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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속에서 되살린 17세기 양반들의 의복

경기도 박물관 특별전 <오늘 뭐 입지>

전시명 : 오늘 뭐 입지? OOTD: OUTFIT OF THAT DAY
장 소 : 경기도박물관
기 간 : 2023.12.08.~2024.03.10.

경기도박물관의 특별전 《오늘 뭐 입지?》는 제목의 가벼움과는 달리 오랜 기간의 준비기간과 연구를 거친 공이 많이 들어간 전시다. 17세기에 살았던 문신 한 사람과 그의 부인, 그의 할머니, 이렇게 세 사람의 무덤에서 나온 옷들이 최초로 일반에 공개되는 자리다.


전시 전경


할머니 나주 박씨(羅州朴氏, 17세기 초)는 사평공 심융(沈嶐, 1523-1602)의 부인이다. 심융은 세종의 장인이자 정승이었던 심온의 6대손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무덤에서 ‘직금기린흉배(織金麒麟胸背)’, ‘직금호흉배(織金虎胸背)’를 잘라 활용한 당의 등의 옷이 출토됐다. 17세기 중엽 복식에 중요한 자료라는 설명이 없더라도 독특한 모양새와 만듦새가 눈에 띈다. 



나주 박씨 무덤 출토 당의


나주 박씨 무덤 출토 ‘단령형 원삼’의 기린 무늬


나주 박씨의 손자 심연(沈演, 1587-1646)과 그의 부인 전주 이씨 묘에서 나온 옷들은 당시의 옷감 색이 그대로 남아 있을 정도로 상태가 양호하다. 시신이 입는 옷인 ‘습의(襲衣)’와 관과 시신 사이 남은 공간을 빈틈없이 메우기 위해 넣어준 옷가지들이 많아 다양한 복식 종류를 확인할 수 있고, 장례의 형식과 단계를 짐작할 수도 있다. 

관찰사로 봉직했던 심연의 무덤에서 ‘금사계칙흉배(金絲鸂鷘胸背)’가 달린 관복을 포함해서, 철릭, 대창의, 중치막 등 화려한 무늬가 있는 직물들이 다량 나와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게 됐다. 심연의 시신은 여덟 벌이나 되는 옷을 겹겹이 껴입고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전시장에 이 습의들을 레이어로 걸어 놓아 한 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전시의 2부 ‘겹겹이 품은 이야기’에서 이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함경도 관찰사로 있다가 3월에 사망했기 때문인지 솜옷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전시 전경


심연이 입고 있던 관복의 가슴과 등에 금으로 화려하게 수놓은 ‘비오리’라는 새 무늬 장식이 있는데, 비오리 흉배는 명나라에서 주로 쓰이던 것으로 조선시대 관료의 옷에서 발견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조선 관복 규정의 기러기가 아닌 비오리를 사용한 것에 대해 박물관 측은 명나라 멸망 이후 조선의 흉배 제도가 문란해졌음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설명한다. 


비오리 흉배



3부 ‘무덤에서 박물관까지’에서는 조선시대 옷을 무덤에서 수습하고 연구를 거쳐 재현과 전시로 이어지는 과정을 소개한다. 석회반죽으로 밀봉하는 조선시대 회격묘 형태와 염습 과정 등을 영상 등의 자료로 보여주고 있어서 이해를 돕는다. 


평범한 복식 전시려니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 옷들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특별하다. 무덤 자리가 개발로 이장하게 되어 자칫 그냥 태워 없어질 뻔한 유물들인데, 학예사들이 직접 현장으로 가 이들을 수습하고 5년여 간 복원의 과정을 거쳐 맺은 결과물이라 경기도박물관 학예사들의 피땀(과 아마도 눈물)이 느껴진다. 무덤 안에서 옷 주인과 함께 수백 년간 있었으니 완형이 있더라도 시신의 부패 영향을 받아 냄새도 심하고 섬유도 약해져 있었다고 한다. 적절한 방법을 연구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처리했다. 그 과정을 꼼꼼히 기록해 자료로 남겼다는 것 또한 중요하다. 

몇 백 년이나 된 복식 유물들이고 대부분 형태가 남아 있는 데다, 병자호란 정묘호란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17세기의 조선시대의 것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급스러움과 화려함을 간직하고 있다. 온전히 보전된 묘지석에서 내막도 자세히 전해지고 묘지석 자체의 유물로서 가치도 높다. 일반적으로 무덤의 주인공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명정에 쓰인 이름과 벼슬 정도이지만, 심연의 경우 출토된 지석을 통해 좀 더 자세한 개인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 유물 중 14점은 4월 말부터 클리블랜드 미술관(Cleveland Museum of Art)의 한국 복식 미술 특별전《한국 쿠튀르 패션의 지속과 전복(Persistence and Subversion in Korean Couture, 가제)》(2024.4.28. ~ 10.13)에 포함되어 미국에도 소개될 예정이다. 

SNS에서 쓰이는 #OOTD(outfit of the day)를 전시 부제목으로 삼았다. 오늘 뭐 입을까, 하는 발랄한 인상의 제목과 (보존 때문에) 어두운 전시실 분위기는 분명 갭이 있다. 자세히 보면 전시부제 OOTD는 Outfit of "that" day다. 그 때 살았던 그 분들의 그날의 옷이 그들의 삶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 심연의 자는 윤보(潤甫)로 1587년 10월 18일에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똑똑하였지만 약관이 되기 전에 부모가 모두 돌아가서 외가댁에서 자랐다고 전해진다. 어머니는 청주 한씨 한중겸(韓重謙, 1555-?)의 딸이고, 외삼촌은 한백겸(韓百謙, 1552-1615), 한준겸(韓浚謙, 1557-1627)이다. 한백겸은 실학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동국지리지』를 저술한 인물이다. 한준겸은 인조반정 후 그의 딸이 인렬왕후로 책봉되어 인조의 장인이 되었다. 이들은 심연이 학문을 대하는 자세를 보고 큰 그릇이라 생각해 아꼈다.
1612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인조반정 후 공을 논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이괄의 난(1624)과 정묘호란(1627) 때에 인조가 공주와 강화도로 피난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심연이 왕을 모셨다고 하여 조정에서는 의롭게 여겼다. 이후 명경과(문과의 한 분과)의 2위로 합격하여 성균관, 형조,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에서 두루 요직을 거치고, 1635년 겨울에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1636년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경상도 관찰사로 부대를 정비하여 남한산성으로 향하다가 이천에서 적에게 기습당하여 패하였다. 이에 탄핵당해 전라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후 다시 제주 목사, 한성부 우윤, 승지, 평안도·황해도 순찰사, 병조 참판, 대사헌, 평안도 관찰사, 경기도 관찰사, 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함경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성을 수리하고 사졸을 훈련하며 인재를 키웠는데 이에 따라 피로하고 병이 생겨서 사직원을 냈으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646년 3월 3일에 임지에서 죽었고, 5월에 용인 산의곡에 장례하였다. 이후 자리가 불길하다고 하여, 1657년 심온 묘의 좌측에 이장하였다.
업데이트 2024.02.2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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