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리뷰 > 전시

임전 허문의 운무산수와 운림산방 5대展

-소치 허련 이래 5대 200년 동안 이어진 화맥
-남종화의 전통과 당대성 사이에서 길을 찾는 21세기 운림산방 화맥

전시명 : 임전 허문의 운무산수와 운림산방 5대전
장 소 :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
기 간 : 2024년 3월 27일(수) ~ 4월 8일(월)
글/ 김진녕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임전(林田) 허문 초대전>과 <운림산방 5대전>(3.27- 4.8)이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두 가지이지만 하나의 전시로 볼 수도 있다. 임전 허문이 소치 허련 이래 5대째 화업을 이어가고 있는 진도에 기반한 양천 허씨 가문의 4대째 화가이고 허문을 포함한 5대째 화업을 이어가고 있는 허련-허형-허건-허림-허문-허진-허재 등 200여 년간 이어진 5대, 7명의 화가 작품을 모아서 보여주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조선조 말기 진도에서 태어난 소치(小痴) 허련(許鍊, 1808-1893)은 초의대사의 추천으로 서울로 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집에서 머물며 가르침을 받으며 남종화 스타일로 조선조 말 서화계의 스타가 됐다. 추사를 평생 스승으로 모셨던 소치가 남긴 <완당선생 초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기도 하다.


소치는 1856년 김정희가 별세하자 이듬해인 1857년 귀향해 화실 운림산방을 세운 뒤 작업을 이어갔고, 그의 화맥은 후손으로 이어졌다. 소치는 아들을 네 명 뒀는데 그 중 장남 허은과 넷째 허형이 화업을 이었다. 큰 아들 허은이 34세에 요절했고 허은과 구별해 ‘작은 미산’으로 불리던 미산(米山) 허형(許瀅,1861-1938)이 허씨 가문의 화업을 이은 2대 주자가 됐는데, 생활고로 인해 그림에 전념할 수 없어 환갑이 넘은 나이가 돼서야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해 제도권의 인정을 받았다.


허형의 산수


허형은 슬하에 아들을 다섯 두었고, 넷째 남농(南農) 허건(許楗, 1908-1987)과 막내 임인(林人) 허림(許林, 1917-1942)이 화업을 이었다. 또 허형은 같은 집안인 의재 허백련(1891-1977)을 가르쳤고, 허백련의 손자 허달재(b.1952)가 의재쪽 화맥을 잇고 있다.




허문


운림산방의 3대째 화업은 허건과 허림으로 이어졌다. 허건은 1944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인 총독상을 타면서 허씨 가문의 화업을 중흥시켰다. 20세기 인물인 허건은 해방 이후 굳어진 대학교육(미대) 시스템에서 활동하지 않고 1946년 남화연구원을 개설해 도촌 신영복, 아산 조방원, 춘구 이정남 등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해방 이전 선전에서 최고상을 탄 남농은 1952년부터 국전에 참여해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하면서 동양화단의 명성을 다졌고, 1957년부터 김기창 이유태 김영기 천경자 등이 참여한 백양회 창립회원으로 참여해 1970년대 중반까지 활동을 이어갔다.



허건


허건의 동생 허림은 요절한 천재로 불린다. 18세인 1935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아침(朝)>이 첫 입선을 하고 이후 내리 5년 연속 입선하는 기록을 세웠고, 1940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가와바타(川端)미술학교에 진학했다. 1941년 일본 문부성미술전람회에 목포 유달산 부근의 풍경을 그린 <전가(田家)>를 출품해 입선했고, 1942년에도 문부성미술전람회에서 다시 입선하는 기록을 세웠다. 식민지 시절 선전 5회 입선, 문부성 전람회 2회 입선은 그때 “반도화단의 신성(新星)”이란 보도가 나올 정도로 큰 화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1942년 10월 25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허림


허림은 남종화풍의 전통만 고수하던 허씨 가문에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도입한 첫 주자였다. 채색의 도입과 실경 사생을 바탕으로 한 허림의 작업은 기존의 수묵산수화와는 다른 새로운 시도였다. 동생인 허림의 일본 유학을 후원했던 허건은 초기 작업에 새로운 변화상을 반영한 흔적이 남아있지만 이후 전통적인 남종화의 세계로 더 파고 들었다.



운림산방의 4대 화가는 허림의 아들 임전(林田) 허문(b.1941)으로 이어진다. 한 살도 되기 전 아버지를 여읜 허문은 7세 때 백부인 허건의 슬하에 들어가 성장했다. 새로운 세대인 허문은 남농의 문하에서 그림을 익혔지만 ‘미술대학’ 시스템에 합류한다. 홍익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것.

임전은 1966년 15회 국전에서 입선하고, 제19회(1970), 20회(1971) 국전에 입선한 것을 끝으로 국전과 이별하고 이후 옅은 운무와 단순화된 산과 나무가 어우러진 독자적인 조형성을 내세운 ‘운무산수’라는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남종화의 수묵을 고수하면서도 현대적인 시각언어를 개발한 것이다.


허문


5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더 큰 변화가 시작됐다. 이번 전시에 5대로 참여한 화가는 허진(b.1962)과 허재(b.1973)다. 허진은 허건의 장남 허경의 아들이고, 허재는 허건의 차남 허병의 아들이다. 모두 허건의 손자 항렬이다.


허진


서울대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허진(전남대 미술과 교수)은 한지에 전통 채색안료와 아크릴릭으로 강렬한 색감의 동물형상과 단순화된 인체형상을 결합시켜 욕망과 문명의 충돌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허재는 글과 결합한 문인화라는 측면에서 남종화의 핵심을 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외양만 보면 사진에 바탕을 두고 수묵 재료와 아크릴릭으로 구현된 수묵채색화에 가깝다. 그는 작품 가운데에 짙은 푸르름에 쌓인 숲과 푸른 하늘이 만나는 경계선에 ‘空’이라고 쓰인 타이포그래픽적인 요소를 넣거나 짙은 숲속에 흰색으로 ‘在’라는 글자 요소를 집어넣어서 사변적인 화두를 그림 속에 접목시키고 있다.


허재


문인화 전통에서 화제畵題가 담당했던 역할을 그림 속에 들어간 ‘문자 그래픽’이 대신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풍경과 문자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조형언어로 볼 수도 있다.
    


전시는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 1층 공간과 2층 공간을 모두 쓰고 있다. 1층 그랜드관에는 독자적인 선염기법의 ‘운무산수화’를 창안한 4대 임전 허문의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2층 전시장에는 운림산방 5대에 걸친 작품이 세대별 5~8점씩 40여 점이 걸려있다. 특히 요절한 화가 임인 허림의 작품 다섯 점을 실견할 수 있는 기회이다. 모두 1940년대 초반 작품으로 후손이 지켜온 작품이라고 한다.




업데이트 2024.03.27 11:08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