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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과 한국작가

-냄새로 채운 한국관
-베니스 본섬을 채운 어디에나 있는 한국 작가 작품 전시

전시명 : 베니스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
장 소 : 이탈리아 베니스
기 간 : 2024.4.20 ~ 11.24
글/ 김진녕

2024년도 ‘베니스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이탈리아 베니스, - 11.24)이 열리고 있다. 올해 전시 총감독은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 그는 1895년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기 시작한 이래 첫 남미 출신 전시 기획자로 현재 브라질 상파울루미술관(MASP) 관장을 맡고 있다. 페드로사가 선택한 올해의 전시 주제는 <이방인은 어디에나(Stranieri Ovunque – Foreigners Everywhere)>였다. 2000년대 들어 국제적 미술 이벤트에서 제3세계의 정치적 불안과 좀 더 좋은 품삯과 거주 환경을 찾아 비합법적 이민길에 나선 난민 이슈나 환경 문제나 기후 이슈는 해마다 포장만 달리할 뿐 계속 반복되고 있는 키워드다. 페드로사의 ‘어디에나 있는 이방인’에는 기존의 비합법적 노동이민을 꾀하는 이들이 부딪힌 현실이나 기후 이슈 같은 것에, ‘외부 침입자’가 아님에도 기존의 고착된 사회시스템에서 소외되고 은폐되며 타자화되는 성적소수자의 이슈를 전면에 끌어들였다. 그리고 미술 장르에서 오랫동안 소외됐던 ‘바느질’, 즉 자수나 봉제라는 소재를 끌어들인 작품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거칠게 말하면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의 본전시나 국가관 전시는 ‘퀴어 레즈비언 바느질’, 이 삼대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페드로사가 내건 ‘조별 과제’에 한국관은 냄새로 대응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난해 3월 참여작가에 구정아, 전시기획에 이설희(쿤스트할 오르후스 수석 큐레이터), 야콥 파브리시우스(아트허브 코펜하겐 관장) 예술감독 조합을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로 뽑았다.


이들이 선택한 전시 제목은 <구정아 – 오도라마 시티>이다. 문화예술위원회는 ” ‘오도라마’는 향을 의미하는 ‘오도(odor)’에 드라마(drama)의 ‘라마(-rama)’를 결합한 단어로, ‘향’은 1996년 이래 구정아의 광범위한 작업 범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테마이다. 구정아는 후각과 시각의 공감각적 매체로 비가시적이지만 가시적인 지점을 양립시키고, 그 경계 너머 열린 가능성을 제시하는 작업 실천을 이번 전시에서 이어간다”고 밝혔다.


냄새와 향은 인체의 후각세포로 기화된 입자를 구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념이다. 둘은 기본적인 인식과정은 같지만 한국어에선 냄새와 향을 구별한다. 아니 차별해 낸다. ‘우리’와 다른 타인의 체취는 ‘향’이 아니라 ‘냄새’로 규정한다. 그래서 한국어에서 ‘냄새’라는 단어는 혐오배설의 가장 쉬운 통로로 활용되곤 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직접적인 파국의 변곡점을 만들어내는 지점이 ‘냄새’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지점 이후 부터라는 것에 대해 한국인 관람객은 대부분 동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했고, 이는 외국인 관객에게도 통했다. 이동이 자유로워지 21세기의 지구촌에서도 가장 손쉬운 혐오 표현은 자신의 코가 이미 익숙해서 구별을 못해내는 냄새가 아니라 아직은 낯선 후각적인 자극이다. 그래서 ‘노린대’ ‘김치냄새’ ‘마늘냄새’ ‘간장쩐내’ ‘카레냄새’ 등 외부인을 향한 다양한 혐오표현이 여전히 여러 문화권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인기리에 사용 중이다.

구정아는 이방인이라는 이 국제적 이벤트에서 ‘화약고’인 ‘냄새’보다는 ‘향’을 택했다. 전시장은 지난 10여 년간의 한국관 전시 중에서 가장 개방도가 높아 보였다. 유리로 된 전시장 외관에 아무 것도 붙이지 않았고 구구절절한 작품 설명서도 없었다. 천창을 통해 아드리아해의 물빛과 햇볕이 여과없이 쏟아져 들어오고 나무 바닥에는 무한대 기호를 닮은 무늬가 얆게 음각되어 있었다. 그런 전시장 내부를 떠도는 것은 한가지 향이었고, 그 향의 출처는 전시장 한쪽 구석의 방안에 떠있는 검은 피겨였다. 1분? 2분? 아이를 닮은 이 피겨의 콧구멍에서는 반복적으로 향이 뿜어져 나와 코밑에 원액이 허옇게 말라 붙어있었다.

전시장 안의 모든 냄새는 같았다. 백미터 전부터 강렬한 냄새를 풍기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비누가게의 냄새보다는 머리를 덜 아프게했지만 향수제조업자의 팝업 스토어와 다른 게 뭘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냄새는 형태가 없지만 기억과 선경험을 재구성하는 강력한 매체다. 같은 공업용 본드 냄새라도 어떤 이에겐 새학기에 지급받은 교과서에서 나던 냄새로 두근거림을 이끌어 내기도 하고, 어떤 이에겐 새 차를 출고받았을 때의 짜릿했던 히스토리를, 또 어떤 이에겐 값싼 마약 대용품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전시장 안에 작가가 배치한 냄새는 균일하고 섬세했지만 딱히 어떤 기억의 조각, 한국에서의 어떤 경험도, 탈국경적인 경험도 떠오르게 만들지는 않았다.

