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옛 그림 속 꽃과 나비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
기 간 : 2024년 4월 15일(월) ~ 7월 28일(일)
글/ 김진녕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에서 <옛 그림 속 꽃과 나비>전(4.15-7.28)이 열려 꽃과 나비가 그려진 조선시대 그림 15건 42점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출품작 면면을 보면 심사정(1707-1769)의 <화훼초충도>(건희 3666, 이하 소장품번호), 김홍도(1745-1806 이후)의 <나비蛺蝶圖>(1782년, 덕수 1791), 조희룡(1789-1866)의 <군접도>(접수 472), 신명연(1809-1886)의 <화훼도 열 폭 병풍>(덕수 2546), 남계우(1811-1890)의 <군접도>화첩(덕수 915), 남계우와 박기준(19세기 활동)의 나비그림 넉 점과 박기준의 부채그림 넉 점을 여덟 폭 병풍으로 꾸민 <부채와 나비>(덕수 905), 백은배(1820-1901)의 <화접도>(덕수 1754) 등 조선의 문예부흥기로 불리던 18세기의 대표 화가와 20세기 초까지 살았던 쟁쟁했던 화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한국 토종으로 불리는 삼색 고양이가 꽃을 찾은 나비를 쳐다보는 순간을 생동감 있게 그린 <묘접도>(덕수 2291)도 전시장에 등장했다. 이 작품은 2019년 전시 때만 해도 작가 이름에 변상벽(1726년 이전-1775)으로 표기됐지만 이번 전시에는 작자 미상으로 표기해 전시장에 나와있다. 이 전시를 기획한 명세라 학예연구사는 “작품 안에 변상벽의 관지도 없고, 변상벽의 다른 고양이 그림과는 털의 묘사 등 차이가 있어서 변상벽의 필치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작자 미상’으로 표기한 이유를 설명했다.
작가 미상, 나비와 고양이,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 덕수 2291
이번 전시는 전통회화의 화조영목 항목 중에서 ‘꽃과 나비’를 그리는 데 손꼽히는 조선시대 후기의 회화들을 두루 모아서 보여주고 있다. 주최측은 조선시대 후기에 나비 그림이 인기를 얻었던 이유는 나비가 길한 상징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남계우, 나비,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 덕수 915
“옛사람들은 나비가 장수를 상징하는 벌레라고 생각하여 나비 그림을 애호했다. 또한 나비 그림을 보면서 중국 고대 철학자 장자莊子의 나비 꿈 고사를 떠올리며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되새겼다. 김홍도가 그린 부채 그림 <나비>(덕수 1791)에 쓰인 “장자의 꿈속에 나비가 어찌하여 부채 위에 떠올랐느냐(栩栩然漆園春夢 胡爲乎幻出便圖)”라는 시구에서 이러한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길한 상징을 그린 작품에서 사람을 직접적으로 등장시킨 경우를 조선의 그림 유산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출세를 상징하는 잉어 그림에서, 노년의 안락함을 상징하는 기러기 그림에서, 복을 상징하는 박쥐 그림에서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는 나비와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귀한 예가 전시장에 나와있다. ‘취화’라는 생존연대 미상의 화가가 나비와 남자를 그린 작품이 그것. <백은배 유숙필 화조산수도첩>(덕수 1625)에 들어있는 그림이다.
전시에서는 꽃과 나비 그림이 유행하던 18세기가 진경산수, 즉 실경사생을 한 그림이 등장한 시대였다는 것에도 주목하고 있다. 조선 후기 문인이나 지식인층에서 꽃을 기르고 키우는 원예 붐이 일었고 이에 관한 책이 유통되고 <옥호정도>(국박 소장)나 <인평대군방전도>(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등을 통해 어떤 식으로 정원을 가꿨는지 시각 자료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주최 측은 18세기 이후 꽃이나 나비 그림의 대가들이 단순히 화본을 통해 정교함의 필치를 높이는 것 뿐만 아니라 관찰과 사생을 통해 대상의 생생함을 구현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판단하고 있다.
