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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의 강의 노래, 우리 시대 삶의 노래

-섬진강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압록강부터 만경강까지 탐구

전시명 : 송만규 한국화전 - 인연, 강의 노래
장 소 : 모란스페이스
기 간 : 2024년 3월 28일(목) ~ 4월 7일(일)
글/ 김진녕


한반도 남쪽의 섬진강과 만경강부터 중부의 임진강과 한강, 북쪽의 두만강과 압록강, 해란강까지 답사를 통해 화폭에 강을 담아내고 있는 한국화가 송만규(b.1955)의 전시회가 모란스페이스에서 열렸다. 전시 제목은 <인연, 강의 노래>(24.3.28-4.7).


한국 미술사에서 실재하는 산과 강을 사생을 통해 그리기 시작한 흐름은 18세기 진경시대를 연 정선(1676-1759)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선과 김홍도가 남긴 금강산 그림첩이 18세기에 일어난 조선 후기 르네상스의 증거물로 남아있다. 그 중 강을 따라 유람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고 그림으로 그려낸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한임강유람도권>이 대표적이다. <한임강유람도권>은 정수영(1743-1831)이 1796년부터 1797년 세 번에 걸쳐 한강과 임진강의 명승지를 직접 찾아보고 스케치한 뒤 15미터의 두루마리에 남긴 그림이다.



송만규의 강그림은 실재하는 강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렸다는 점에서는 <한임강유람도권>과 같지만 명승에 집중한 18세기의 강 그림과는 주목하는 지점이나 뉘앙스가 다르다.

이 전시를 기획한 미술사학자 조은정은 “송만규의 강그림은 강의 외연, 강에 드리운 봄날의 햇빛이나 바람의 흐름 만을 담은 것이다. 아니다. 그가 그린 강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곳, 머물렀던 곳 그리고 보고 싶던 곳의 모든 강들에 이른다. 그것은 자연의 대상으로서의 강이라기보다는 장소로서의 강”이라고 평했다.


그의 강 그림에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간혹 높이 나는 새가 보일 뿐이다. 감탄할만한 기암절벽이나 장엄한 산세나 드라마틱한 파도, 높이 솟은 누대 같은 요소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비비고 살만한, 생활의 때가 느껴지는 산과 강을 그렸다. 그래서 그가 그림 속에 담아낸 평야를 굽이쳐 흐르는 만경강이 품고있는 습지와 물가의 나무는, 산 사이를 물이 돌아나가는 섬진강 풍경이나 민둥산을 드러낸 압록강가의 풍경은 그곳의 삶을 연상하게 만든다. 1980년대에 현실 참여 미술 진영에서 활동했던 이력을 가진 그가 만든 21세기 풍경화(산수화)는 이런 방식으로 당대의 삶을 드러내고 있다.

전북 익산이 고향인 그가 맨 처음에 찾아다녔던 곳은 섬진강이라고 한다.


“섬진강은 83년도에 김용택 시인을 만나러 처음 갔었다. 그냥 강변을 걷다가 이런 게 있네, 강이 주는 곡선미, 맑은 느낌. 강 주변의 맑은 물과 오밀조밀한 아름다움. 그리기에 딱 좋은 게 눈에 띄었다. 그림으로 그려서 처음 발표한 것은 93년이다. 그 뒤 섬진강을 줄곧 그리다가 만경강 유역이 고향이기도 해서 찾아가게 됐다. 만경강은 평야 속을 흐르고, 섬진강 두만강 임진강은 산 사이로 흐른다. 높낮이가 있고 지형이 다르다. 섬진강이 변화무쌍한 맛이 있다면 만경강은 평온하다. 수평적이고. 강원도 민요하고 서도가락과 남도민요가 다 다르듯 강도 다르고, 강의 색도 다르고, 그곳의 삶도 다르다.”(송만규)


섬진강 붕어섬 봄, 2014, 순지에 수묵채색, 105 x 198cm


처음 섬진강을 찾았던 것은 83년, 강을 다룬 그림을 세상에 처음 내보였던 93년 사이에 송만규는 1988년 민족민중미술전국연합(민미련)을 만들어 공동의장이 됐고, 1989년 걸개그림 ‘민족해방 운동사’를 제작해 평양청년학생 축전에 보내면서 3년간 도피생활을 하기도 했다.


섬진강 구담 봄, 2014, 순지에 수묵채색, 120 x 215cm


섬진강을 그린 것에 대해 송만규는 “오랜 세월 직진해 온 나, 획일의 사고에 익숙해 온 나에게 자유와 해방을 안겨준 곳이다. 작은 물방울에서, 말없는 자연으로부터 사람의 가치와 생명의 소중함을 읽게 해 준 경전 같은 것이다. 그로 인해 당연히 사람에 대해서도 여유롭고 넉넉해질 수 있었다. 섬진강은 내게 새로운 문을 열고 나가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이후 두만강, 만경강, 임진강 등 강에 천착한 이유에 대해 그는 “강은 연결 짓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과 그 주변을 더불어 하나로 만든다. 겉모습을 서로 달라보여도 생각이나 형태는 흡사하다”고 밝혔다.


섬진강 평사리 봄, 2016, 순지에 수묵채색, 117 x 175cm


이번 전시에 등장한 송만규의 강 그림 속에는 대개 사람이 등장하지 않았다. 유명한 관광지(명승)도 없다. 통일이나 민족, 역사, 계급같은 거대담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한국형 현실참여 기호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그림 속에는 풀과 나무가 무성한 강변 습지나 맑은 물이 산을 돌아나가는 계곡, 국경선 노릇을 하는 강을 따라 수풀이 무성한 산과 민둥산이 칼로 자른듯한 대조적인 풍경이 있다. 그것이 섬진강과 만경강, 압록강, 임진강에 깃들어 사는 당대의 삶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의 그림은 우리 시대의 인문화로 보였다.


업데이트 2024.04.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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