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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산수화를 연 박대성의 '비경’

-한국화 해외 투어 전시의 오늘
-서울과 경주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대규모 개인전

<개방과 포용> 솔거미술관 - 2023.10.28 ~ 2024.6.16
<소산비경> 가나아트센터 - 2024.2.2 ~ 2024.3.24
글/ 김진녕

소산 박대성 작가의 전시가 두 곳에서 열리고 있다. 그가 관장이기도 한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개방과 포용》( - 6.16)이 이 진행 중이고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는 《소산비경》( - 3.24)이라는 이름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인드라망> 2023, ink on paper, 855 x 470cm (솔거미술관 전시)



이 두 전시의 성격은 다르다. <개방과 포용>전에 등장하는 작품은 주로 2022-2023년에 작업한 최근작으로 박대성이 끊임없이 탐구하고 개척하고 있는 근황을 알려주는 전시라면 <소산비경>은 기본적으로 그 동안의 소산 작업을 망라해 한국 수묵화의 세계를 잘 모르는 해외 관객에게 선보였던 리스트에 국내 컬렉터들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신작을 더한 전시이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이어진 해외 순회전의 출발은 2021년 7월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정관자득 靜觀自得>이었다. 전시 부제는 ‘박대성 해외출국전’. 그만의 시선으로 고요히 응시하며 얻어낸 독특한 시점을 결합시킨 한라산 봉우리, 불국사 설경, 금강산 설경, 백두산 폭포, 붓글씨와 그림의 결합이라는 동양화의 전통 등이 두루 포함된 작품이 선보였다.



<고미> 2023, ink on paper, 162 x 377cm



해외 순회전은 2022년 3월 독일 베를린 중심가에 자리잡은 한국문화원에서 란 이름으로 시작됐다. 5월 27일 베를린 전시가 끝나고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가 6월부터 8월까지 카자흐스탄국립박물관에서 같은 제목의 전시가 열렸다. 이어 9월부터 이탈리아 로마의 한국문화원에서 두 달간 전시를 했다. 전시 기간 중 국립로마미술고등학교에서 한국미술과 박대성의 작업 세계에 대한 강의 요청이 들어와 학생 90여 명의 학생에게 박대성이 직접 강의하기도 했다. 유럽쪽 전시가 이어지고 있는 동안 미국 로스앤젤레스(LACMA)에서 《Virtuous Ink and Contemporary Brush》라는 이름으로 7월 17일 박대성의 개인전이 열렸다. LACMA에서 한국 작가를 초청한 전시가 열린 것은 처음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애초 그해 12월 11일까지 예정됐던 LACMA 전시는 해를 바꿔 2월5일까지 연장됐다. 현지 반응이 좋았던 탓이라고 한다.

LACMA 전시가 이어지는 기간인 9월 세 곳의 미술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박대성 개인전이 열렸다. 동부의 최대 도시 뉴욕에서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찰스왕센터에서 《Ink Reimagined》전이 9월 14일 시작됐고 닷새 뒤인 9월 19일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센터에서 박대성의 개인전 《Ink and Soul》이 열렸다. LACMA 전시와는 다른 라인업으로 신작 위주의 산수화 13점이 선보였고 이중 <솔거의 노래>(2022)가 하버드대학교 미술관의 소장품이 됐다.



<천년배산> 1996, ink on paper, 880 x 243.5cm



하버드 전시가 시작되고 닷새 뒤인 9월 24일 다트머스대학교의 후드미술관에서 《Ink Reimagined》(2022.9.24- 23.3.19)라는 이름의 개인전이 시작됐다. 이 전시는 대형 산수화 위주의 작품이 출품됐다. 22-23년 동시 다발적으로 열린 미국 전시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김성림 다트머스대 교수의 주도로 전시가 열린, 네 개 대학이 연합해 펴낸 순회전 연합도록 『Ink Reimagined』가 출간되기도 했다.

마지막 순회전은 미국 버지니아주 메리워싱턴 대학교의 듀퐁갤러리에서 열린 《Ink Reimagined》(23.10.26.-12.10)이다. 그리고 귀국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다소 길게 해외 순회전의 일정을 소개한 것은 유럽이나 미국 등 해외 판매망을 갖추고 있는 대형 갤러리에서 서양화나 설치미술을 하는 한국 작가를 픽업하는 경우가 있지만, 아직 그들에게 낯선 한국화 장르는 좀 다르기 때문이다. 박대성의 해외 순회전에는 LACMA 같은 해외 대형 미술관과 현지 한국문화원(유럽), 대학미술관(미국 중부와 동부)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 사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성림 교수처럼 한국 미술에 익숙하고 한국 수묵화의 경쟁력이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현지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코리아 판타지> 2022, ink on paper, 1200 x 500cm


