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의 감식과 근역화휘
장 소 : 서울 간송미술관
기 간 : 2024.10.16 ~ 2024.12.1
글/김진녕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품 108점을 소개하는 《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의 감식과 근역화휘》 전이 열리고 있다.
조선 후기 서화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역관 계급의 후예로 금석학자이자 서예가, 전각가, 때로는 서화류 거래를 중계했던 위창 오세창(1864∼1953)은 한국 회화사를 선별해 엮은 화첩 『근역화휘(槿域畵彙)>나 『근역서휘』 등의 편찬자로 한국 미술사를 쓰는 데 큰 업적을 남겼다. 이번 간송미술관의 전시 제목에 ‘오세창의 감식’이 들어간 것은 간송 컬렉션에 들어가 있는 유물 중 오세창의 감식을 거친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기 때문이다.
오세창은 20세기 전반 한국 미술의 대표적인 컬렉션인 간송컬렉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서화류를 살 때 오세창의 조언을 들었다. 간송 수장고에 오세창이 간송이 살 작품을 감식하고 작품에 발문(跋文, 작품의 경위 등을 담은 글)이나 보관 상자에 상서(箱書, 상자 위에 쓰는 글씨)를 남긴 것이 그대로 남아있고 이것이 이번 전시를 꾸리는 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오세창의 대표적인 성취인 간송 소장본 『근역화휘』의 전모를 스스로 밝혀서 전시장에 수록 작품을 풀어놓았다. 『근역화휘』는 서울대박물관에 1종류, 간송미술관에 1종류 등 총 2종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천지인’ 3권(책)으로 이뤄진 서울대박물관본은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됐지만 간송미술관본은 간송 특유의 ‘비밀주의’로 관계자 외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록 그림이 소개되는 정도였다.
공민왕 <이양도(二羊圖)>
2022년 서울대박물관의 《근역화휘》 전시 때 서울대박물관 측에서는 “한용운의 1916년 기록에 따르면 오세창은 『근역화휘』를 총 7권으로 편집하였다. 이때 『근역화휘』에는 191명의 그림 251점이 수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전형필과 박영철이 『근역화휘』를 나누어 소장하게 되면서 원본이 분리되었다. 서울대박물관에 소장된 『근역화휘』는 총 67점이며, 박영철이 기증한 것”이라고 밝혔었다.
서울대소장본 『근역화휘』 중 김홍도(金弘道)·조중묵(趙重默)·박기준(朴基駿)·유재소(劉在韶) 4인의 작품에는 ‘영운(穎雲)’ 혹은 “김용진가진장(金容鎭家珍藏)”이라는 도인(圖印)이 찍혀 있다. 또 화첩 각 폭 그림에는 좌우측 상단에 필자명(筆者名)과 호(號)가 씌어 있는데, 오세창이 쓴 것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우상하(禹相夏)의 호 겸현(謙玄)을 겸운(謙云)으로, 신명연(申命衍)의 호 애춘(靄春)을 애춘(藹春)으로 쓰는 등 몇 군데 오기(誤記)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궁금증을 이번 전시를 통해 간송미술관 쪽에서 답하고 나선 격이다.
안견 <사립독조 蓑笠獨釣>, 견본담채, 화면 10.0 x 14.5 cm
간송미술관이 간송본 『근역화휘』가 1종류가 아닌 3종류라는 점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즉, 각각 7권, 1권, 3권으로 이뤄진 『근역화휘』가 있다는 것이다.
간송 쪽에선 “1916년까지 7책본이 『근역서휘』와 함께 제작되었고, 이후 당대 서화가의 작품을 엮어 ‘현대첩’이란 부제로 1책본이 1917년 께 증보되었다. 그리고 오세창과 교류가 깊던 수장가 김용진으로부터 많은 서화를 입수한 계기로 1919년을 기점으로 3책본이 기획되어 완성된 것”이라고 밝혔다. 똑같이 3권으로 구성된 서울대박물관 소장본과 간송미술관본 중에서는 간송미술관본이 더 앞선 시대에 간행된 것으로 분석됐다고 주장했다.
오세창이 ‘근역화휘’라는 브랜드로 화첩 시리즈를 만들어 당대의 수장가에게 판매했을 것이다. 오세창은 『근역화휘』를 만드는 한편 자신이 물려받은 부친 오경석의 ‘천죽재 컬렉션’을 간송의 취설재와 옥정연재에 ‘증정’해 컬렉션이 흩어지지 않도록 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폐쇄 정책을 유지하던 조선조 후기 국경무역으로 막강한 재력을 누렸던 역관 계급이 조선의 멸망으로 물적 토대를 잃자 더이상 컬렉션을 확장하거나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 몰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오세창은 그 와중에 선대의 컬렉션이 흩어지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이다.
