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푸르게 빚어낸 상형의 세계, 고려상형청자전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
기 간 : 2024.11.26 ~ 2025.3.3
글/ 김진녕
어느 나라 박물관에 가더라도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곳의 공통점은 역사나 지역사, 문화사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직관적으로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금은보석으로 치장한 유물이나 정교한 묘사와 반짝이는 외양을 지닌 유물의 전시대란 점이다. 일반 공개 첫날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전(11.26-2025.3.3)의 전시장 안에는 외국인 관람객이 평소보다 훨씬 더 많았고 내국인 관람객의 전시 집중도가 다른 전시보다 뜨겁게 느껴졌다.
‘상형청자象形靑磁’를 본격 조명한다는 특별전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이 준비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국박 3층의 청자실이 떠올랐다. 지난 2022년에 국박 청자실 개편 공사를 하면서 이미 기린이나 용 같은 판타지 속의 동물이나 원앙이나 복숭아 같은 오브제를 빼어나게 아름답게 형상화시킨 청자 유물을 개별 캐비닛 안에 전시연출한 공간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전시 직전 다시 리뉴얼 공사를 끝낸 청자실에는 그 ‘상형 청자’ 개별 캐비닛만 사라졌다. 전시장만 ‘특별전시실’로 이동하는 확대전시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형청자의 개별전시 캐비닛은 예상대로 특별전의 끄트머리 세번째 섹션(제3부 ‘생명력 넘치는 형상들’)에 떼로 배치됐다. 다만 리움이나 보스톤미술관, 시카고 인스티튜트 같은 국박 바깥에서 온 상형청자 명품들이 가세했다.
청자 사자모양 향로(靑磁獅子形香爐), 고려 12세기, 높이 21.2㎝, 국립중앙박물관(개성1), 국보
이번 전시는 고려시대 상형청자의 대표작과 제작된 도요지 발굴 조사결과, 대표 유물의 최신 과학적 연구 성과 등 중요 자료까지 한 자리에 모은 전시다. 국보 11건, 보물 9건, 등록문화유산 1건을 포함한 상형청자의 대표 작품을 비롯해 국내 25개 기관과 개인 소장자, 중국·미국·일본 3개국 4개 기관의 소장품 총 274건이 전시장에 나와있다.
청자 사자모양 베개, 고려 12세기, 미국보스톤미술관
이번 전시에서만 볼 수 있는 외부에서 온 전시물은 눈 부위가 퉁방울진 해학적인 모습을 한 ‘청자 오리 연적’과 ‘청자 죽순모양 주자’, ‘청자 새를 탄 사람모양 주자’(이상 미국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소장), 베개 상판을 받치고 앉아있는 사자가 웃고 있는 ‘청자 사자모양 베개’와 청자 참외모양 병(보스턴미술관 소장), ‘청자 참외모양 연적’과 귀엽게 미소짖는 듯한 ‘청자기린모양향로’(이상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청자연꽃모양 완’(호림박물관 소장)과 ‘청자 개구리장식 연꽃잎 모양 연적’(성대박물관 소장), ‘청자나한상’(최영길 소장) 등이다.
특히 별도의 캐비닛에 모여있는 섹션2(‘제작에서 향유까지’)의 중국 허난성문물고고연구원 소장의 여요 청자 유물도 눈여겨 볼만하다. 북송 北宋(960-1127) 시대의 여요는 청자를 생산했고 이것이 고려청자에 영향을 끼쳤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송나라의 사신으로 1123년에 고려를 방문한 뒤 보고서 <선화봉사 고려도경>을 남긴 서긍(徐兢, 1091-1153)이 시종 일관 조롱조의 서술 태도를 보이다가 ‘빼어나다’는 기록을 남긴 게 고려청자 항목이기도 하다.
청자 새를 탄 사람모양 주자(靑磁人物裝飾鳥形注子), 고려 12-13세기, 높이 17.7㎝,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다음은 『선화봉사고려도경』권32, 기명3의 내용이다.
“(도기 술병)도기의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인은 비색(翡色)이라고 하는데, 근래에 들어 제작 기술이 정교해져 빛깔이 더욱 좋아졌다. 술병의 모양은 참외와 같은데, 위에는 연꽃 위에 오리가 엎드린 모양의 작은 뚜껑이 있다. 또 주발⋅접시⋅술잔⋅사발⋅꽃병⋅탕기⋅옥잔도 잘 만들었는데 이는 모두 중국의 그릇 만드는 법식을 모방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지 않고 생략한다. 다만 술병은 다른 그릇과 다르기 때문에 특별히 기록한다.”
“(도기 향로) 산예출향(狻掜出香, 사자처럼 생간 상상의 동물이 장식된 향로) 역시 비색인데, 위에는 짐승이 웅크리고 있고 아래에는 봉오리가 벌어진 연꽃무늬가 위를 떠받치고 있다. 여러 그릇 가운데 이 물건이 가장 정교하고 빼어나다. 그 나머지는 월주越州의 옛 비색(秘色)이나 여주汝州 관요에서 새로 구워낸 청자와 대체로 유사하다.”
청자 연꽃모양 향로 조각(靑磁連花形香爐片)과 청자 원양모양 향로뚜껑 조각(靑磁鴛鴦形香爐蓋片),
중국 허난성 보풍 청량사 여요, 북송 12세기, 높이 각 14.7㎝, 12.4㎝, 허난성문물고고연구원
여요에서 생산된 청자 유물은 중국에서도 거의 상상의 동물급이었다. 진품으로 인정된 게 전세계에 통틀어도 100여 점 정도고 좋은 유물은 대만의 고궁박물관에 있는 정도다. 이 ‘전설’이 역사적 사실로 팩트체크가 된 것은 2000년에 허난(河南)성 바오펑(寶豐)현 다잉(大營)진 칭량쓰(淸涼寺)촌에서 가마터가 확인되면서 부터이다. 허난성에는 2017년 이곳에 여요박물관을 짓기도 했다. 여요 청자는 2017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손바닥만한 크기의 접시가 431억원에 낙찰된 기록이 있다.
