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리뷰 > 전시

수묵채색화를 통해 본 한중 근현대 회화 -<수묵별미(水墨別美)-한·중 근현대 회화>전

- 강제로 근대화의 길을 걷게 된 동아시아의 두 나라, 한국과 중국
-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두 나라의 전통회화 현주소

전시명 : 수묵별미(水墨別美) 한·중 근현대 회화전
장 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기 간 : 2024.11.28 ~ 2025.2.16
글/ 김진녕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11월28일 막을 올려 2025년 2월16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의 제목은 두 가지다. 한국어 제목은 《수묵별미 한중 근현대 회화》, 중국어 제목은 <藝韵華章 中韓 水墨作品展>이다.

한국 작가 69명, 중국 작가 76명, 한국화 74점, 중국화 74점, 모두 148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는 두 나라가 공유했던 둥근 붓으로 먹과 채색 재료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던 그림(畵)이 서양이 확립한 ‘미술’이란 새로운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변화시켜 나갔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경


1.
세계사에서 국경을 마주한 이웃 국가끼리 친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근대 국가가 확립되기 이전 전쟁이 벌어지면 국경을 맞대지 않은 머나먼 나라와 전쟁을 치르는 게 아니라 전쟁은 대부분 국경을 맞댄 세력 간에 벌어졌다. ‘사이좋은 이웃 국가’라는 표현은 사실상 존재할 수가 없는 현실이기에 특별히 ‘선린우호善隣友好’란 말을 만들어 강조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근대 이전 국경을 맞대지 않은 나라끼리, 혹은 세력 간의 전쟁이 벌어진 것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이나 징키스칸 기병의 서방원정 정도로 아주 드물었다. 다만 근대 이후 과학의 발달로 이런 룰은 깨졌지만 말이다.

한중일이 서로 친하지 않은 긴장관계를 이어간 것은, 영국과 프랑스가 앙숙인처럼,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중국과 인도가 늘 긴장관계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치다. 하지만 문화의 교류는 국경을 맞댄 이웃 국가 간에만 가능한 일이다.


통일신라시대 이래 중국이 주도한 동아시아의 조공외교 룰에 편입된 한반도에 세워진 정권과 중국 본토에 세워진 정권의 관계는 근대 이후 완전히 무너졌다. 20세기 시작과 함께 조선은 일본에 강제 합병됐고, 중국은 식민지만 되지 않았다 뿐, 홍콩을 영국에 뺐기고, 일본과의 전쟁에서 지고 만주에 일본 주도의 괴뢰정권이 들어서고 청나라는 붕괴했다. 한국과 중국 모두 치욕의 근대화 과정을 겪으며 근대 이전의 시스템이 강제 해체되는 것을 겪어야 했다.

한반도에서 근대 이전에 새로운 문화나 지식의 유입창구는 중국이었다. 근대 이후는 일본이나 미국, 유럽으로 바뀌었다. 중국 입장에서도 20세기는 세계의 중심임을 자처한 중화 세계관이 박살난 백 년이었다. 20세기 초 중국의 신세대들은 세로운 문물을 배우기 위해 일본과 유럽,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야했다. 이게 모두 20세기에, 백년 동안 벌어진 천지개벽의 일이다.


2.
<수묵별미>전은 수묵화의 전통을 지닌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가 왕조의 붕괴라는 천지개벽과 서양식 근대화가 휩쓸던 20세기에 어떻게 자기혁신을 이루고 새로운 세대에도 여전히 미술로써 생명력을 이어갔는지 보여주는 전시다.

조선왕실의 화원 경력을 갖고 있던 안중식이 국권이 상실된 조선 땅에 광화문의 봄을 꿈꾸며 그린 <백악춘효>(1915)가 관람객을 맞이하는 한국 파트. 여기에는 20세기 후반 ‘한국화’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수묵채색화의 변화상을 한국의 비산비야의 성근 숲을 남종화의 영향이 짙게 섞인 기법으로 담아낸 새로운 시대의 산수화를 선보인 이상범부터 일본에서 유학해 근대 동양화의 기법을 배운 뒤 자신만의 세계를 선보인 김기창이나 천경자, 조선시대에 그림이 아닌 것으로 치부됐던 전통종교화의 기법을 현재형으로 되살린 박생광, 수묵과 채색, 추상과 구상, 서양 재료와 동양 재료의 경계를 모두 무너뜨린 황창배, 새로운 시대의 산수화와 화조도를 그리는 정재호나 김보희 등 지난 백 년 동안 한국화에 축적된 성과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주고 있다.


김기창 <군마> 1955, 종이에 먹, 색,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중국 파트에서는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 쉬베이홍(徐悲鴻, 1895—1953), 자오즈쳰(趙之謙, 1829~1884) 등 중국 근대 미술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의 작품이 전시장 들머리에 놓여있다. 이들의 작품은 모두 중국에서 문화재급 대접을 받는 작품이다.