<오세창 전각 인장> 석인, 상인, 11점
오세창의 『근역화휘』 수록 작품은 간송미술관 2층, 오세창이 감식안을 통해 ‘진품 보증’을 했음을 알리던 도장 실물은 1층에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쪽에서 권하는 동선은 2층 →1층 순이다.
2층에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한 번쯤은 들어봤고, 한 번쯤은 도판을 봤을 법한 『근역화휘』에 수록된 작품 위주의 전시를 하고 있다.
오세창이 고려 공민왕의 작품이라고 판정한 <이양도(二羊圖)>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꼽히는 안견의 <사립독조>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조선조 여성이 그린 채색 초충도류의 대표적인 도상인 <진과문향>(김씨), <서과투서>(김씨), 홍세섭 특유의 내려다보는 시점이 도드라지는 오리 그림 <진금상축> 등과 『근역화휘』 현대첩에 수록된 안중식의 <탑원도소회>와 이한복의 <성재수간>을 볼 수 있다.
김씨 <서과투서(수박과 도둑쥐)> <진과문향(참외향을 맡다)>
사제관계인 안중식(1816-1919)과 이한복(1897-1944)의 그림은 그들이 우리와 같은 근대를 살았음을 실감하게 한다.
1912년에 제작된 <탑원도소회>는 탑골공원의 원각사지10층석탑이 원경으로 보이는 어느 저녁 흥겨운 저녁 술자리 모임을 묘사한 그림이다. 1912년 정월초하루 밤에 ‘탑원’으로 불리는 오세창의 집에서 도소주(屠蘇酒)를 마시는 모임이 열렸고 이를 안중식이 그린 것이다. 특히 원경을 다 생략하고 실루엣으로 원각사지탑만 남겨 공간에 대한 GPS좌표를 남기고, 근경에서도 밤안개에 기대어 거추장스러운 부분을 다 걷어내 대청마루에 환히 켜진 불 아래 모여있는 술자리 군상에 포커싱을 한 구도는 근대의 숨결이 느껴진다.
안중식 <탑원도소회>
근대인 안중식의 숨결은 2층 전시장의 마지막 캐비넷에 있는 이한복의 <성재수간(聲在樹間)>(1916)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간송 측에서는 이 작품이 “스승인 안중식이 1912년에 그린 <성재수간>을 그대로 임모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안중식이 이런 도상을 그린 기년작은 국립현대박물관의 소장품인 안중식 <산수도 열 폭 병풍>(1912)을 꼽을 수 있다. 5번째 폭 <성재수간>에서 뒷모습의 동자와 환하게 불이 켜진 방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그래서 옷의 컬러풀한 색감이 도드라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한복의 <성재수간>과 똑닮은 장면은 이 병풍이 아니라 예화랑 소장품인 안중식의 <성재수간>(연도 미상)이다. 안중식은 ‘성재수간’이 등장하는 구양수의 시 <추성부>를 더 압축시켜 24x36cm의 납작하고 작은 화면에 ‘성재수간’을 구현했다. 예화랑 소장본 <성재수간>에는 병풍화의 주인공인 추성부를 짓고 있던 인물이 창호지 너머 실루엣으로 밀려나고, 조연이었던 동자가 몰아치는 밤바람과 밀려오는 가을의 소리에 맞서 망연자실하게 밖을 바라보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 보물로도 지정된 <김홍도필 추성부도>(1805)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다.
이한복 <성재수간>
안중식의 제자 이한복은 스승이 새롭게 접근한 이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 더벅머리 동자가 까까머리 동자로 살짝 바뀌었을 뿐 나머지 요소는 똑같다. 새로운 전통이 탄생했지만 이 컨벤션과 조선식 혁신은 이어지지 않고 한국은 20세기 중반 서양미술사의 시각으로 재정립됐다.
1층에는 이번 전시의 주제가 ‘오세창의 감식안’이라는 점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작품 위주로 전시장을 꾸몄다. 정명공주의 <화정>, 혜원 신윤복 <혜원전신첩> 등 수장 경위와 내력이 오세창이 쓴 발문을 통해 밝혀진 유물이 발문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또 오세창이 전형필에게 준 인장 44과도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고 있다.
혜원 신윤복 『혜원전신첩』중
지난 5월 《보화각 1938: 간송미술관 재개관전》에서는 보화각이라는 하드웨어의 설계도면과 소장품 구입장부 등을 공개하며 간송미술관의 근원 탐구에 나선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선 간송미술관의 정체성을 근대 컬렉터이자 당대의 감식안이었던 오세창을 통해 보여주는 시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