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향, 푸른 연기(靑煙) 피어오르니
장 소 :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기 간 : 2024.8.27 ~ 2024.12.21
글/ 김진녕
한반도에 살던 옛 사람이 향을 사르기 시작한 역사, 그들이 향을 사르던 그릇, 향의 재료가 되는 나무와 열매, 향을 사용하던 의례와 문헌 기록, 종교화 속에 묘사된 향의 사용례, 의례를 벗어나 일상의 사치재로 사용되던 조선 후기의 액세서리. 향에 관한 거의 모든 역사 유물이 등장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향, 푸른 연기(靑煙) 피어오르니>전(- 12.21)이 그것이다.
제목에 ‘푸른 연기’가 붙어있는 데서 알 수 있듯 향 중에서도 현대인이 많이 쓰는 액상 타입의 향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을 붙여 사르는 향을 주로 다룬다. 전시장에는 금속(청동) 향로와 토기 향로, 청자나 백자, 분청 향로 등 도자 향로, 향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고서와 불교 경전 속 향이 묘사된 그림, 유교 왕국이던 조선 왕조의 왕실행사에 등장한 향을 기록한 의궤, 조선 후기 사치품으로 자리잡은 향낭과 향을 넣은 노리개, 고관대작용(남성용) 쥘부채에 달린 선추에 들어가던 향까지 한반도의 향 사용 역사를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보여주는 유물 170여 점이 나와있다.
1세기 무렵의 한나라 유물인 청동 박산향로(호림박물관 소장), 익산미륵사지 출토 금동향로(보물 1753호,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군위 인각사 출토 금동병향로(보물 제2022호, 불교중앙박물관 소장), 6세기 신라 유뮬인 토기 향로(동아대 석당박물관 소장), 4세기 고구려 시대의 유물인 안악3호분 부인도(모사본, 한성백제박물관 소장), 보물 1477호로 지정된 정조 연간의 관리 채제공 초상화와 초상화 속에 등장하는 선추의 실물(수원 화성박물관 소장) 등 17개 기관과 개인이 협조한 유물에는 보물로 지정된 유물만 11건에 달한다.
안악 3호분 벽화 모사도 부분
성덕대왕 신종 탁본 부분
1세기 무렵의 한나라 유물인 청동 박산향로(호림박물관 소장), 익산미륵사지 출토 금동향로(보물 1753호,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군위 인각사 출토 금동병향로(보물 제2022호, 불교중앙박물관 소장), 6세기 신라 유뮬인 토기 향로(동아대 석당박물관 소장), 4세기 고구려 시대의 유물인 안악3호분 부인도(모사본, 한성백제박물관 소장), 보물 1477호로 지정된 정조 연간의 관리 채제공 초상화와 초상화 속에 등장하는 선추의 실물(수원 화성박물관 소장) 등 17개 기관과 개인이 협조한 유물에는 보물로 지정된 유물만 11건에 달한다.
주최측에서는 전시장 3개에 각각 <여향與香, 함께 한 향기>, <공향供香, 천상의 향기>, <완향玩香, 애호의 향기>로 구분해 전시를 펼쳤다.
제1전시실의 '여향, 함께한 향기'를 주제로 내건 전시실은 전시의 프롤로그이자 총괄편으로 보인다. 입구에 “한자 ‘향(香)’은 좋은 향기라는 뜻을 가진 글자로, 곡식이 그릇에 담겨져 있는 모양에서 나왔다. 즉, 향은 곡식에서 나는 좋은 냄새를 의미한다. 이후 향의 의미는 확대되어 ‘좋은 냄새’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사람은 좋은 냄새를 곁에 두고자 주변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물질을 찾고 가공하여 향을 만들었다. 이때 사용된 재료는 대부분 식물에서 나왔는데,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자생하는 식물에서 얻었다”란 소개 글이 써있고 전시장 내부에 향의 재료로 쓰이는 백단나무나 팔곽, 용연향. 신안선에서 나온 자단목 등 향의 재료를 보여주고 있다. 또 고구려 고분 벽화 속의 향 사용 실례를 안악3호분 부인도, 쌍영총 공양행렬도의 모사본을 통해 보여주고, 성덕대왕 신종에 새겨진 비천상 속 선인이 들고있는 향로를 탁본을 통해 볼 수 있다.
제2전시실 <공향供香, 천상의 향기> 섹션에서는 향이 종교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나 모두 지배계층에서 향을 열심히 소비했지만 그들이 향을 사르던 그릇은 그들이 믿던 불교와 유교만큼이나 달랐다.
주최측에선 이렇게 설명했다.