치바이스 <연꽃과 원앙> 1955, 종이에 먹, 색, 중국미술관 소장

3.
몇 년 전 중국의 근대회화를 소개하는 전시를 기획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공산 중국 100년의 주류인 사회주의 미술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하지만 전시가 연기되면서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풍문이 도는 등 준비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던 듯 하다. 중국쪽 전시 작품도 에너지는 넘치지만 의도가 명확해 보이는 사회주의 선전선동 미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은 출품 목록에서 빠져있다. 대신 사회주의 미술 특유의 메시지가 작품에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작품을 볼 수 있다. 린쑹녠(林松年, 1927- )의 <남국의 붉은 여름 과일, 여지>(1973)는 빨간 색의 여지가 빈틈없이 깔린 정교하고 화려한 화훼도로 볼 수 있지만 뒷배경으로 일하는 노동자를 흐릿하게 함께 담아냈다. 쳰쑹옌(錢松嵒, 1899-1985)의 <금수강남 풍요로운 땅>(1972)은 얼핏 넓은 평야와 풍요로운 강줄기를 그린 강남 산수화 같지만 사이사이 송전탑을 세워놓고 ‘공산 조국’에 대한 열망을 감추지 않고 있다.


린쑹녠 <남국의 붉은 여름 과일, 여지> 1973, 종이에 먹, 색, 중국미술관 소장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배원정 학예사는 “출품작 선정부터 전시 제목, 용어사용까지 국립현대미술관과 중국미술관의 긴밀한 상호협의를 통해 이뤄졌다”고 한다. 공산주의 중국 정부가 예술에서 바라는 것, ‘화이트 리스트’를 노골적으로 화면에 강조한 작품은 우리 쪽에서 난색을 표했고, 박생광의 대표작인 80년대 작품 선정 과정에서 무속을 소재로 한 것은 중국 쪽에서 난색을 표해 이성계를 소재로 한 <제왕>으로 정하는 식으로 전시의 모든 사항이 양국 국립미술관의 긴밀한 조율을 통해 전시가 제작됐다는 것이다.

덕분에 <수묵별미>전은 미술을 보는 한국과 중국의 시각 차, 양국의 전통 회화의 근대화/현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됐다.



박생광 <제왕> 1982, 종이에 색,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두 나라에서 자국의 전통 미술의 현대화 과정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번 전시도록에 실려있는 글을 짤막하게 소개한다.


■ 한국 전통회화의 국제성과 독창성 역사와 근현대의 수묵채색화
홍선표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명예교수, (사)한국미술연구소 이사장

"식민지 조선에서 '동양화'로 개편되어 근대화를 추구해 은 수묵채색화는 1945년의 8.15해 방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비정형 국가 상태였던 3년간의 해방공간은 건국의 주도권 쟁탈을 위해 극심한 좌우 이념의 대립과 이에 따른 미술단체의 이합집산과 분열을 야기하는 등, 정치 과잉의 시기로, 창작활동의 부진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이화여대와 서울대, 조선대, 홍익대 등에 미술대학이 차례로 설립되면서 '동양화과' 출신의 수묵채색 화가를 본격적으로 육성할 수 있게 되었으며, 훼손된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민족미술을 건설하자는 자각이 팽배해졌다. 근대 수묵채색화로 전개된 '동양화'의 영역에서 함께 공존해 온 '일본화' 를 제거하고 '한국화'로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은, 1948년의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1민족 2국가 제제의 남북분단 상태로 본격화 되었다. 수묵계열이 주도한 사경산수풍경화는 조선회화의 전통을 계승한 민족미술의 원류 또는 주류라는 자의식을 강화하여, 앞서 언급한 이상범, 변관식, 노수현, 허백련을 비롯해 허건과 배렴 등 수묵계열 동양화 1, 2세대에 의해 한국 산천의 정취와 미감을 독특하고 개성적인 형식으로 담아내며 국전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채색계열은 '왜색' 으로 한때 매도되기도 했지만, 1950년대에 '신동양화 운동' 등을 통해 서구 중심의 국제화 또는 세계화와 현대화에 적극 매진하여 구상과 반추상, 추상으로 이행하 면서 한국적 모더니즘을 모색했다.
...
1950년대 후반 이후 추상이 현대화를 이끌며 한국화의 주류로 확산되자 전후 서구 모더니즘의 추종과 종속에 따른 정체성 상실이라는 위기의식과 더불어 1980년대에 이르러 채색운동과 수묵운동을 통해 양자가 상생하는 주체적 발전을 도모하게 된다.
채색은 근대기의 `일본화' 오염에서 벗어나 고분벽화와 불화, 민화, 무속화 등의 전통 채색화에 민족 고유의 토착적인 미감과 한국적 조형의 원초성, 그리고 외래 양식에 물들지 않은 건강한 민족혼과 정서가 깃들어 있다고 보고 이를 통해 '한국화' 의 자주적이고 자생적인 창작을 도모하려 했다."

