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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삼색전, 동일한 소재로 한자리에서 비교해 보는 한국과 일본, 중국의 미감

-수천년을 이어온 아시아의 오랜 공예, 칠기
-같은 성질의 옻을 활용했지만 각기 다른 기법을 발전시킨 삼국의 칠기

전시명 : 2024년 한일중 국립박물관 공동특별전 '三國三色-동아시아의 칠기'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기 간 : 2024.7.10 ~ 2024.9.22
글/ 김진녕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의 명품 칠기를 한데 모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 전시의 공식 명칭은 ‘한·일·중 국립박물관 공동특별전 <삼국삼색(三國三色)-동아시아의 칠기>’전이다. ‘한·일·중‘이란 호칭 순서는 이번 서울 전시에만 적용되는 호칭으로 그해 전시 개최국을 먼저 쓰고 그 뒤에 다음 개최국 이름을 표기한다는 ‘규칙’을 적용한 결과다. 그런 규칙을 만들 만큼 삼국 국립박물관의 교류전은 민감하고 뻣뻣한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세 나라 간에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한 다음 전시는 2년 뒤인 2026년에 도쿄에서 반드시 열린다는 걸, ‘한·일·중’이란 표기에서 알 수 있다.


동아시아 3국 국립박물관 공동특별전은 2014년 첫 전시가 열린 이래 도자기 회화 청동기 등 삼국 문화를 포괄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전시가 이어졌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칠기’이다. 삼국 모두 공통으로 옻나무에서 채취한 천연 수액을 가공한 도료를 사용하여 다양한 칠기를 제작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도록에 실린 주경미 충남대 교수의 ‘동아시아의 칠기 제작 전통과 확산’이라는 글을 보면 삼국의 칠기 역사를 대략적으로 다루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선사시대 칠기가 처음 발견된 것은 1926년 사이타마현의 신푸쿠지眞福寺 패총의 발굴 조사 과정에서 신석기 시대의 칠기편이 출토된 것이었다. 이후 일본에서는 이사카와현의 미비키 유적에서 기원전 5200-5000년 께의 칠기 빗을 비롯한 칠기와 칠공예 제작도구가 출토됐다. 한편 중국에서는 1970년대에 저장성 위야오현 허무두 유적에서 신석기 시대의 목칠기가 다수 출토되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항저우시 콰후차오 유적에서 기원전 6000년 께의 칠궁漆弓이 발견됐다. 콰후차오 출토 칠궁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칠기로 나무로 만든 활 표면에 옻칠을 한 것이다. 이러한 고고학적 발굴품을 볼 때, 칠기의 제작 기술은 중국 남부 지역에서 처음 발전하여 점차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신석기 시대의 붉은 색간토기 표면에서 옻칠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즉 현재 동아시아 삼국이 자리잡은 지역에서 대략 신석기시대부터 옻칠을 생활의 편리를 위해 이용했다는 것이다. 다만 아시아에서도 지역에 따라 동남아로 분류되는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에서 사용하던 옻칠과 동북아로 분류되는 동아시아 3국의 옻칠은 다르다고 한다. “대만과 베트남의 옻칠은 투명도가 높고 빨리 마르기 때문에 두껍게 바르는 데 적합하고, 미얀마나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의 옻칠은 색칠하지 않아도 광택이 있는 검은색을 띠고 유연성이 뛰어나다”(도쿄국립박물관장 후지와라 마코토)고 한다.


이번 전시의 한국 쪽 출품작은 나전칠기를 중심으로 선보이고 있다. 국박 쪽에선 “나전 기법으로 제작한 유물은 고려시대부터 등장하지만 기술 수준으로 볼 때 이미 그 이전부터 고도로 발달한 나전칠기 문화가 존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국가 지정 보물 중 10세기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나전 화문 동경(螺鈿 花文 銅鏡)(보물 제140호, 리움 관리품)이 있지만 이번 전시는 국박 소장의 고려시대에 제작된 나전칠기가 가장 앞선 연대의 전시물로 나와있다.


나전 칠 모란넝쿨무늬 경전 상자, 고려 13~14세기, 높이 22.6cm,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일본쪽 전시물은 금가루를 활용하는 마키에 칠기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쪽에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칠공예 기법은 마키에 기법이며, 헤이안 시대(8-12세기)에 큰 발전이 이뤄졌다. 헤이안 시대 내내 유행한 도기다시(硏出) 마키에는 칠기 표면에 옻칠로 무늬를 그리고 그 위에 금은 가루 등을 뿌린 뒤 표면에 전체적으로 옻칠을 하고 그려진 무늬를 갈아내는 마키에의 기본적인 기법이다. 이번 전시에는 도키다시 마키에 기법을 사용한 <마키에 칠 연못무늬 경전 상자>를 비롯한 다양한 기법의 마키에 칠기와 유럽으로 수출된 남만칠기, 차 문화에 관련된 칠기 및 소유자의 신분과 취향을 드러내는 인롱印籠 둥의 유물이 출품됐다.”