남계우, 모란과 나비, 조선 19세기, 덕수 2312
“조선시대 화가는 ‘모방과 연습’, ‘사생과 관찰’이라는 방법으로 꽃과 나비를 그렸다. 그림 그리기 교재인 화보畫譜를 보면서 화면 구도와 꽃의 자태, 나비 동작 등을 익히는 것은 화가의 중요한 그리기 공부 방법이었다. 19세기 들어서 직접 보고 관찰해 그리는 풍조가 확산되었고, 그 대표적인 화가가 남계우南啓宇(1811-1888)이다. 남계우는 ‘남나비’라고 불렸을 정도로 조선시대 나비 그림을 가장 잘 그리는 화가로 평가받았는데, 그의 나비 그림은 나비 종류와 암수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다. 신명연도 꽃과 나비를 잘 그린 화가이다. 그는 그림의 구도나 동작은 화보를 참고했지만, 나비 날개 표현은 남계우와 같이 사생과 관찰을 기반으로 묘사했다. 다만 신명연은 나비 그림보다 꽃 그림으로 이름이 더 높았다. 신명연은 식물 백과사전을 보면서 꽃에 관한 지식 등을 쌓고, 꽃을 관찰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특히 꽃과 나비, 그림 폭마다 대조적인 색을 배치해 화려하고 세련된 자신만의 화풍畫風을 이룩했다.”
신명연, 꽃 그림 병풍,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덕수 2546
이번 전시 신명연의 꽃 그림 병풍과 남계우의 나비 그림 병풍이 가장 넓은 전시 면적을 차지하고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특히 남계우의 나비그림 첩을 소개하는 코너에는 식물학자와 곤충학자의 자문을 구해서 그림에 그려진 나비의 실제 모델을 함께 보여주는 등 조선시대 후기 화가의 사생 노력을 조명하고 있다.
명세라 학예연구사는 남계우와 박기준의 그림으로 꾸며진 여덟 폭 병풍 <부채와 나비>(덕수 905)의 예를 들었다.
남계우(나비), 박기준(부채) , 나비와 부채 그림 병풍, 조선 19세기, 덕수 905
“이 병풍 속의 나비는 남계우의 다른 나비 그림과는 좀 다르다. 좀 더 완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나비 그림을 정말로 능숙하게 그리는 경지다. 남계우는 나비를 화보를 보고 그리기 시작했지만 이 병풍에선 관찰과 사생을 통해 나비의 움직임을 포착해 묘사한 동작이 보이고 있다. 측면에서 본 것, 아래에서 본 것. 하강하는 모습 등. 이 작품에선 화보를 통해 정형화된 것 이상의 묘사가 등장한다. 이게 사생과 관찰을 통해 구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점은 함께 들어가 있는 박기준의 부채 그림도 그림이 그려진 19세기의 현실 풍경을 반영한 ‘사생’이란 점이다. 명 학예연구사는 두 번째 폭 아래쪽에 배치된 부채에 그려진 개구리 그림을 지목했다.
“박기준의 부채 안에 산수나 영모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이게 그가 살았던 시대의 현실에서 보았던 다른 그림을 그린 것이다. 2폭 하단의 개구리 그림은 백은배첩에 있는 개구리 그림과 똑같다. 백은배첩에는 고법을 모방(화보나 옛 그림을 보고 임모)하여 그린 것이라고 적혀있다. 박기준도 그런 그림을 똑같이 봤기 때문에 그렸을 것이다.”
백은배, 개구리
이번 전시에 나온 백은배의 나비와 개는 <백은배필 산수인물영모도첩>(덕수 1754)에 들어있는 그림이다. 이 첩 속에는 이번 전시에 소개되지 않은 개구리 그림도 포함되어 있다. 연 잎 위에 등에 푸른 줄무늬가 있는 개구리가 앉아있고 오른쪽에는 꽃 한 송이가, 왼쪽 상단에는 곤충이 날아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꽃의 색만 다를 뿐 구도와 형태까지 완전히 일치한다. 백은배가 살았던 시기와 박기준이 살았던 시기에 이런 화보 그림이 ‘현실’에서 인기를 끌고 유통이 됐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면 박기준의 부채 그림은 19세기 조선에서 인기 있던 그림의 샘플러인 셈이다.
박기준의 개구리 그림
전시장에서는 조희룡이 그린 나비 그림이 청나라에서 수입한 냉금지에 그려졌다는 것을 볼 수도 있다. 냉금지는 조희룡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김정희도 애용했던 그 시대의 고가 사치품이었다. 예쁜 꽃과 화려한 나비를 그린 장식화이지만 그림을 살피다 보면 그 모든 게 결국 사회 현상과 변화, 경제 등 당대의 현실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