■ 중국 수묵화의 세기적 변화
위후이(余輝) 국가문물감정위원회 위원, 전 고궁박물관 연구실 주임

"서양 회화와 마주한 중국 수묵화는 두 차례의 변혁 과정을 겪었다. 처음에는 표면적으로 색채 사용법을 받아들이는 단계였고, 다음은 예술적 관념의 갱신이었다. 해파(海派, 상해파)화가들이 서양 수채화를 사용한 것이 시작이라면, 링난파(嶺南派)의 거장 가오젠푸(高劍父)와 가오치펑(高奇峰)은 그 시작을 이어나간 이들이다. 이후 쉬베이홍과 린평몐 등이 이 과정을 더욱 심화시켰다. 일본에서 유학한 화가는 일본의 화가가 어떻게 서양 기법을 일본화에 용합하였는지에 주목하였는데, 전통 서양화와 차이를 두었기 때문이다. 반면 프랑스에서 유학한 화가는 프랑스의 인문주의 사상과 민주주의 의식, 그리고 예술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다. 중국 유학생은 유럽의 예술 철학과 미적 의식에 우선 관심을 두었고, 사실주의를 따르는 화가는 현실주의에 경도되었으며, 신파(新派)를 배우는 화가들은 낭만적 정서에 관심을 가졌다.
가오젠푸(高劍父, 1879-1951)와 가오치펑(高奇峰, 1889-1933) 형제는 1906년과 1907년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 화가들이 서양 회화의 사생 방법과 원근법, 명암과 해부학 등의 기초 기법을 소화하는 과정을 배우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들은 서양의 색채학에서 강조하는 색조 기법을 수묵의 표현 기법에 스며들게 하였고, 물체의 고유 색상을 중시하면서도 전통 수묵화의 화면상의 조화로움을 잃지 않았다. 이를 통해 청말 광둥(廣東)의 쥐렌(居廉)과 쥐차오(居巢)의 사실주의 화풍을 계승하고 발전시켰으며 링난화파를 창시하였다. 그들의 작품에는 일본 화가 다케우치 세이호(竹内栖鳳, 1864-1942)의 채묵(彩墨) 운치가 담겨 있다.

다케우치 세이호의 영향을 받은 또 다른 수묵 산수화 대가는 푸바오스(傅抱石, 1904-1965)이다. 푸바오스는 1930년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산수화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둔 수묵 화가로, 그의 작품에서는 이국의 요소가 수묵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1932년부터 3년간 일본 유학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일본 화가 하시모토 간세츠(橋本關雪, 1883- 1945)를 만나게 되었는데, 하시모토는 스타오(石濤, 1642-1707)를 숭상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은 푸바오스는 일본에 소장된 스타오의 작품을 많이 연구하였고, 귀국 후 일본 화가들이 일본화를 변혁한 경험을 중국의 수묵 산수화에 적용하였다. 그는 일본화의 밝고 깨끗한 채색 기법과 수채화에서 중시되는 색조 기법을 흡수해 스타오의 대담하고 자유로운 필묵 개성을 더욱 강화하였다.
치바이스(齊白石, 1863-1957)는 현대 수묵 화조화의 창시자이다. 그는 명대의 쉬웨이(徐渭), 청대의 주다(朱耷), 스타오(石濤), 리산(李鱓) 등 선현들의 필묵을 하나로 융합하는 동시에, 해파 화가 우창숴(吳昌碩)의 성공적인 시도를 본받았다. 그리하여 그림과 전각을 결합한 기법을 그림에 반영하였고, 마침내 '쇠년변법(衰年變法)'을 이루었다. 그는 종종 거친 사의 꽃 그림의 필묵과 정교한 공필 초충화(草蟲畵)의 색채를 결합하였으며, 특히 역대 문인 수묵화가 지닌 학자풍의 구도를 깨뜨렸다. 치바이스 그림의 소재는 농가의 과일이나 농기구 등으로 확장되어 농촌 생활의 진한 정취를 풍겼으며, 화풍은 질박하면서도 힘차고 형태는 간결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치바이스의 문하생이 많아 그의 사의 화조화 화풍은 북방 수묵화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새로운 세대 예술가들은 중국 수묵화 예술의 거대한 역사적 변혁 속에서 혁신적인 예술 사상과 성공적인 회화 실천을 통해 그들의 예술적 해답을 완성하였다. 이들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숭고한 본보기를 제시하였는데 그 해답은 다음과 같다. 한편으로는 회화 전통에 대한 인식의 영역을 상고(上古) 시대 비문 서예와 다양한 고대 예술품 및 근현대 민속 미술품까지 확장시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회화 예술에 대한 인식의 범위를 전 세계 미술로 확대하여 서양 화가들의 혁신 의식을 참고하고, 시대와 삶을 직시하며 깊이 탐구하고 용감하게 혁신하도록 독려하였다. 21세기에 접어든 지 어느덧 4분의 1에 이른 이 중요한 시점에서, 중국 화단이 직면한 공동의 과제는 어떻게 하면 수묵화 속에 새로운 시대적 기운을 담고, 민족적이며 개성적인 예술 언어를 형성하여 세계 예술의 숲속에서 우뚝 설 것인가이다."





업데이트 2024.12.26 11:58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