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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불교미술에 담긴 여성들의 번뇌와 공덕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명 :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장 소 : 용인 호암미술관
기 간 : 2024.3.27~6.16

한국과 중국과 일본. 동아시아 세 나라에서 과거(에서 현재까지) 여성의 지위나 인식은 그다지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다. 특히 여성의 몸은 집착과 정념을 일으키는 근원으로 간주되고 시각미술에서는 대개 주체(화가)의 시각으로 대상화되곤 했다. 반면 ‘어머니’는 그 사회에서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하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절대적이며 영원히 향수를 느끼는 자궁 그 자체다. 이러한 양면적인 여성의 이미지는 불교미술 속에서 어떻게 재현되었을까. 또 불교미술에서 여성의 역할은 무엇일까. 

지난 봄 모습을 공개한 호암미술관의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은 지난 시대와 사회의 시선이 반영된 불교미술 속 여성의 이미지를 살피고, 불교미술의 후원자이자 창작자로서 여성의 공헌을 조명한 전시다. 한국의 불교미술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삼국의 불교미술로 그 시야를 확대한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일단 불교라는 종교는 온통 남성들인 부처와 보살의 독무대라 할 만하지만, 그나마 보편적인 '어머니' 도상은 떠올릴 수 있다.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석가모니를 낳은 마야부인일 것이다. 

마야부인
그리스도를 낳은 성모 마리아와 달리 마야부인의 경우 독립적인 신앙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지만 석가모니의 일생 이야기를 담은 그림 팔상도(八相圖)나 불전도(佛傳圖)에서 자주 발견된다. 마야부인이 친정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 동산에서 출산을 하는 모습이 팔상도 중 <비람강생상>에 포함되는데, 오른팔을 들어 무우수(無憂樹) 나뭇가지를 잡으려는 와중에 옆구리에서 아기가 나오는 등으로 묘사된다. 전시 초입의 둥글게 디자인된 아늑한 공간에 펼쳐진 송광사 팔상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송광사성보박물관 소장 팔상도(조선, 1725년, 보물) 중 <비람강생상> 우하단 부분, 


이번 전시 관람에서 가장 귀한 경험 중 하나는 두 개의 중요한 불전도를 나란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본 혼가쿠지(本岳寺)에 가 있는 <석가탄생도>와 쾰른동아시아미술관 소장품 <석가출가도> 두 그림 모두 15세기 이른 조선의 그림으로, 당시 세종-세조가 한글로 펴낸 불교서적 『석보상절』이나 『월인석보』에 근거하여 석가모니의 탄생 전후 이야기를 그린 불화다. 전각과 인물의 표현, 채색, 구성, 크기 등을 고려하면 두 작품이 팔상도 등 같은 목적으로 그려진 세트일 가능성 또한 크다. 


(좌) <석가출가도> 조선 15세기, 비단에 채색, 금니, 148.3x104.5cm(그림), 쾰른동아시아미술관
(우) <석가탄생도> 조선 15세기, 비단에 채색, 금니, 125.0x109.5cm(그림), 혼가쿠지

쾰른 동아시아미술관 <석가출가도> 부분. 의자 아래 오른쪽으로 태자비가 쓰러져 태자의 출가를 슬퍼하며 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석보상절』, 『월인석보』에 근거하는 도상일 뿐만 아니라, 정수리 위의 장식과 가체 또한 조선 왕실 여성의 큰머리를 연상시키며, 어깨에 걸친 천과 화려한 소매는 성종때 왕대비가 발원한 <삼제석천도> 속 제석천 차림새와 비슷하다. 마야부인은 마치 예배를 받는 주인공처럼 당당한데 궁중의 높으신 여인과 천신의 모습을 겹쳐 그린 것이다. 


혼가쿠지 <석가탄생도> 중 마야부인



<삼제석천도>, 조선 1483년, 비단에 채색, 금니, 115.0x77.4cm, 대본산 에이헤이지(永平寺) 



왕진붕 <이모육불도> 원, 14세기 전반, 비단에 먹, 31.9x93.8cm, 보스턴미술관
마야부인의 동생-길러준 어머니(이모 대애도)와 태자의 다정한 한 때를 그렸다. 