마키에 칠 미나리무늬 식기, 일본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16세기, 밥그릇 높이 10.5cm,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마키에 칠 국화무늬 뿔대야, 일본 에도 시대, 17세기, 높이 18.7cm,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중국 칠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중국 칠공예 기법 중 이번 전시의 중심이 되는 것은 조칠 기법이다. 붉은 색과 검은 색을 번갈아 겹겹이 칠한 뒤 조각한 척서剔犀 기법, 붉은 색의 칠을 여러 번 하고 조각한 척홍剔紅 기법 등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명대 척서 기법의 <조칠 구름무늬 탁자>와 청대 건륭제 시기의 척홍 기법 <조칠 산수 인물 무늬 운반 상자> 등이 전시장에 나와있다.


조칠 구름무늬 탁자, 중국 명, 14~17세기, 높이 13.0cm, 중국 국가박물관


이번 전시는 동아시아 삼국의 대표 국립박물관이 각자 그들 나라를 대표하는 출품작을 진지하게 골랐을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그래서 삼국의 대표적인 칠기라는 것이 어떤 것임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다만 이 전시가 멀지 않은 과거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칠 전시와 거의 성격이 같다는 점에서 ‘재탕’ 논란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2021년 말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칠漆, 아시아를 칠하다>란 특별전이 열렸었다. 이번 <삼국삼색>전과의 차이라면 그때 전시는 국박의 단독 기획으로 열렸고, 출품작도 이번 전시의 46건에 비해 263건으로 절대적으로 많았다. 또 다른 차이점으로 그때 중국쪽 출품작의 출처가 주로 상하이박물관이었다는 정도를 들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중국쪽 출품작은 중국 국가박물관이다. 2021년 전시가 전체 출품작이 월등히 많았기에 훨씬 더 다채로운 칠기를 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중국산 조칠 유물도 상하이 박물관 소장의 원대 유물은 물론 한반도 남서해안인 신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조칠기도 출품됐다.

한중일 동아시아 3국 국립박물관의 공식 교류전으로, 삼국의 국립박물관의 이름으로 열리는 합동전이라 단독기획전과는 달리 여러 제약이 있었을 것이다. 이왕이면 삼국의 국립박물관 수장이 전시 개막식에서 배포한 인사말에 주장했던 ‘최소 5000년의 칠공예 역사’나 2000년의 칠공예 역사를 뒷받침하는 유물이라도 나왔으면 내용까지 꽉찬 무게감이 있는 삼국교류전이 됐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쪽 출품작에서는 국박 소장품인 보물 제1975호 나전 칠 모란 넝쿨무늬 경함(나전경함 螺鈿經函, 고려 13-14세기) 정도가 연대가 올라가는 유물이고 대부분 18-20세기 조선 후기의 나전칠기로 이뤄졌다. 중국쪽 역시 명나라 때인 14-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칠 구름 무늬 탁자’를 빼고는 대부분 18세기를 전후한 청나라 시대의 유물로 채워졌다. 다만 일본은 14세기 남북조시대, 16-17세기 모모야마시대, 18세기 에도시대 등 연속성있게 시대별 칠기 유물을 출품했다.


나전 칠 연상, 조선 19~20세기 초, 높이 26.7cm, 국립중앙박물관



조칠 산수인물무늬 운반 상자, 중국 청, 건륭(1735-1796), 높이 32.0cm, 중국 국가박물관


그래서일까, 전시장에서 가장 화려하게 디스플레이된 것은 일본 칠기인 마키에 칠기였다. 에도시대 화가인 와타나베 기요시渡邊淸(1776-1861)가 그린 <추초도 병풍 秋草圖屛風>(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구 3366)을 부분 확대해 벽지로 걸고 <마키에 칠 소나무, 싸리나무무늬 선반>(에도 시대, 18세기)와 <마키에 칠 국화, 물가무늬 책상과 벼루 상자>(에도 시대, 19세기)를 맵시있게 배치했다. 일제 강점기의 이왕가 컬렉션이 국박에 귀속됐기에 가능한 믹스앤매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추초도 병풍(참고도판)


전시 전경



마키에 칠 국화물가무늬 책상과 벼루 상자, 일본 에도 시대 19세기, 책상 높이 10.1cm,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업데이트 2024.07.3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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