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대한민국예술원 개원 70년: 지금, 잇다 / MMCA 소장품전 : 작품의 이력서
장 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기 간 : 2024.9.12~ 2024.10.13
전시명 : 격동의 시대, 여성 삶 예술
장 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
기 간 : 2024.8.8-11.17
글/ 김진녕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1층에서 《대한민국예술원 개원 70년: 지금, 잇다》전이, 2층에서 《MMCA : 소장품전 작품의 이력서》전이 동시에 열렸다. 각각 덕수궁관 1층과 2층의 두 개 전시실에서 열린 다른 제목의 전시지만 한국의 근대미술사로 편입된 20세기 초중반을 살필 수 있는 자리였다. 이를테면 김은호(1892-1979)는 1층에 <화기>(1960년대, 2021년 이건희컬렉션), 2층에 <화조영모도>(1900년도 초반, 2013년 국박 관리전환), 김기창(1913-2001)은 1층에 <밤새>(1974, 2021년 이건희컬렉션), 2층에 <김정호 영정>(1974, 1980년 문공부 관리전환), 류경채(1920-1995)는 1층에 <산길>(1954, 국현 소장품)이 걸리고, 2층에 <폐림지 근방>(1949, 1987년 문화예술진흥원 기증)이 걸리는 식이었다. 1층과 2층이 작가 연대 순이나 창작 연도 순으로 배열된 게 아니지만 20세기 중반에 예술원 회원에 꼽힐 정도로 지명도가 있었던 그 시대의 대표 화가와 표준 영정 사업이나 민족기록화 프로젝트로 미술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제3공화국의 정책이 어떤 모습으로 한국 미술사에 반영됐는지를 볼 수 있다.
물론 국현이 밝히고 있는 전시 의의는 조금 다르다. 왜 국현이 예술원 회원전을 열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지금, 잇다》전에는 예술원 현 회원 및 유고 작가 70명의 작품 87점과 아카이브 30여 점을 선보였다. 국현쪽에서는 “예술원 소장품과 작가 소장품, 국현 소장품을 함께 전시해서 보다 역동감 있게 한국 근현대미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
《지금, 잇다》 전은 덕수궁관 1층 전시실 2개 공간에 펼쳐졌다. 1전시실의 ‘역사가 된 예술가’ 섹션에선 광복 이후 1950년대 전쟁과 분단이라는 혼란 속에서 한국예술의 전통과 현대적 발전의 길을 모색해 온 예술원 작고 회원의 작품 53점이 소개됐다. 초대회장 고희동과 해방과 함께 미술이 대학의 일부가 되는 순간을 맞이해 교수로도 활동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초석이 된 이상범, 장발, 배렴, 김환기, 윤효중, 노수현, 도상봉, 김인승 등의 작품이 전시됐다.
전뢰진, <소녀의 꿈> 1991, 대리석
2부 우리시대의 예술가에서는 예술원 현 회원 17명의 작품 34점을 소개한다. 서양화 조각 공예 건축 각 분야의 원로에게 전 시대를 고루 배분했다. 단단하고 거친 화강암에 소박한 인간애를 담아낸 조각가 전뢰진, 섬유예술계의 1세대 중 한 명인 이신자, 교회 조각의 토착화한 최종태, 국전 시대에 수묵으로 등단했지만 수묵의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재료를 통해 원형성을 탐구한 이종상 등의 작품을 이 섹션에서 볼 수 있었다.
좌) 홍석창, <수목조형> 1995, 종이에 먹, 작가소장 / 우) 홍석창, <채묵조형> 2015, 종이에 먹, 색, 작가소장
20세기 한국 미술이 직면했던 현실을 반추하는 데는 1층보다 2층이 더 효과적이었다. 2층에서 열리고 있는 전은 국현에 관리전환으로 넘어온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김은호, 김인승, 김환기, 박래현, 박서보, 이응노, 장두건, 정창섭 등 40여 명의 작품 60 여 점이 소개됐다.
미술관 측에서는 “관리전환 소장품은 구입 소장품처럼 미술관의 소장 정책이나 의도를 직접적으로 반영하지는 않지만, 미술시장이 활성화되기 전 국가가 미술계 진흥과 국민의 문화향유권 제고 등 공익을 위해 취득한 작품인 만큼 근현대 역사 및 미술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살펴볼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80년대 이후 민간 상업화랑이 활성화되기 이전 한국 미술시장의 규모는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20세기 후반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컬렉션은 간송컬렉션이고, 이는 고미술품과 고서 위주의 컬렉션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청자 도굴과 백자도굴, 고분 도굴, 절집의 탱화 도난이 늘 신문을 장식했다. 이런 사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추론은 20세기 내내 한반도에서 고미술품은 돈이 되는 욕망의 대상이었다는 점이고, 현대미술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대의 현대미술품이 도난당해 모든 뉴스 매체에 떠들썩하게 등장한 것은 딱 한 번 뿐이다. 1978년 제27회 국전 입상작과 초대작가 작품전을 대전에서 순회 전시하던 중 도둑이 들어서 58점의 작품을 액자에서 그림만 칼로 오려내 가져간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도 대부분 동양화(한국화) 작품에 집중됐다. 이 사건은 당대의 한국 현대미술의 상업적 거래가 20세기 후반이나 되어서야 활성화(?)됐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런 시대에 미술로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중고등학교의 미술교사나 대학교수로 자리잡는 게 최상의 수익모델이었으며 전업화가는 극히 드물었다. 60년대에 스스로 대학교수 자리를 내놓고 미국으로 떠난 김환기가 지금도 대단하게 여겨지는 까닭이다.