감로도나 변상도 같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불화 속 조연 여성들은 대개 어머니로 그려졌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거나 지옥에 떨어진 죄인 여성들은 제대로 옷을 입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구마노관심십계만다라>는 일본에서 발전한 장르로, 여기서 여성의 몸은 월경과 출산 과정에서 피를 흘려 땅을 더럽히는 부정(不淨)의 근원으로 그려진다. 원죄를 가진 여성은 물에 빠지거나 화염에 휩싸이거나 괴롭힘을 당하는데 모두 상체가 노출되어 있다. 


<구마노관심십계만다라> 부분, 일본 에도시대, 17~18세기, 종이에 채색, 132.7x121.6cm, 일본민예관


비슷하게 흥미로운 그림은 무로마치시대(1392-1573)의 <구상시회권>과 에도시대(1603-1868)의 <구상도>. 사람의 시신이 변해가는 아홉 단계를 관(觀)하는 구상관에서 유래한 것인데, 시대의 차이가 많고 형식은 다르지만 둘 다 시신을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육체로 대표해 그려냈다. 가슴과 음부를 드러낸 여성의 아름다운 신체는 점점 썩어가고 벌레와 들짐승이 파헤쳐버리는 적나라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그림을 누가 그리고 누가 감상했는지는 자명하다. 여성의 육체는 해로운 정념의 대상이어서 이를 떨쳐버려야 하는 것임에도 그것을 뚫어지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남성의 시선은 숨길 수가 없다. 


<구상시회권> 부분, 무로마치시대 1501년, 종이에 먹, 채색, 30.1x972.0cm, 규슈국립박물관




기쿠치 요사이 <구상도> 에도시대 1848년, 비단에 먹, 채색, 116.5x53.7cm, 보스턴미술관



관음의 변신
동아시아에서는 『법화경』이나 『화엄경』의 경전을 통해 관음보살 신앙이 크게 확산됐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자비심이 있으신 보살이기에 중생들의 간절한 바람에 부합했던 것이다. 다양한 매체로 관음보살의 도상이 재현되는데 머리에 화불(化佛)이 있는 보관을 쓰거나 정병을 들거나 하는 모습이 전형적이며, 여러 팔이 달리거나 하는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진다. 본래 남성형이지만 여성적으로 묘사되다가 기어이 여성형이 되기도 했다. 여성형 관음보살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0세기로 꽤 이르고 명청대에 널리 퍼졌다. 

이렇게 된 데에는 자비라는 덕목이 여성적, 모성적인 가치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모자상(母子象)처럼 무릎에 아이를 안은 송자관음(送子觀音) 도상은 경전에서 그 근거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전시에서도 송자관음들을 볼 수 있는데, 한 방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원~청 백자 불상 중에서도 여성형 송자관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백자 송자관음보살 좌상> 중국 청 18세기, 높이 31.0cm, 영국박물관


<송자관음보살도> 중국 명 16세기 후반, 비단에 먹, 채색, 금니, 120.7x60.3cm,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백자 백의관음보살 입상> 중국 청 17세기 전반, 높이 46.3cm, 영국박물관
백자는 백의관음을 형상화하기 좋은 매체다. 명청대 덕화요의 따뜻한 백색. 


어두운 전시실에서 천 년의 세월을 담은 수월관음도를 보는 기회를 가질 때마다, 화가의 섬세한 터치와 전통 회화에 대한 생각과 숭고함의 심상을 오가게 되는 감상자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삶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달래줘 왔던 순기능의 종교가 있었지, 라고 다시금 일깨우는 것이다. 자애롭게 선재동자를 바라보는 관음보살 또한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수월관음보살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먹, 채색, 114.5x55.6cm,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여의륜관음보살도> 일본 헤이안시대 12세기, 비단에 먹, 채색, 금박, 은박, 98.8x44.7cm, 보스턴미술관



<금동 십일면천수관음보살 좌상> 고려 14세기, 금동, 높이 81.3cm, 국립중앙박물관



깊게 염원하던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
『법화경』 에서는 여성의 몸으로는 부처가 될 수 없다고 했다는데, 또 용왕의 딸(용녀)은 그 얘길 듣고 즉시 몸을 남성으로 바꾸어 성불했다고 한다. 어린 여자아이가 성불한 이 이야기는 법화경 변상도에 들어가 여성들의 희망이 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의 몸의 지위를 계속 묶어두게 된다. 