“향(香)을 피우는 문화는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해왔다. 특히 불교에서 향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와 역할을 하였다. 향을 피우는 행위는 부처님과 보살에게 공양을 드리는 것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의미가 있다. 아울러 수행자에게는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집중력을 높여주어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불교의 분향(焚香) 의례에서는 거향로(居香爐)・현향로(懸香爐)・병향로(柄香爐) 등 다양한 형식의 향로가 사용되었다. 이들 향로는 조형과 장식이 뛰어나 우리나라 공예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다.
백자 청채투각 향자모양 향꽂이, 조선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유교에서 분향은 중요한 의례 행위로 여러 가지 이유와 의미가 있다. 우선, 조상의 영혼을 위로하고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또한, 향을 피우는 행위는 의식이 행해지는 공간을 정화하고 신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였다. 아울러 향을 피우는 동안 사람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경건하게 의식을 진행할 수 있었다. 유교 의례에서 사용한 향로는 불교와 조형에서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중국 고대 청동기의 하나인 정(鼎)을 바탕으로 제작된 새로운 형식의 향로가 유행하였다. 이러한 향로는 도자, 금속, 돌 등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졌으며, 단순 간결한 조선 공예미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고려왕조의 지배계층은 개인의 신앙생활로 불교를 선호했고 동물모양이나 식물 모양 등을 청자에 도입한 극상의 조형 감각을 소비했다. 중국에 뿌리를 둔 유교를 국교로 채택한 정교일치의 조선 왕국 지배계층은 준거 틀을 중국 고대에서 찾았고 그들의 제사 그릇은 중국 고동기를 모방했다. 이 섹션에서는 청자향로와 은입사 청동향로 등 정교함과 화려함의 극을 달리던 고려시대의 향로와 분청향로와 백자향로 등 중국 고동기를 모방한 조선시대의 분명한 취향 차이를 전시장에 놓인 다양한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불교나 유교에서 공통적으로 의례에 향을 중요한 요소로 활용했다는 것을 수많은 향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향의 쓰임은 현대 한국인의 제사의례에도 여전히 살아있다. 제사 의례를 시작하기 전 향에 먼저 불을 붙이는 행위를 ‘강신’이라고 부른다. 제사상을 차린 뒤 조상신을 부른다는 의미다. 평범했던 가정집 거실이나 안방이 향을 사름으로써 특별한 공간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종교적 의례에 치중됐던 향의 쓰임은 제3전시실에 가면서 현대적인 향의 쓰임이 확산되고 있음을 유물로 보여주고 있다. 주최측에선 세 번째 섹션의 이름을 ‘완향玩香, 애호의 향기’라고 지었다.
“우리나라에 향(香)이 들어온 이후, 향 문화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하나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사용한 것으로, 이때의 향은 형이상학적이고 이상적인 관념을 반영했다. 다른 하나는 개인적 취미(趣味)와 취향(趣向)에서 사용한 것으로, 이때의 향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기능을 가진 물질로 여겨졌다. 향은 공간을 정화하고 청결하게 만드는 실용적인 기능이 있어서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데 긴요하게 사용되었다. 이러한 실용적 기능 덕분에 향은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특히 남성들은 문방제구(文房諸具)의 하나로 향을 중요하게 여겼다. 독서분향(讀書焚香)의 전통 속에서 다양한 향 도구가 그들의 기호에 맞게 선택되고 사용되었다.”
채제공 초상 시복본, 조선 1792년, 수원화성박물관
채제공 초상 중 향낭 선추 부분
실제 채제공이 사용하던 선추 유물
전시장의 맨 끝에는 현대의 ‘향수’쓰임과 같은 기능을 하는 향낭이나 향을 담는 공간을 확보한 노리개 등 여성용품과 남성용 ‘향수’를 쓰는 채제공의 초상화와 실물인 선추를 함께 전시했다. 이명기가 1792년(정조 16년) 채제공 73세 때 그린 이 초상화의 왼쪽 상단에는 ‘선시군은(扇是君恩) 향역군은(香亦君恩)’이란 채제공의 글이 써있다. ‘부채는 임금의 은혜, 향선추 또한 임금의 은혜’라는 뜻이다. 초상화는 물론 손에 쥐고 있던 부채와 향선추까지 모두 왕이 하사한 위세품이고, 향이 몸치장으로 쓰이는 게 정조 연간 조선 상류계층에서 보편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향, 푸른 연기(靑煙) 피어오르니>전은 낙랑 지역에서 출토된 박산향로부터, 안악3호분 고분 벽화에 모습을 남긴 4세기 고구려 귀족 부인, 18세기 채제공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일대의 ‘푸른 연기’ 소비를 통해 근 2000년간의 문명사를 펼쳐놓은 전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