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기 간 : 2024.6.18~10.9
글/ 김진녕
프리츠 숄더(루이세뇨족), <인디언의 힘>, 1972년, 173.1×203.6cm, 덴버박물관
카약, 이글루, 파카, 모카신 같은 단어는 우리 말글살이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 낱말은 북미 원주민의 문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20세기에는 ‘북미 원주민’을 대개는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독수리 깃털로 장식한 화려한 머리 꾸미개를 쓰고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정의의 서부 사나이’를 공격하는 악당 ‘인디언’ 이미지는 유럽에서 이주한 백인계 후예들이 만들고 유통시킨 이미지다. 1492년 인도로 가는 길을 찾던 콜롬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북미로 유입된 유럽 이민자는 그들 위주의 안정적인 정착과 번식을 위해 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생태계를 원주민을 포함해 리셋시켰다.
요즘 말로는 ‘밭갈이’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인디언’이나 ‘개척’이란 단어는 유럽 출신 이민자의 이익 관점에서 붙여진 단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퇴출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지구상의 특정 부족과 지역을 빌런화 해 대량 살상 액션 판타지를 제작할 수 없는 미국 영화계에서도 ‘서부 개척’의 논리를 ‘우주 개척’으로 치환한 액션 판타지를 만들어 팔고 있다. 이런 우주 개척 판타지에 등장하는 단어가 테라포밍(terraforming)이다. 21세기에 전지구적으로 흥행한 <아바타>시리즈가 바로 이런 ‘개척’에 대한 수정주의적 시각을 반영한 우주 개척물이다.
콰콰케와크족 원주민, <구리 방패 깨뜨리기 의식에 사용된 기둥>, 1900년 이전, 높이 93.98cm, 덴버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북미원주민의 여러 부족문화와 예술에 대한 전시인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10.9)에 과거형인 ‘알던’이 쓰인 것이나, 국박 소개 자료에 ‘인디언이 없는 인디언 이야기’라는 구절이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20세기 후반 이후의 인식 변화를 담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은 북쪽 알래스카에서 남쪽 뉴멕시코에 이르는 넓은 북미 대륙에 살던 무려 570 여 개에 달하는 다양한 부족이 남긴 유물과 주거문화, 생활문화를 151점의 유물로 보여주는 전시이다.
전시에 등장하는 모든 유물은 미국 덴버박물관의 소장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이번 전시를 공동기획한 미국 중부의 콜로라도주 소재 덴버박물관은 미국 내 북미원주민 예술품을 수집한 최초의 박물관 중 하나다. 관련 소장품만 1만 8천여 점일 정도다. 전시물은 북미 원주민의 수난기인 19세기에 제작된 유물은 물론 20세기 후반, 미국이라는 유럽 이주민 위주로 세워진 시스템에서 생존하는 북미 원주민 후예가 제작한 ‘현재형’의 문화유산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에드워드 S. 커티스, <압사로가족 어머니와 아이>, 1908년, 미국국회도서관
전시에 등장하는 모든 유물은 미국 덴버박물관의 소장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이번 전시를 공동기획한 미국 중부의 콜로라도주 소재 덴버박물관은 미국 내 북미원주민 예술품을 수집한 최초의 박물관 중 하나다. 관련 소장품만 1만 8천여 점일 정도다. 전시물은 북미 원주민의 수난기인 19세기에 제작된 유물은 물론 20세기 후반, 미국이라는 유럽 이주민 위주로 세워진 시스템에서 생존하는 북미 원주민 후예가 제작한 ‘현재형’의 문화유산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화이트 스완(압사로가족), 리틀 빅혼 전투 <전쟁을 기록한 그림>, 1890년경, 227.3×96.5cm, 덴버박물관
전시는 1부 ‘하늘과 땅에 감사한 사람들’과 2부 ‘또 다른 세상과 마주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네즈퍼스족 원주민, <존경이 상징 독수리 깃털 머리 장식>, 1860-1890년대, 길이 207.01cm, 덴버박물관
1부는 북미의 가장 북쪽인 혹한의 알래스카 기후부터 남쪽 한계선인 뉴멕시코의 건조 기후까지 다양한 기후 조건에 적응해 정착한 북미 원주민의 면면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캐나다와 미국이라는 단 두 나라로 소개되는 지역이지만 570여 개의 부족이 산맥과 강, 사막에 막혀서 다양한 문화적 특색을 지닌 생태계를 이룬 대륙이었다는 것을 유물로 보여주고 있다. 어도비라고 불리는 건조지역에서 진흙을 이용해 지은 집, 극한 지역의 얼음집 이글루, 현대인의 스포츠로 편입된 카약, 의생활에 보통 명사로 자리잡은 파카 등 북미원주민이 남긴 문화유산을 통해 그들이 괴성을 지르는 야만인이 아니라 축적된 지혜를 남긴 문화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라코타족 원주민 추정, <대평원의 보금자리, 티피>, 1880년경, 높이 467.36cm, 덴버박물관
2부는 북미 대륙에 유럽 이민자의 집단 유입 이후 북미 원주민의 삶의 변화 양상을 다루고 있다. 유럽 출신 이민자의 관점에서는 ‘개척’이지만 이미 그 땅의 주인이자 생활인이던 북미 원주민 입장에서는 ‘침략’이기에 갈등과 학살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2부는 사진이나 회화 작품 등 좀 더 미술관 전시에 가까운 모습이다. 운디드니 학살(1890년) 같은 비극도, 인디언 보호 구역 내에서 가장 활성화된 ‘산업’인 도박업과 북미 원주민 커뮤니티 내 범죄 같은 20세기 이후의 문제도 예술 작품 속에 반영되어 있다.
2024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전경
올해 열리고 있는 베니스비엔날레의 미국관은 제프리 깁슨의 <나를 담을 공간 the space in which to place me>이라는 전시로 채워져 있다. 깁슨은 미시시피주의 촉토/체로키 혈통으로 분류되는 원주민 후예로 10대 때 국방부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서 몇 년 간 살아본 경험이 있는 작가다. 자신의 혈통인 북미 원주민 전통 요소를 작품에 반영시킨 깁슨의 작품으로 채운 미국관은 베니스비엔날레의 인기 전시관 중 하나이다.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은 20세기 이후 미국이라는 세계 초강대국의 정체성을 이루는 여러 요소중의 하나인 북미원주민과 그들의 문화를 살펴 볼 수 있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