이종상, <원형상-구룡폭> 2004, 장판지에 먹, 대한민국예술원 소장
그래서 국전은 그 시절 모든 미술계 참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됐다. 국전에 일정한 횟수 이상 입상하고 초대작가를 거치면 대학교수로 임용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국전 입상작을 국공립 기관에서 사 주고, 국책 프로젝트인 역사 위인의 초상화 제작, 민족기록화나 해외 비엔날레 파견 등 미술을 둘러싼 각종 수익모델과 이권은 모두 문공부가 주관하는 국전으로 귀결되는 구조였다. 가난했던 시절 그나마 관이 주도하는 '배급경제'에 미술계가 의지하는 형국이라 국전을 통해 한국화 진영의 수묵화 대 채색화, 서양화 분야의 구상 대 비구상 등 한국 미술계의 모든 갈등이 폭발하고 진행하는 양상이 됐다.
2층 전시실에서 눈길을 끌었던 작품 중 하나는 한국 추상화계의 큰 이름 중 하나인 정창섭(1927-2011)의 작품이었다. 서울대 미대 1회 졸업생인 그는 구상 작품으로 국전에 등단한 뒤 앵포르멜을 거쳐 80년대에 한지의 물성을 이용한 단색화가로 자리매김했다.
정창섭, <횃불> 1971, 캔버스에 유채, 국가정보원 관리전환(2016, 미술자료)
이번 전시회장에는 그의 작품 넉 점이 걸렸다. 1962년 작 <심문>(1984년 대통령 비서실 관리전환)을 빼면 모두 생계용(?)으로 부를 수도 있다. <횃불>(1971, 2016년 국가정보원 관리전환), <건설현장>(1971, 2016년 국가정보원 관리전환), <귤 수확>(연도미상, 2002년 청와대 관리 전환) 등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이 중 <횃불>은 화면 중앙 상단에 자리한 태극기를 오성홍기나 낫과 망치가 어우러진 ‘소련’ 또는 북한의 깃발로 바꿔 달아도 별 이물감 없는 선전선동 미술의 전형성을 담고 있다. 1970년대 초 남한의 국가권력이 미술의 현실적인 ‘쓸모’에 대해 가졌던 인식을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건설현장>과 <귤 수확>도 3공 정부의 최대 현안이었던 ‘선진 조국 달성’을 위한 계몽적인 선전 미술로 분류된다.
정창섭, <건설현장> 1971, 캔버스에 유채, 국가정보원 관리전환(2016, 미술자료)
같은 전시공간에 걸린 박각순의 <살수대첩>(연도미상, 2002년 청와대 관리전환)은 1975년 국현에서 열린 <민족기록화-전승편. 경제편>에 전시된 이후 청와대에 소장됐다가 2002년 국현으로 관리권이 넘어온 경우다. 1962년 국전 대통령상을 탄 김창락의 <사양>(1962), 1967년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인 김진명의 <화실>(1967) 등 두 작품은 각각 1985년과 1987년 청와대 비서실에서 관리 전환된 작품이다.
덕수궁관의 두 전시를 미술관이 부여한 전시 명칭에 얽매이지 않고 둘러본다면 20세기 한국 미술사를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김은호, <화조영모도> 1900년대 초반, 비단에 먹, 색, 국립중앙박물관 관리전환(2013)
정동에 이웃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열리는 <격동의 시대, 여성 삶 예술>전(8.8-11.17)을 함께 보면 진통하며 전진했던 국전의 속사정을, 비록 동양화부에 국한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좀 더 알 수 있다.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50년대부터 채색화계의 독보적인 화가로 통했던 천경자와 그 제자, 그리고 국전을 통해 등단한 여성 한국화가의 작품을 주로 다루고 있다. 도록을 따로 내지 않는다고 알려진 이번 전시에선 그래서인지 전시장 벽면에 20세기 한국미술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일제 강점기의 조선미술전람회와 해방 이후 1981년까지 한국 미술계를 좌우했던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연보와 시대별 쟁점과 그에 따른 국전의 형식 변화상과 갈등상을 아카이빙 자료로 벽면 가득 풀어놓고 있다.
결과적으로 두 미술관이 의도치 않게 20세기 한국 근대미술사 특별전을 함께 한 연 셈이 됐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 전시는 11월 17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