전시가 열렸던 다트머스대 후드미술관장인 존 스톰버그는 “박대성의 작업은 한국 미술의 과거와 동시대 미학을 융합한다. 그의 필법과 소재, 그리고 재료 사용은 전통의 방식을 고수하나, 동시에 그가 색채를 표현하고, 작품의 크기와 구성을 결정하는 방법은 현대적이다”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박대성은 이번 순회전에 대해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다. 일평생 ‘보이지 않는 뿌리'를 찾았기 때문에 관람객이 그 진정을 느낀 것”이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귀국전인 <소산비경>전 개막식에서도 "우리가 일상으로 접하는 수묵화를 해외에서는 새로운 것을 보는 것처럼 놀라워한다는 인상을 가는 곳마다 받았다. 우리가 수묵을 옛날 것이고 고리타분하다고 폄하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소산비경》 전에는 올해 신작인 <경복궁 돌담길>이나 <청룡>, 2022년 작인 <인왕산>같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 추가됐다. 물론 해외 투어에 참여했던 <삼릉비경>(2017)은 다트머스대 전시에서 큰 호응을 얻은 작품으로 2019년 솔거미술관 전시 이후 국내에선 선보인 적이 없는 대작(가로 8.3m, 세로 4.8 m)이다. 박대성 작가의 경주 스튜디오가 자리잡은 삼릉숲의 멋진 소나무와 작업실 마당 한 켠의 석등, 탑 등을 그만의 시각으로 조화시킨 작품이다. 박 작가의 대표작인 <불국사 설경> 시리즈는 올해 작업한 ‘최신 작품’으로 관람객과 만나고 있다.


박대성 작가

팔순을 바라보는 박대성(b.1945)이 성공한 불국사 시리즈 같은 기존의 영광만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가 지금도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는 것은 솔거미술관의 《개방과 포용》전에 그 물증이 고스란히 놓여있다.

1988-89년 중국 화문기행, 1993년과 1995년 실크로드 탐방, 1994년 1년 여 간의 뉴욕 체류를 통해 작품 세계를 넓혀온 그는 2000년 이후 붓과 먹이라는 재료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도 매일같이 붓글씨 쓰기로 아침을 시작한다고 한다. 명필가의 서법을 익히고 붓으로 글씨를 쓰는 원리를 배우기 위해 역사에 기록된 유명 서예가의 글씨를 따라쓰는 임서를 매일 아침 행한다는 것이다.



<인왕산> 2022, ink on paper, 125.5 x 100.5cm


그 임서의 결과물이 《개방과 포용》전의 한 전시실을 채우고 있다. 성당 시대의 서예가인 장욱의 초서를 임서한 작품이나 상형문자 시리즈가 그것이다. 이런 붓글씨 쓰기는 그가 최근에 작업한 대작에 중요한 요소로 들어가 있기도 하다. 서양화의 극사실주의 작업을 하는 작가의 작품을 방불케 하는 도자 시리즈나 19세기 기명절지화를 연상시키는 <고미> 시리즈에 선보인 전통 공예품 또는 신라의 상징과도 같은 문화유산을 그린 소품 시리즈에 쓰인 기법과 소재가 <코리아 판타지>(2022) 같은 대작(가로 12미터, 세로 5미터)에도 융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극도로 단순화한 선으로만 그려진 <청산백운>(2022) (490x383cm)은 기존의 갈필의 붓과 묵의 강약, 여백으로 표현됐던 그의 산수화와는 또 다르다. 그는 <코리아 판타지>에 대해서 불만족스러움을 내비쳤다. “소재 배치나 조형에 실수가 있었다”고 그는 언급했다. 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몽유도> 2022, ink on paper, 197.4 x 295.3cm



근작 위주로 꾸려진 《소산비경》 전에 등장한 작품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은 <천년배산>(1996)이다. 솔거미술관의 이재욱 학예사는 이 작품에 대해 “소산만의 독창적인 수묵화법은 90년대 중반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천년배산>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작품에는 과거의 법도와 기법을 중시하는 수묵의 세계에 기법과 정신이 다른 서양화의 관점이 수묵기법과 융화되어 구현되어 있다. 전통을 지키되 창조를 위한 개방과 포용이 그림에 녹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천년배산>은 과거의 한국화와는 다른 새로운 그림이나 기존의 수묵화를 고려하였을 때 별다른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원래 있었던 장르의 그림처럼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다가온다. 이는 오랜 하도 작업으로 얻어진 단단한 기초와 타 장르의 기법을 포용하고 적용하는 실험적인 작가 정신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릉비경> 2017, ink on paper, 446.7 x 792cm


시대의 변화에 맞춰 문을 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되 기존의 전통 요소와 조화를 이뤄 익숙하면서도 편안한, 20세기 초 이후 동양화 진영에서도 사문화된 ‘서화일체’를 실현하고 있는 박대성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두 개의 전시다.





업데이트 2024.02.1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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