발원의 흔적에서 여성들의 이러한 바람과 아쉬움이 전해진다. 전시 2부에는 법화경 사경 전체7권이 모두 남아 있는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1~7>이 펼쳐져 있는데, 앞쪽에 변상도가 있고 맨 뒤에는 발원문이 포함되어 있다. 발원문에 의하면 이 사경은 1345년에 진한국대부인 김씨가 충혜왕(1315-1344)의 영가천도를 기원하고 충목왕(1337-1348)과 그 어머니 원 황실 출신 덕녕공주를 축원하고자 조성됐다. 국대부인이라는 것은 왕실 사람이 아닌 가운데 가장 높은 여성에게 내린 칭호로 그처럼 높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발원문 내에 ‘이전 겁의 불행으로 여자의 몸을 받았다’는 한탄의 내용이 있다. 또, 전시되어 있는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물 속 발원문에도 ‘나이가 찬 여성들이 남성이 되게 해 달라’고 약사여래에게 빈 내용이 들어있다. 
 
이밖에 『유마힐소설경』 중 천녀가 신통을 부려 사리불과 서로 몸을 바꾸는 이야기를 그린 원대 왕진붕의 회화 <유마불이도>, 죽는 순간 눈앞에 나타난 보살의 인도를 따라 극락세계로 가는 여성이 그려진 <인로보살도> 등 여성들이 구원을 꿈꿀 수 있도록 도왔던 불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문정왕후 등 조선 왕실 여성들이 득남이나 자손의 번영을 빌었던 발원의 그림들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문정왕후가 1565년에 적통 왕손의 탄생을 기원하며 400점의 불화를 조성해 전국 사찰에 나눠준 기념비적인 불사 중 두 점이 처음으로 나란히 보여지고 있다(400점 중 6점이 전해지고 있음).  



(위)<석가여래삼존도> 조선 1565년, 비단에 채색, 금니, 60.5x32.0cm,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아래) <약사여래삼존도> 조선 1565년, 비단에 금니, 54.2x29.7cm,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문정왕후가 1565년에 조성한 400점 불화 중 두 점.


전시 마지막에는 공덕의 마음으로 자수를 놓은 수불(繡佛)이라는 장르도 크게 소개하고 있다. 여성이라는 관점으로 모으고 펼쳐 놓았지만 동아시아 3국의 불교미술을 중요한 회화 작품을 중심으로 대규모로 구성했다는 자체 만으로도 의미있는 전시다. 그 밖에도 당시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궁중숭불도> 조선 16세기, 비단에 채색, 46.5x91.4cm,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기증품 (아래는 부분 그림)
궁궐도 형식의 작품 내에 여러 건물로 구성된 내불당에서 열린 법회 장면을 볼 수 있다. 불전들 사이로 삼존불상 등이 보인다.
1550년작 <호조낭관계회도>의 건물과 복식 등을 비교하여 16세기 중엽으로 편년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물론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보스턴미술관, 클리블랜드미술관, 영국박물관, 규슈국립박물관, 나라국립박물관, 도쿄국립박물관 등 국내외 여러 기관, 범어사, 송광사, 수종사, 바이린지, 혼가쿠지 등 불화를 귀히 모시고 있는 사찰들, 그밖의 개인소장가에게서 주제에 맛있는 명품 불교 미술품을 모셔와 적절한 자리에 푸짐하게 차려놓았다. 먹을 것이 너무 많은 뷔페에서는 전략적으로 자신의 접시의 기승전결을 계획하고 가는 것이 소화불량을 막는 좋은 방법이 된다. 사전 지식을 익히고 설명을 꼼꼼히 읽으며 학예사가 이끄는 대로 관람하는 방식이 아니어도 사전 정보 없이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 또는 순수한 불심만으로 미술관을 찾는 것도 의미 있는 발걸음이다. 


업데이트 2024.05.2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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