전시장을 나와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코디 최의 전시 때도 남화연 등의 전시 때도 닫혀있었던 게 올해는 열려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상 위는 텅 비어있고 나무 사이로 아드리아해가 반짝거리는 게 보일뿐 전시장 안을 떠돌던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드라마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던 냄새가 떠돌던 전시장 안과 가장 드라마틱하게 대비되는 무향의, 새소리와 빛만 있는 공간이 바로 위에 있었다는 게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국가관 전시 외에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된 작가는 아르헨티나에서 오랫동안 조각 작업을 해온 김윤신 작가와 퀴어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 작업을 미국 기반으로 펼치고 있는 이강승, 해방 공간에서 스스로 남한 사회의 이방인이 되어 버린 이쾌대 등의 작품이 초대됐다. 70-80년대의 산업화 시대에 가장 보수적인 세계관을 선보였던 장우성 작가의 젊은 시절 작품을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총감독이 고른 것은 이번 전시의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이방인은 어디에나’이고, 페드로사 총감독은 아르세날레의 주제관 전시 중간에 ‘이탈리아인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기획 프로그램을 배치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다른나라(주로 남미)에서 이방인으로 활동했던 많은 이탈리아계 작가의 작품 수십 점이 선보였다.

이탈리아인 못지않게 이번 베니스에도 한국 작가는 전시가 열리는 베니스 본 섬 어디에나 있다,고 할 정도였다.


일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건립 30주년 기념’을 표방한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에는 지난 30년간 한국관 전시에 참여한 작가 36명(팀)의 작품 82점이 몰타기사단 수도원에서 열렸다. 1995년 한국관 개관 당시 비구니가 참여한 퍼포먼스로 화제가 되었던 곽훈의 <겁/소리-마르코 폴로가 가져오지 못한 것>(1995)과 강익중, 최정화 등의 작품은 수도원 정원에, 수만 장의 졸업앨범 사진을 벽지로 구성한 서도호의 2001년 본전시 참여작 (2000)과 한국의 대표적 주거 형태인 아파트의 삶을 담은 정연두의 2005년 한국관 전시작 <상록타워>(2001) 등은 수도원 건물 내부에, 오형근의 사진 연작은 중정 회랑에 걸리는 등 다양한 전시 연출을 경험할 수 있다.


몰타기사단 수도원이 넓은 공간에 비해 위치가 좀 외진 곳이라면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가 주최하는 광주비엔날레 30주년 기념 아카이브 특별전 《마당-우리가 되는 곳》(Madang-Where We Become Us)은 국가관 전시가 열리는 자르디니 턱밑에 있다. 일 지아르디노 비안코 아트 스페이스(Il Giardino Bianco Art Space)에서 열리는 전시에는 제1회 광주비엔날레 출품작 백남준의 <고인돌>(Dolmen)(1995)과 크초(Kcho)의 <잊어버리기 위하여>(To Forget)(1995) 등의 작품과 광주비엔날레가 30년간 쌓아올린 기록을 만나볼 수 있다.





국내 민간 영역이 주도한 전시로는 유영국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유영국: 무한 세계로의 여정>이 퀘리니스탐팔리아재단에서 열리고 있고, 한솔문화재단은 빌모트재단 건물에서 이배 작가의 <달집 태우기 LA MAISON DE LA LUNE BRÛLÉE>전을 열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화랑인 현대화랑은 세 개의 전시에 관여하고 있다. 하나는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을 통해 파리에서 작업을 이어갔던 이성자의 개인전 <이성자: 지구 저편으로 >를 아르떼 노바에서 열고 있다.


두 번째는 1980년에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30년 동안 작업을 이어간 신성희(1948-2009)의 개인전을 팔라초 카보토(Palazzo Caboto)에서 열고 있다. 팔라초 카보토는 자르디니 입구에 있는 건물로 국내 화가의 전시가 자주 열려 낯익은 곳으로 이번에는 신성희 작품세계의 정수가 담긴 〈박음 회화(꾸띠하주)〉 연작(1993-1997)과 〈엮음 회화(누아주)〉 연작(1997-2009) 19점이 펼쳐져 있다.


국내 실험미술계의 원로 작가 이승택(b.1932)은 이번에는 2인전으로 베니스를 찾았다. 베네치아 아카데미 건물로 쓰이는 팔라초 로레단(Palazzo Loredan)에서 이승택과 미국 개념미술가 제임스 리 바이어스(1932-1997)의 2인전 <공기를 채운 보이지 않은 질문들 Invisible Questions That Fill the Air: James Lee Byars and Seung-taek Lee >이 열리고 있다. 두 작가는 한번도 직접적인 대면을 한 적이 없음에도 닮은 점이 많아 보이는 작업물을 펼쳐왔다는 게 2인전 기획의 발단이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시 기획에는 마이클 워너 갤러리의 디렉터와 갤러리현대의 디렉터가 참여했다. 스치고 스미는 문화 현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전시다.


업데이트 2024.07.1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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