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리뷰 > 전시

피에르 위그의 개인전 《리미널Liminal》

기이하고도 때로는 낯선 감정의 골짜기 산책

전시명 : 리미널Liminal
장 소 : 리움미술관
기 간 : 2025.2.27-2025.7.6
글/ 김진녕


삼성문화재단 리움에서 프랑스 출신의 현대미술 작가 피에르 워그(Pierre Huyghe, b.1962)의 개인전 《리미널Liminal》(2025. 2.27-7.6)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피노 컬렉션의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열렸던 위그의 개인전 《리미널》을 들여온 것으로, 베니스 전시 자체에 리움이 공동기획자로 참여한 쇼였기에 한국에서 리움 버전으로 전시가 열릴 것이 예고된 상태였다. 이번 전시에 등장한 작품은 2024년 베니스 쇼 기준으로 신작인 <리미널>, <카마타>, <이디엄>과 위그의 작품 중 한국에서 그의 이름을 알린, 그의 작품 중 한국에서 가장 자주 전시장에 선보였던 <휴먼 마스크>(2014)와 <오프스프링>(2018), 수족관 시리즈 그리고 인간과 기계의 협업으로 구성되는 (2018-2025), <암세포 변환기> 등 총 12점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피에르 위그의 작가 활동 전반을 조망하는 회고전 성격이라기 보다는 최근 10여 년의 작업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만 <휴먼 마스크> 못지 않게 그의 이름을 알리는 데 일조했던, 2012년 카셀 도큐멘타와 201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품은 빠져 있었다.



전시 제목으로 쓰인 ‘리미널’은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주최측에선 다음과 같이 전시 의의를 설명한다.

“전시《리미널》은 불가능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전시에서 새로운 주체성은 어떻게 탄생될 수 있는가?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 의존성을 어떻게 인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되며, 기존 인간 개념과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현실, 인간 이후와 인간 바깥의 세계를 탐구한다 이를 위해 전시는 예측 불가능성을 가시화하고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생태적 환경을 제안한다. 여기서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겹쳐지거나 분리되면서 관람객은 스스로를 낯설게 인식하고 또 다른 현실을 상상하게 된다. 피에르 위그에게 전시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살아 있는 환경이다. 전시《리미널》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생명체들이 진화하는 세계다. 이곳은 수족관의 환경처럼 특별히 구성되어 있지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세계'다.”


작품을 보다 보면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세계’라는 것은 이번 전시에 선보인 신작 세 작품, <리미널>, <카마타>, <이디엄>에 적용된 메커니즘의 정체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주최측에 따르면 전시장에 모인 관객 수나 온도 등 등을 작품 자체에 반영해 그때 그때 리플레이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 반영을 하는 것인지, 어떤 메커니즘인지, 아니면 인터랙티브라는 이름으로 몇 가지의 대안과 피드백을 오가는 평범한 ‘미술관형 약속 대련 인터랙티브’인지 등의 정보를 전혀 밝히지 않아 관객은 그저 ‘일종의 인터랙티브’라는 정보만 가지고 낯선 작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불확실한’ 작품이다. 


다만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 <리미널>과 <이디엄>, 그의 출세작인 <휴먼 마스크>가 모두 '마스크'를 매개로 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휴먼 마스크>는 기괴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작은 소녀’가 일본 전통극 노[能]의 마스크를 쓰고 서성거리는 장면을 지켜보다 보면 어딘가 석연치 않은 신체 비례와 인간의 행동 패턴을 깨는 움직임이 불길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팔다리쪽의 클로즈업을 배제해 시각적인 정보를 차단하여 관객이 정체를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리도록 설계했다. 관객은 결국 이 불쾌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같은 기괴함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사후적으로 이 작품의 로케 지역이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난 후쿠시마라는 정보가 관객에게 배달되며 <휴먼 마스크>는 좀 더 복잡한 생경함과 기이함을 포함하게 된다.


‘실시간 시뮬레이션 영상’이라는 신작 <리미널>은 황무지를 배경으로 영락없는 인간의 육체 형태를 가지고 있는 나체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다만 이 캐릭터는 얼굴 부위가 펀치볼 형태로 검게 뭉개져 있다. 이 얼굴 없는 나체 크리처는 바닥을 기거나 몸을 구부리고 일어서기도 하지만 코스믹 호러물에 등장할 것 같은 이 캐릭터의 움직임은 기이함을 고조시킬 뿐 그 행동의 패턴이 무슨 의미인지도 알 수 없고, 이 작품을 보고 있는 관객의 수나 반응이 이 캐릭터의 움직임과 동영상에 실시간으로 반영된다는 건 과연 무엇인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기이하고도 무력한 사주경계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전시장 벽에는 피에르 위그의 말이 써 붙여 있었다.
"나는 이야기의 형태가 선형성을 벗어날 때 흥미를 느낀다. 역사를 넘어선 서사 밖의 허구에 관한 것이다. 시뮬레이션은 혼돈을 지날 수 있게 해주는 여러 가능성의 투영이다."


미술관측은 이번 전시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겹쳐지거나 분리되면서 관람객은 스스로를 낯설게 인식하고 또 다른 현실을 상상하게 된다. 피에르 위그에게 전시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살아 있는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런 낯선 경험을 하게 하는 길라잡이는 피에르 위그가 창조한 낯선 시각이미지들이다.



업데이트 2025.03.26 12:35

  

최근 글