‘특별 취급’을 조건으로 허난성에서 보내온 여요 청자의 유물은 거의 사금파리급이다. 가마터에서 발굴된 파편을 이어붙여 그나마 형상을 이뤄낸 게 청자 원앙장식 향로뚜껑 정도다. 경기도 광주 분원리 백자유적지 박물관에 가면 이런 정도의 유물을 볼 수 있지만 여요 청자 유적지의 발굴 과정과 남은 유물의 희소성을 생각하면 유별나 보이는 허난성쪽의 입장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서긍이 기록을 남기기도 했던 사자뚜껑 향로 같은 여요산 상형청자는 구글링을 해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쨌든 허난성쪽의 전시 출품 협조를 통해 고려청자의 원앙장식 유물과 여요의 원앙장식 유물을 맞비교해가며 감상할 수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크기는 여요산이 더 큰 편이고 정교함은 고려청자 원앙이 더 좋아보인다. 예를 들어 고려청자의 원앙이나 사자 눈을 보면 물리적으로 눈알 쪽에 실제의 흙을 쌓아 양감을 부여하고 검은 색 점을 찍어 입체감을 부각시키고 유약조절을 통해 생생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 듯 보인다.
고려 상형청자의 전모를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모두 4부로 이뤄져있다.
전시장 들머리에는 여느 박물관 특화의 조명이 아닌 배경색으로 컬러풀하게 색이 변하는 특별한 조명 아래 국박 소장의 <청자 어룡모양 주자>가 놓여있어서 상형청자의 판타스틱한 면을 강조하고 있다.
청자 어룡모양 주자(靑磁魚龍形注子), 고려 12세기, 높이 24.4㎝, 국립중앙박물관(개성2), 국보
제1부 ‘그릇에 형상을 더하여’는 한반도에 삼국시대부터 유물로 확인되는 흙으로 형상을 빚어낸 전통을 소개하고 있다. 수레바퀴형 상형토기나 배모양 토기에 노젓는 토우 장식 같은 유물이 소개된다.
제2부 ‘제작에서 향유까지’는 상형청자가 등장하게 된 문화적 배경과 제작, 유통, 다양한 소비 양상이 소개된다. 해외의 여러 곳과 교류가 활발했던 국제도시 개경(개성)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했던 고려 왕실과 상류층은 더 좋고 더 특별한 도자기에 대한 관심이 컸을 것이고 고려의 상류층은 그런 특별한 기물을 요구할만한 씀씀이가 있어 보인다. 고려의 상류층이 남긴 고려불화나 고려 청자는 모두 1차 산업에 필요한 노동이 아님에도 엄청난 수준의 질이 요구되는 노동이다. 이 섹션에는 북송의 여요 유물과 고려의 청자 가마 분포도, 그곳에서 수습된 유물 등을 보여주고 있다. 강진 사당리와 부안 유천리 가마터 발굴품과 태안 대섬, 마도 1호선, 보령 원산도, 진도 명량해협 출수품 등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자료가 최신 발굴품을 포함하여 풍성하게 소개된다.
청자 양각·동화 연꽃무늬 조롱박모양 주자 (靑磁陽刻·銅畫蓮花文瓢形注子), 고려 13세기, 높이 32.5㎝, 리움미술관, 국보
제3부 ‘생명력 넘치는 형상들’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이다. 상형청자를 빚어낸 당대 도공의 기량에 대해 절로 찬사가 나오게 하는 상형 도자의 최상급 형태와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제4부 ‘신앙으로 확장된 세상’은 어떤 면에서는 도자를 넘어선 조각으로 확장된 고려의 청자도자기술을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 성행한 도교와 불교 맥락의 의례용 상형청자와 청자로 만든 예배존상이 등장한다. 조각난 나한상 파편을 이어붙인 청자 나한상 조각(신수 23733)이나 일본 도쿄박물관 소장의 청자 나한상을 보면 시간을 초월한 현대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청자 사람모양 주자(靑磁人物形注子), 고려 13세기, 국립중앙박물관(신수3325), 국보
전시장 끄트머리쪽에는 최근 과학적 연구를 강조하고 있는 국박의 연구성과가 인터랙티브 디스플레이어에 소개되고 있다. 국박이 2022, 2023년 컴퓨터 단층촬영(CT), 3차원 형상 데이터 분석 등 과학적 조사로 밝혀낸 상형청자의 제작기법을 평판 TV모양의 모니터에 손가락 끝으로 쓱쓱 문질러가며 소통하는 인터렉티브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영롱한 비색과 정교한 형상의 고려 청자 시대가 끝나고 유교 원리주의자와 변방의 무장세력이 결합한 정권 조선이 들어선 뒤 나온 게 백자의 시대다. 소형 연적을 빼고는 백자 시대에 형상을 강조한 상형도자 전통은 거의 소멸된다. 가장 보수적이라는 제사그릇에서도 상형성은 희미해졌다. 조선이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했다는 18세기에 화려한 무늬가 청화라는 옷을 입고 되살아났지만 조선시대를 관통한 것은 민무늬 백자다. 화려한 바로크와 로코코시대의 끝에 형상성을 극단적으로 금지한 신교도의 시대가 열린 것처럼, 극단적인 변화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