문양이 소비되는 것을 직수입해서 쓰는 경우를 빼고는 전무하다시피하다.
그런데 초기 불교미술을 다루면서 왜 ‘나무와 뱀’이란 이름을 썼을까. 한국 전시를 기획한 류승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인도 신화에서 뱀은 머리가 여러 개 달린 뱀 ’나가naga’를 의미한다. 고대 인도 미술 속 나가는 물을 관장하는 신으로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나가도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귀의해 불교에 편입됐다”고 밝혔다. 전시장에 등장하는 조각 속의 나가는 공격 직전의 코브라처럼 머리를 치켜들고 입을 활짝 벌려서 우산이나 양산처럼 석가모니를 보호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뱀의 역할은 불교가 동아시아로 전파되면서 용왕(龍王)으로 대체된다. 우리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용 이미지 자리에 나가를 대입하면 얼추 들어맞는다는 얘기다. 이는 번안과 토착화라는 문화 전파 과정의 전형적인 사례일 것이다.
연꽃의 의미도 인도와 동아시아가 다르다는 것을 전시장의 유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에겐 ‘향원익청(香遠益淸)’처럼 비록 세속의 진흙탕 속에 두발을 두더라도 고고한 이상을 추구하는 상징으로 쓰이는 연꽃도 고대 인도 미술에선 금은보화를 쏟아내거나 왕성한 생명력을 뜻하는 행운의 상징으로 소비되고 있음을 유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97점의 인도 초기 불교미술품 중 절반에 가까운 45점이 남인도 스투파를 장식하던 부조라고 한다. ‘스투파stūpa’는 불교에서 부처나 고승의 사리를 안치하는 ‘탑塔’을 뜻하는 인도의 옛말이다. 주최측은 이번 전시의 제목을 ‘스투파의 숲’이라 이름짓고 전시를 ‘신비의 숲’과 ‘이야기의 숲’ 등 두 가지 섹션으로 나눠서 구성했다.
첫번째 ‘신비의 숲’에서 남인도 특유의 습하고 풍요로운 자연환경 속에 뿌리내린 남인도 토착 신앙에 불교적 상징이 결합된 유물을 보여준다. 인도인은 숲 속의 정령이 풍요를 가져와 준다고 믿었는데, 그중에서도 나무와 대지에 깃든 신을 남성형은 약샤, 여성형은 약시라 불렀다. 자연의 정령이던 이들이 불교로 편입돼 스투파 장식의 조각으로 등장한다. 인도의 토착 신화 속 동물인 마카라 역시 스투파를 장식하기 위해 등장한다. 두 번째 섹션인 ‘이야기의 숲’에서는 불상과 팔상도를 다룬 조각 등 석가모니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유물을 선보인다.
이번 ‘나무와 뱀’의 한국판 전시인 ‘스투파의 숲’은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선 고대 인도의 초기 불교미술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만 인도 대륙 남부의 자연환경과 그에 적응한 인간이 만들어낸 토착 신앙의 ‘신비로운 세계’까지 조망했다고 하기에는 가져다 쓸 수 있는 유물의 종류나 수량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